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아무 말도 못 했는데..

갑작스러운 만남 기약 없는 이별

by 초록별쌤

커다란 카페 안에 있었는데..

갑자기 내 앞에 아빠가 서 계셨다.

많이 반가웠지만 아버지의 표정이 약간 경직되어 있어서 반가움의 인사도 못한 체

흐트러진 머플러를 고쳐드렸다.

그분은 내게 아무 말도 안 하셨지만 난 알고 있었다.

카페를 가로질러 나가면 아주 넓은 잔디밭이 있고 거대한 저택이 왼쪽과 오른쪽에 각각 서 있었는데

그 왼쪽 저택에 아버지의 친구가 사셨고 그를 만나러 오셨다는 것을..

난 눈짓으로 잘 다녀오시라고 표현하고 아버지를 기다렸다.

얼마 되지 않아 아버지는 나오셨고 어두운 표정을 하고 계셨다.

왼쪽 저택 앞에서 트레이닝 복을 입은 마른 체형의 남자분이 화를 내고 있었다.

아버지를 가리키며

'왜 깜빡이를 켜지 않고 운전을 했느냐?, 운전 법규를 어기지 않았느냐?' 며 소리를 질렀다.

아버지는 아무 대꾸도 안 하시고 그를 뒤로 한 채 카페 안으로 발걸음을 옮기셨다.

난 멍하니 서 있다가 생각해 보니 아버지는 운전을 하신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이 사람이 아버지께 도대체 뭐라고 한 거야? 미친 것 아니야? 왜 어른에게 사실이 아닌 것을 뒤집어씌우며

화를 낸 거냐고?' 이렇게 말하고 싶었는데 어느새 장면은 바뀌어 있었고 소리치던 그는 사라졌다.

난 오른쪽 저택에 살고 있는 내 친구를 찾아갔다.

그리고 설명했다. '왼쪽 집에 사는 사람 누구니? 갑자기 우리 아버지께 이렇게 말하며 억울하게 만들었어~'

그런데 그 친구는 내 얘기를 듣자 살며시 피하는 게 보였다.

순간 왼쪽 집 사람이랑 이 친구가 친한 관계인가? 생각이 들면서 더 큰소리로 방금 있었던 상황을 설명했다.

친구는 겸연쩍은 표정을 하면서 내게서 더 멀리 가버렸다.

나랑 친한 친구이기에 이 친구라면 아버지의 억울한 상황을 공감하며 같이 화를 내줄 거라고 믿었었는데..

난 너무 답답하고 안타까웠다.

잔디밭 한쪽에 깊은 고랑 같은 게 있었는데 그곳에 떨어진 상태로 흐느끼며 소리 질렀다.


'난 네게 대단한 것을 원한게 아니야~

억울한 아빠께 그렇게 이상한 사람도 있지만

너처럼 친절하고 따뜻한 사람도 있다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었어~

그래서 이 세상은 아름다운 세상이라고 느끼시게 해드리고 싶었어~~

그리고 그 세상에 딸이 살고 있으니까 딸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된다고 말씀드리고 싶었어~

그게 어려웠던 거니? 그게 싫었던 거니?

내내 소리 지르며 엉엉 울었다.

그런데 자꾸 목소리가 시원하게 나오지 않아서 숨이 안 쉬어질 정도로 답답했다.


목이 터져라 소리 지르며 우는데 남편이 나를 안았고 등을 토닥이며

"꿈이야~괜찮아~많이 울었구나~"라고 말했다.

울다가 아빠랑 인사도 못했는데 난 깨어나버렸다.~~ㅠ

꿈속에 다시 들어가서 아빠랑 얘기를 나눠야 할 것 같았다.

'아빠 딸, 잘 살고 있다고..'

'이 세상은 그래도 살만 하다고...'

깨어났는데도 눈물이 멈추지 않아서 한참을 울었다


꿈속에 그녀가 커다란 잘못을 한 것도 아닌데

정말 서운했고 마음 한편에서는 화가 올라왔다.

25년 만에 이루어진 아빠와의 만남은 아빠 목소리 한마디 듣지도 못하고 그렇게 끝나버렸다..

언제 또 만날 수 있을까..

기약 없는 이별이 내 허락도 없이 다시 시작됐다..


한참을 울다가 꿈을 돌아보며 내 마음을 이해해 보려고 애를 썼다.

왜 그렇게 이 세상을 아름답게 포장해서 보여드리고 싶었을까?

그 남자에게 가서 화를 내며 따지든지

차라리 아빠의 속상한 감정을 공감해 드리는 게 낫지 않았을까?

갑작스러운 만남과 이별.. 그 꿈을 통해 내면에 있는 나를 만나며 나도 놀랐다.

세상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들이 있었고 그 사실에 대해 직접 맞닥뜨리지 않고

긍정적인 부분들로 덮어버리려는 대처법을 사용하고 있었다.

아버지의 친구분으로 예상되는 그분이 가진 높은 권력이 나를 눌러버린 건 아닌지..


뉴스에 나오는 사건사고들을 보면 몸이 움츠려 든다.

사람이 다쳐서도 그렇치만

멀쩡한 얼굴로 거짓말을 하며 자신이 가진 힘을 이용하여 스스로를 포장하는 사람들이 훨씬 더 무섭다.

그들로 인해 얼마나 선량한 사람들이 억울함을 겪어야 했을까?

너무나 억울하고 화가 나지만 그들과 싸울 용기를 내보이기에는 상대가 너무 크다.

착한 사람들이 착하게 살아도 되는 세상을 만나고 싶다.

착하게 살면 금세 바보로 만들어버리는 속상한 세상..

그 세상 속에서 발버둥 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만지는 상담사의 삶이 갑자기 가여워졌다.


아빠, 저는 아름다운 세상에 살고 있어요~

아니, 저 잘 살아가고 있어요~

그래서 제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아빠는 멋진 분이셨어요~

인사도 제대로 못했는데... 헤어지다니요~~


내 얘기를 들을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누구에게 말하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어느새.. 다... 끝나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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