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자라고 엄마도 변한다
처음 아이를 가지고 출산하고 한참 어린 아이를 돌보던 시기에 나는 ‘억울함’이라는 감정이 제일 컸다. 왜 여자만? 왜 엄마만?
아이를 가져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남편에 비해, 내 몸뚱아리는 망가져가고 하고 싶은 일도 못하고 아이에 하루종일 매여있어야 하는 상황이 억울했다. 그래서 남편이 별 이유 없이 미운 순간이 많았다.
이제 두살 터울의 두 아이들이 말이 통하는 시기가 왔다. (아무 데나 뛰쳐나가지 않고)손 잘 잡고 걸어다니고, 유모차 타지 않아도 되고, 식당에서 스스로 밥도 먹고, 택시나 버스도 얌전히 앉아서 탈 줄 아는 정도의 나이. 둘째가 어리고 말이 안 통해 떼가 심하던 그 때에 비하면 지금은 때로 육아가 즐겁기까지 하다.
요새는 그 억울한 감정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오히려 반대로 생각할 때가 많다.
내가 엄마이기 때문에, 엄마인 나만 느낄 수 있고 나만 볼 수 있는 이 아이의 모습이 있다는 것. 엄마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 있다는 것.
오은영 박사님이 ‘아이들에게 엄마는 보호자이고 아빠는 놀이의 대상이다’라고 하신걸 본 적이 있다. 우리집 아이들도 엄마에게 안겨서 ‘사랑해요’라고 자주 얘기하지만 아빠에게는 그런 말을 하길 부끄러워한다. 아빠랑 있으면 에너지가 넘치고 목소리가 커지는 두 아들들. 아빠에겐 매달리고 장난 치고 공격하는게 일상이다. 아빠랑은 로보트로 공격 놀이 하는걸 좋아하고, 엄마랑은 책 읽는걸 좋아한다. 엄마한테는 온갖 감정과 필요를 쏟아낸다. 아파도 슬퍼도 엄마부터 찾는다.
엄마는 없으면 불안해하고, 아빠는 없으면 심심해한다.
어렸을 때부터 사정상 나 혼자 아이들을 데리고 재우는데, 아이들은 자기 전에 가장 사랑스럽다. 누워서 뒹굴거리며 엄마한테 안기고, 오늘 있었던 일이나 기분을 조잘조잘 얘기하고, 낮에 미처 못한 안마나 쓰담쓰담도 해준다.
이런 아이의 모습은 아빠도, 할머니도, 이모도… 그 누구도 보지 못한다. 엄마이기 때문에, 엄마에게만 주는 아이들의 사랑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래도 엄마와 있는 시간이 가장 많다보니 아이들의 말 하나하나, 표현이나 표정 하나하나도 엄마인 내가 가장 세밀하게 살피고 보게 된다. 아빠는 모르는 아이들의 모습이 많다. 아무리 영상을 찍어서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보여드려도 엄마인 나만 모든 순간을 놓치지 않고 다 느낄 수 있다.
육아가 힘들 때, 아이들이 귀엽다고 예쁘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가끔 보니까 예쁘죠, 맨날 보면 힘들어요.’라고 했었더랬다. 그런데 지금은 아이들을 하루종일 볼 수 있어서 좋다.
나는 같은 사람인데, 아이들은 하루가 다르게 자라고, 육아의 환경도 마음도 이렇게나 금방 달라진다.
오늘 오랜만에 큰 마트에 있는 푸드코트에 갔는데 아이들이 놀 수 있는 시설이 잘 되어있었다. 우리 아이들보다 아직 한참 어린, 아장아장 겨우 걸어다니는 아이들과 그 부모들을 보는데 마음이 짠했다. ‘많이 힘들 때인데..’ 싶어서 괜히 뭉클하다. 나는 가만히 앉아서 아이들이 노는걸 지켜만 봐도 되는 시기라 가만히 앉아서 생각한다. '저 엄마는 둘째 임신한 만삭의 몸으로 사진을 찍어주면서 쫓아다니네?’, ‘헉! 저 집은 설마 쌍둥이야? 대단하다’ 이러면서 혼자 육아 관전 모드.
아이들은 생각보다 더 빨리 자란다.
육아에 지친 모든 엄마들이여, ‘이 또한 지나가리라’ 되뇌여봅시다. 그리고 다시는 오지 않을 지금 이 순간, 더 많이 안아주고 더 많이 사랑해줍시다. 후회하지 않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