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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아지다사라지다 Jan 24. 2023

만병똥치설

똥은 못 끊더라도 술은 좀 끊어라

나도 술을 아예 못 마시는 건 아니지만

위장을 약하게 타고나서 몸이 술에 견디질 못한다.

그래서 술을 마시면 내가 아플걸 알아서 자제력을 획득했다.


나의 남편은 알코올중독자이고 소주를 매일 마신다.

당연히 평소의 컨디션은 산 송장 급이지만 특별한 지병은 아직 없다.


'똥 싸면 다 나아.'


라는 무지몽매한 생각으로 그는 자신감 있게 살아간다.


술 병도 똥 싸면 낫고, 장염도 똥 싸면 낫고

열감기도 똥으로 디톡스를 하면 낫는다나


참 편해서 좋겠다.

저렇게 단순하고 아무 생각이 없이 편히 살아서

여태 그 많은 소주를 몸에 주입했어도 큰 문제없이 살아 있는 건가.




그저 달콤하기만 한 20대 청춘이 몇이나 될까

그 괴로움과 외로움 달래는 데에 술과 담배 말고는 선택지가 없었던 걸까

한편으론 안타깝기도 하다.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시작한 행위들이 중독이 되어 자신을 잠식해 버리는 게

무섭지 않을까



홀 몸이라면, 그래

홀 몸이라면 골방에 소주 한 박스가 언박싱되어 굴려 다녀도

그러다 끝내 숨을 거두어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자녀가 있는데, 그것도 아직 어린 아기가 있는데

그 아이와 추억을 쌓지 못할 정도로

아이와의 추억보다 오늘 먹을 술이 더 중요할 정도로

삶이 재 편성 되었다면 그것은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

남편도 결국 타인인데, 타인의 인생을 재단하고 싶진 않지만

내 아이의 아빠이니 좀 해야겠다.




아이가 공원 산책을 나가면 유독 넋이 나가 쳐다보는 광경이 있다.


아빠와 아들이 서로 공을 주고받는 광경


말도 못 하는 아이가 그 모습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본다.

그리고 아기는 용기 내서 그들 사이에 끼어본다.

친절한 아저씨들은 가끔 내 아이와도 공차기를 해 주신다.



'아가. 미안하지만 너의 아빠는 어제 먹은 술과 오늘 먹을 술로 인하여

술에 취해 방구석에 누워 계신다. 그래서 너와 공원을 한 발짝도 걷지 못한대.

술을 계속 먹으니까 다리에 통풍도 심해져서 걷기가 힘들대.

그런데 술 약속은 참 열심히 나가. 아가. 엄마가 너에게 미안하다.'




"집 앞이 바로 공원인데, 애랑 산책 한번 나가자. 아니면 차로 10분 거리라도."

"나 피곤해. 다리 아파. 어차피 지금 그 나이엔 기억도 못해. 기억 안 날건 잘해주면 뭐 해."


아이의 아빠는 술을 택했고

나는 대화의 단절을 택했다.

더 이상 대화 하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생각 됐다.

내가 낳은 내 자식이니까 내가 하면 되지.

까짓 거 뭐 나 혼자 키운다고 생각하고 나 혼자 다 해주자

여기도 가고, 저기도 가고, 사줄 거 다 사주고

먹이고 씻기고 입히고 다 내가 하지 뭐


아비로서 아기를 기쁘게 하는 일 보다

술 마시는 걸 택한 남자를 내가 억지로 끌고 나간 들 무엇이 행복하겠어.

그냥 내가 다 하자. 다 하자.

그러다 보니 나도 몸과 마음에 한계가 오게 되고

끝내 절망에 항복하던 그날


남편은 그제야 '미안해. 이제 나도 할게.'라는 말을 던졌는데

하하 그 말을 듣는데 눈물도 나고 웃음도 나고 그러네


아이를 키우는 것은 회사 일이 아니다.

업무 분장을 하는 것은 좋지만 아이에게 사랑을 주는 일은 분장이 안 된다.

미안하지만 아기들은 단순하지 않아서

돈, 장소, 시간으로 키우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키우는 거거든.

다른 사람이 아닌 부모의 사랑 말이야.


만병똥치설을 주장하기 전에

아이를 조금이라도 사랑한다면 '만병끊치설'로 바꾸는 건 어때.

나쁜 마음, 이기적인 마음 좀 끊어 내고

술 담배 좀 줄이고, 끊으면 더 좋고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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