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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진 Oct 16. 2017

제주도에서 찰나를 낚는 사람들

반려견 '보리'와 함께 하는 제주도 한달살기 

이야기 두 번째 : 기다린다는 것


2박 3일 등 짧은 기간이 아닌 제주도 한 달 살기를 하면서 가장 좋은 것은 기다릴 수 있는 시간의 여유다. 오늘 안에 어디를 꼭 들러야 하는 부담감이 없다. 시간에 쫓겨 정해진 시간에 자연을 힐끔대며 볼 필요도 없다.  

오늘 못 보면 내일, 지금 못하면 나중에 하면 되는 것이다. 게을러 보일 수도 있지만 도시에서 쫓기며 살아왔으니 그 정도 사치는 자신에게 주는 작은 선물이다. 

시간에 자유롭다보니 해가 뜨기 시작한 아침이나 해가 저물고 있는 저녁의 바다길 산책은 제주도 한 달 살기의 가장 큰 즐거움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늘과 바다의 크기를 헤아리다보면 없던 배포(排布)도 생긴다. 세상이 호락호락하지는 않지만 ‘살다보면 어떻게 되겠지’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배출되는 시간이다.


바다를 옆에 두고 걷다보면 심심치 않게 낚시꾼을 볼 수 있다. 얼굴과 풍채에서 풍기는 연령대로 전문가인지, 초보자인지 지레 짐작할 수밖에 없다. 연령대가 높을수록 전문가처럼 보인다. 사실 나이가 들어 처음 낚시를 하러 온 것일 수도 있는데 연령대가 높을수록 경험이 많을 것이라는 판단의 오류인 셈이다. 낚시꾼 못지않게 눈에 띄는 사람들이 있다. 찰나를 낚으려는 사진가다. 여기서도 판단의 오류는 계속된다. 카메라의 렌즈 크기로 전문가와 초보자를 구분한다. 비싼 돈을 들여 큰 렌즈를 사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둘은 낚아야 하는 것이 서로 다르기는 하지만 찰나(刹那)를 기다린다는 점에서는 같다. 찰나를 낚기 위해 그들은 한참을 기다린다. 


언제 낚을까, 그 장면을 지켜보면 ‘나는 무엇을 기다리고 있을까?’라는 생각까지 번진다. 20대 청춘 때야 ‘사람’을 기다리고 ‘꿈’을 기다리며 설렘과 희망으로 산다. 불안한 시간이지만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재미가 있다. 40대는 그 재미가 반감된다. ‘콩 심은데 콩나고, 팥 심은데 판 난다’는 말처럼 예측가능하다.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알게 된다. 그래서 일상의 반대라고 하는 여행을 떠나는지도 모른다. 예측 불가능한 ‘설렘’과 ‘희망’의 감정을 찾고 싶은 것이다.


이번 제주도 여행에서 강아지 ‘보리’도 많이 기다렸다. 시간의 크기로 보면 주인과 떨어지는 시간은 대폭 줄었다. 거의 24시간을 붙어 다녀야 하는 여행이라는 특성 때문이다. 일상처럼 주인이 출근한 후 몇 시간을 혼자 있을 필요가 없다. 그런데 기다림의 깊이는 더욱 커졌나보다. 분리 불안 증세도 가끔 보인다. 애견동반 여행이 쉽지 않은 것은 의도와 달리 함께 하지 못하는 상황이 생기는 것이다. 반려견 동반 가능 식당이 많이 생겼다고는 하지만 블로그를 믿고 찾아가면 허탕 칠 때도 많다. 사전에 전화를 걸어 확인하는 이유다. 


그럴 때마다 번갈아 식사를 해야 한다. 남은 이는 보리와 함께 차안에서 기다린다. 장을 볼 때도 마찬가지다. 차안에 있는 보리의 눈빛에는 ‘그리움’이 쏟아진다. 차 문을 열고 얼굴을 보여주면 그때야 안도의 눈빛으로 한숨을 쉰다. 여행지가 주는 긴장감은 강아지도 힘들게 하나보다. 그리움이 커지지 않도록 자꾸 꼭 안아주게 된다.

장을 보러 간 주인을 기다리는 보리의 눈빛은 간절하다. 옆 사람을 의식하지 않고 '그리움'으로 주인이 사라진 그 곳만 응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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