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 줄 모르는 우리
역시나 우리는 놀 줄 몰랐다. 아직도 친구들과 로드트립 얘기를 하면 라스베가스가 가장 재미없었다고 꼽는다. 정말 재미가 없었다. 우리는 최저임금 받으며 생활하는 가난한 박사생들이니, 대단한 쇼를 보거나 카지노에서 몇 시간을 보낼 수 있을만한 돈이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걸 하기로 했는데
스카이 팟에 올라가서 라스베가스 내려다 보기
인 앤 아웃 버거 먹어보기
라스베가스 사인 앞에서 사진 찍기
수영장에서 놀기
스카이팟 (sky pod)에 가면 옥상에 전망대가 있고 놀이기구가 있다. 여기서 라스베가스가 한눈에 쫙 보이는데 아주 탁 트여있고 좋았다.
베가스를 관통하는 큰 도로인 스트립도 한눈에 보인다. 이 스카이 팟 꼭대기는에는 무시무시한 놀이기구가 있다. 청룡열차같은 걸 타면 (요즘도 청룡열차라고 하나요...?ㅋㅋㅋ) 그 열차를 옥상에서 수직으로 내려보내는 기구인데, 자이로 드롭처럼 완전히 퐝 떨어지는 건 아니고 그냥 수직으로 세울 뿐이다. 난 놀이기구에 딱히 무서움을 안 타는데 이건 보는데도 좀 무서웠다.
인 앤 아웃 버거는 우리 동네는 없었고 서부에만 있었다. 익히 소문을 들어서 일부러 시간을 내 들러서 점심을 먹었다. 나는 기대보다는 못 미쳤다. 가격에 비하면 맛은 분명히 있는데 내겐 파이브 가이즈 (five guys)가 최고다. 진짜 파이브 가이즈 존맛탱. 그나저나 인 앤 아웃에서 찍은 사진은 못 찾겠다 쩝.
유명한 베가스 싸인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여기는 자원봉사자인지 시에서 고용한 사람인지, 아무튼 안내원이 있는데, 더우니까 우산을 쓰고 메가폰을 잡고 있다. 사람들이 사진 찍으러 오면 일단 줄을 세운다. 줄 서 있으면 한 그룹씩 저 사인 앞에서 사진을 찍도록 주변을 정리 정돈해주고, 단체사진 같은 것도 아주 친절하게 찍어준다. 정말 좋은 아이디어!
나를 무등 태워준 시모네는 게이인데 운동을 너무너무너무너무 열심히 해서 몸짱이다. 시모네를 따라 나, 조지, 맷, 아룬 이렇게 1학년 때부터 헬스를 시작했다. 시작한지 한 한 달 째 즈음에 형진오빠와 주아오가 2-3번을 함께하더니 그 뒤로는 안나왔다. 우리는 아룬이 가지고 온 P90X라는 미친 운동 프로그램을 따라했는데 이게 어느정도로 힘들었냐면... 조지, 맷, 형진오빠, 주아오 4명은 소변 볼때 피를 볼 정도로 힘들었다. 허허허 유일하게 피 보지 않은 사람은 시모네, 아룬, 나인데, 우리 모두 처음 한 달 동안은 웃지도 못했다. 배가 너무 땡겨서.
개인적으로 라스베가스에서 가장 재밌었던 건 수영장에서 배구를 한 거다. 우리는 놀 줄도 모르지만 예체능도 차암 못한다. 진짜 우리끼리 공 던지며 노는데도, 제대로 던지는 사람 없고 제대로 받는 사람도 없었다. 그럼에도 오지게 추운 원래 동네에서는 8월에나 가능한 수영을 여기서 3월에 할 수 있는 것 자체가 신났다. 유후~
라스베가스에 있는 호텔 대부분은 일종의 테마를 갖고 있다. 호텔 하나하나가 작은 테마파크처럼 꾸며져 있는데, 생각보다 잘 만들어 놔서 놀랬다. 피라미드나 스핑크스는 약간 조악했지만, 베니스는 정말 깔끔하게 잘 꾸며 놨다. 시모네는 이탈리아 사람이라 이걸 보고 감탄했다. 생각보다 잘해놨네? 라며
밤이 돼서는 나름 클럽에 가보겠다고 다들 없는 옷을 챙겨 입고 스트립으로 나갔다. 우리가 얼마나 놀 줄 모르냐면 클럽을 하나도 못 찾았다. 스트립에서 유명하다는 호텔은 다 들어가 봤는데, 스트립쇼를 하는 클럽밖에 못 봤고 그냥 춤추면서 노는 클럽은 밤새 못 찾았다. 결국 새벽녘에 다들 지쳐 숙소로 돌아왔다. 세상에 클럽도 못 찾을 정도로 못 노는 우리라니... 진짜 너무했다.
라스베가스답게 스트립 클럽도 꽤 많았는데, 이건 매직 마이크처럼 여성을 대상으로 한 스트립 클럽이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스트리퍼 남자들이 전부 호주 사람이거나 호주인인 척 하는 테마이다. 그걸 어케 아냐면 "Thunder from Down Under"라고 광고하기 때문이다. Down under는 "저~ 밑에"라는 뜻으로 대개 호주를 일컫는다. 이걸 보고 시모네는 침을 흘렸고ㅋㅋ 우리는 호주 출신인 탐을 thunder라고 놀리기 시작했다. 탐은 키는 크지만 엄청 말랐고 하얀데, 저 사진과 너무 상반되는 모습이라 더더욱 thunder라고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