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바라는 세상을 현실에서 만드는 법
<우리가 바라는 세상을 현실에서 만드는 법>이라는 부제의 책.
네덜란드의 젊은 사상가 뤼트허르 브레흐만이 주장하는 주 15시간 노동, 보편적 기본소득, 그리고 국경 없는 세계란 무엇인지 호기심에 읽어보았다.
먼저,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책은 읽기 쉬운 편이다.
과거와 현재의 여러 사례들을 알기 쉽게, 비유적으로 인용하였고, 주장을 뒷받침하는 통계 자료들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제시하였다. 때때로 자신의 주장과 찰떡 궁합인 예시들을 어쩜 이렇게 쏙쏙 찾아냈을까 싶을만큼.
그래서 정말, 유토피아 플랜이란 가능한 것일까? 먼저 유토피아에 대해 알아보자.
유토피아란 ?
유토피아라고 하면 토마스 모어의 공상소설 '유토피아'에서 모어가 처음 만들어낸 단어의 조합인 u(없다 or 좋다) + topia(장소) 즉, 세상에 없는 곳 또는 굉장히 좋은 곳이라는 이중적인 의미를 지닌 유토피아가 떠오른다.
이 책에서는 기본적으로 자본주의가 풍요의 땅(유토피아를 두루뭉술하게 의미)으로 들어가는 문을 연 것은 확실하지만, 자본주의만으로는 풍요의 땅을 유지할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유토피아를 향해 모험이란 걸 해야하는데, 이에 대해
극작가 오스카 와일드는 "진보는 유토피아를 깨달아가는 과정"이라고,
그리고 버트란트 러셀은 "우리가 원해야 하는 것은 완성된 유토피아가 아니라, 상상과 희망이 살아있고 꿈틀거리는 세상"이라고 말하면서 자본주의 + @를 향해 나아가기를 권한다.
+ @ 중 하나가 바로 모든 국민에게 풍요를 재배분하자는 것이다. 그것도, 현금을 무상으로!
모든 국민에게 현금을 무상으로
지급해야 하는 이유는?
국가가 제공하는 복지는 다양한 형태일 수 있는데, 크게 현물이나 서비스 지원 vs 현금지원으로 구분해 볼 수 있다. 드는 돈은 비슷하겠지만, 국가가 어떻게 방향을 설정하는지의 문제다. 예를 들어, 저소득층 아동에게 식사비용을 현금으로 지원을 하게 되면 아이는 간식거리를 사먹거나 게임을 하며 돈을 써버릴 수 있어 저소득층 아동들의 균형잡힌 성장이라는 목표와는 요원해지게 된다. 그래서 국가에서는 도시락 또는 카드를 제공해서 정해진 식당에서 밥을 사먹을 수 있게 한다거나 식사 대용이 되는 물품의 구입만 가능하도록 설정해 놓는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선례들을 통해 무상 현금 지원을 통해 사람들이 권한과 선택권을 가지게 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주장한다. 노숙자 또는 알코올 중독자인 극빈곤층 그룹에게 무상 현금 지원을 했을 때 우리의 우려와는 달리(담배, 술을 소비하는 데 돈을 별로 쓰지 않는다는 것) 갱생에 성공하는 비율이 굉장히 높았고, 결국 현물과 서비스를 지원하는 비용과 현금을 지원했을 때 드는 사회적인 비용이 거의 비슷하거나, 갱생에 성공하여 사회적인 환원이 이루어진 경우까지 고려하면 오히려 무상현금지원이 더 적은 비용이 든다는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저자는 무상현금지원이야말로 세계가 보증하는 기본소득(빈곤층 이상 생활이 가능)이자, 누구나! 호의가 아닌 권리로서! '공산주의에 이르는 자본주의적 길'이라고 주장한다.
이쯤에서 우리의 현실을 한번 반성해보자. 학교에 있다보면 저소득층 가정을 돕기(?) 위해 각종 제안들이 들어온다. **가정 보듬기 사업, **장학회 등 다양한 곳에서부터 서비스나 현금을 지원해주겠다며 서류를 작성해 보내라고 제안한다. 만약 저자의 말대로 무상 현금지원과 현물 또는 서비스 지원에 드는 사회적 비용이 큰 차이가 없다면, 나는 (조건없이) 무상으로 현금을 지원하는 정책에 찬성한다. 왜냐하면, 수많은 서류와 지원 단계들은 내가 얼마나 가난한지, 대체 어느 정도로 살기가 힘들어 지원을 받아야 하는지를 낱낱이 작성하도록 요구하는데, 이러한 과정들 자체가 저소득층 - 내가 주로 만나는 학생들-의 자존감을 무너뜨리고 수치심을 잔뜩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러한 과정들은 자신의 빈곤을 받아들이고, 고착화시키게 되며 ( 나는 정말 도움을 받아 마땅한 상황이라고 인식 ) 새로운 삶을 꿈꾸는 희망을 짓밟곤 한다.
그래서 저자는 다음 장에서, 일단 빈곤을 종말시키자는 주장을 하게 된다.
가난한 사람이 어리석은 이유?
가난한 사람이 어리석은 이유는 무엇일까? 왜 그들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것일까?
그 이유는, 어리석은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는 맥락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가난한 사람을 이해하고 싶다면 자신의 정신이 다른 곳으로 쏠려 있다고 상상해보면 된다. 마치 자기 통제가 어려운 과제처럼 느껴지는데, 대상이 시간이든 돈이든 결핍이란 것은 현명하지 못한 결정을 유도한다. 이는 소득 부족에 기인할 수도 있고, 과잉기대(상대적 박탈감)에 기인할 수도 있다. 결국 불평등이 계속 증가하다보면 국가 전체적으로도 이러한 결핍, 나아가 어리석은 결정들이 더욱 늘어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결론은, 빈곤의 종말이 필요하다.
*** 빈곤 가정에서 성장한 아동들은 그렇지 않은 아동보다 행동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크다. 아동이 빈곤에서 벗어나는 나이가 어릴수록 십대가 되었을 때 정신건강이 좋아졌다.
이밖에도 저자는 새 시대를 위한 새 수치로, 국내총생산에 수정되어야 할 개념들을 고려해보기도 하였고,
국경 없는 세계가 되더라도 우리의 편견과는 달리 별 문제가 없다는 논의도 하였고,
주당 15시간 노동의 타당성에 대해 접근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주당 15시간 노동은 책을 다 읽고도 아직은 정서적으로 이해가 안되는 부분들이 많아, 다음 주제인 은행가와 교육에 대해 넘어가보련다.
어째서 은행가에게 대가를 치르게 하지 않는가?
일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부를 창출하는 일과 부를 이동시키는 일. 저자는 노동, 교육, 의료 등에 종사하는 일은 부를 창출하는 일로 더 많은 임금을 받아 마땅하다고 주장한다!(교육 종사자로서 기쁜 주장이다>ㅁ<) 반면에 금융권에 종사하는 - 예를 들어 은행가는 부를 이동시키는 일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이 돈을 매우 많이 벌기 때문에 커다란 가치를 창출하고 있다는 왜곡된 신념을 유발한다고 주장한다.
신념 부분에 대해 내가 논할 처지는 못되고, 가끔씩 드는 의문 중 하나는 과연 금융권이 고액 연봉을 받는 것이 당연한 것일까? 하는 점이다. 물론 전문적으로 금융에 대한 지식을 쌓고 다른 사람의 자산을 이리 저리 굴리며 증식시키는 역할을 누구나 잘 해낼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실적에 따라 수십억, 수백억의 성과금을 받는 금융권의 관행에 대해서는 일반적인 상식으론 이해가 되지 않는달까.
나아가 저자는 현재의 학생들이 2030년에 필요한 것이 무엇일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데...
현재의 학생들이 2030년에 필요로하는 것은?
문제해결능력!
..딩동댕...?!
수많은 교육학 이론들에서도 문제해결능력을 어찌나 중시하는지, 수업을 구상할 때, 수업 자료를 만들 때도 문제해결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얼마나 노력해야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트랜드 워처들이 가치가 아닌 역량에 초점을 맞추어 대답했다고 말한다.
즉, 상황을 예상하거나 적응하기 보다는 상황을 조종하고 창조하는데 초점을 맞춰야하는 것이 교육인데, 눈 앞의 상황을 적응해나가는 문제해결능력을 기르는 근시안적인 태도로는 부족하는 것.
따라서 학생들이 필요로하는 것은 당장의 고용시장에서 취업을 하느냐 문제뿐만 아니라, 근본적으로 삶에 대비할 수 있는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마치 결론이 교육에서 나버린 것처럼 마무리 되었지만,
책의 편재로는 기계에 맞서는 경주라는 챕터에서 급진적인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해 4가지의 재분배를 제시한다. 돈의 재분배(기본소득), 시간의 재분배(주당 근로시간 단축), 과세의 재분배(노동이 아닌 자본에 부과하는 세금), 그리고 로봇의 재분배. 그 중 과세의 재분배는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 또한 "재산에 진보적 성격의 세금을 매기는 것이 불평등을 해소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주장한 부분이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부동산 정책은 강남 집값을 잡지 못해 풍선효과처럼 서울 곳곳의 부동산 값이 올라갔고, 비트코인은 미국과 중국의 규제에 의해 반토막 나는 사단이 발생하여 멘탈 수습이 어려운 사람들이 늘어났다.
그래서 이 책을 읽은 시간이 귀중하게 여겨졌다.
이러한 와중에도!
유토피아라는 걸 꿈꿀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준 책이기에 고마웠다.
물질적으로는 풍요롭지만 정서적으로는 빈곤한 시대를 살아가면서, 러셀의 말처럼 "상상과 희망이 살아있고 꿈틀거리는 세상" 즉, 유토피아라는 것을 기대해보자는 취지가 자못 신선했다.
우리는 언제부턴가 로봇에게나 해당하는 '생산성'에 집착하고 있다. 인간은 시간을 소비하고, 실험하고, 놀고, 창조하고, 탐색하는 활동에 탁월한 존재이다. 따라서 내일의 세상에는, 상황을 조종하고 창조할 수 있는 인간 본연의 가치가 더 잘 드러나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