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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LOVESTAGE Jan 14. 2022

해외 공연 자막 안경으로 보자?

우리 작품도 해외에서 자막으로?

2018년 우리 작품의 해외 진출에 큰 걸림돌 가운데 하나인 언어 장벽을 어떻게 극복해야하는지에 대한 고민들을 갖고 「가디언Guardian)」과「더 스테이지(The Stage)」에서 편집장으로 활동중인 공연 평론가 린(Lyn Gardner)를 만나 인터뷰를 하고 공연 작품을 보고 리뷰를 쓰는 평론가들은 자신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언어로 진행되는 작품을 볼 때 그리고 자막의 적절한(적절하다는 표현이 맞는지 모르겠으나) 사용이 작품 평가에 영향을 주는지, 이러한 자막 사용으로 오히려 관극에 방해를 받을 때 작품의 완성도는 어떻게 평가되는지 궁금한 점들을 물어 기사(The Korean Theatre Review 2018. 2)를 쓴 적이 있었다. 

         당시 그녀는 미주나 유럽에서 온 작품이 아니라면 작품 선정에 자연스럽게 심리적 장벽이 있을 수 있지만 꼭 봐야하는 작품일 경우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고 했고, 언어는 공연을 보는데 일부이기에 만약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그 부분은 배제하고 보이는 것 위주로 작품을 평가하면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미국인들이 왕립 세익스피어 극단(RSC)작품을 보면 거의 이해하지 못한다며 그들에겐 셰익스피어 영어가 외국어인 셈이라 비유했다. 그때는 오히려 언어를 포기하고 무대에서 펼쳐지는 배우의 연기, 무대 공간, 장치 같은 언어 외적인 서브텍스트(Subtext)가 주는 모든 것을 종합해 평가한다고 했다. 

         우리도 가끔 외국어로 공연되는 연극을 봤음에도 불구하고 그 작품에 대해서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거나 분석이 불가능한 이유가 바로 번역된 자막과 함께 봐야했던 불편함 탓이다. 이는 번역이 잘 되었다 하더라도 보여지는 텍스트의 양이 지나치게 길면 바쁘게 읽을 수밖에 없어서 내용을 숙지하는 데 여전히 어려움이 따랐기 때문이다. 관객들의 실제 반응들을 모아보면 전반적으로 자막 스크린의 위치, 글자의 색, 크기, 문장 길이, 출력 시간, 가독성, 그리고 동시성의 문제로 거의 공통적인 의견을 찾아볼 수 있다. 이런 문제들로 무대에서 벌어지는 배우들의 연기를 포함한 무대 정보와 자막 정보를 동시에 인지하는데 방해를 받아 자막이 공연 관람에 도움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불편했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1.     기존 자막의 형식

라이브 공연을 이해하는데 자막에 의존해야 한다면, 무대 양 옆(또는 위 아래)으로 놓인 스크린을 보고 배우들의 연기를 보는 행위를 끊임없이 반복하느라 연극 자체를 제대로 집중할 수가 없게 된다. 마치 세계문학전집 한 권을 그리스어로 읽은 느낌이다. 인물의 표정과 몸짓 하나하나를 유심히 지켜보고 싶었지만 자막을 읽느라 배우들의 움직임을 많이 놓칠 수밖에 없다. 이보다 더 난처한 경험은 배우들의 대사는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고, 그렇다고 자막을 열심히 읽어봐도 이해가 되지 않음에 있다. 초반부터 이해를 못한 채 작품이 계속 흘러가다 보면 자막 읽기에 급급해진다. 필자의 경험에 거짓말 조금 보태면 너무 바빠서 작품이 지루할 틈이 없다. 


         현재 일반적으로 공연장에서 쓰이는 자막의 형식은 아래처럼 정해져 있다. 


·       무대형 자막 스크린- 무대 양편, 위 아래- 시선의 이동거리가 길어 질수록, 관객은 더 큰 피로감을 느낄 뿐만 아니라 무대 정보와 자막 정보를 동시에 충분히 인지하는 데에 방해가 된다. 

·       좌석형 자막(personal captioning devices)- 무대형 자막 스크린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나왔으나 좌석형 자막 또한 설치 위치가 어디가 되든 실제 공연현장에서 벗어나는 시선적 이동을 필연적으로 수반하므로 그 불편함을 완전히 해소 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런 좌석 일체형 자막 스크린은 국내에서는 대표적으로 세종문화예술회관  대극장 1,2층의 객석 의자에 설비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사진: Denver Centre)

이런 좌석 일체형 자막 스크린은 국내에서는 대표적으로 세종문화예술회관 

대극장 1,2층의 객석 의자에 설비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사진: Denver Centre for the Performing Arts)


·       자막 안경–  위에 언급된 전통적인 자막 사용의 문제점을 해소하기위해 2018년 가을부터 영국 국립극장은 음성인식 기술을 기반으로 한 자막 안경을 개발해 객석에 도입했고, 매표소에서 필요에 따라 자유롭게 신청할 수 있도록 상용화 했다. 기존 자막(Caption)의 한계를 넘어서 배우의 목소리가 전달되는 곳이면 안경이 소리데이터를 문자로 자동 변화해주는 음성인식기술을 이용한 것이다. 이를 두고 국립극장 예술감독 [Rufus Norris]은 “기술발전을 통해 이들이 단지 1분만이라도 공연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면 관객개발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우리 영국의 시민들에게 봉사할 수 있는 기회적 측면에서도 환상적인 일이다” 라고 말한 바 있다. 

연극, 뮤지컬 자막은 공연 전에 이미 만들어져 아무리 약속된 내용을 바탕으로 자막이 제공된다 하더라도 라이브 공연엔 가끔 배우가 즉흥적으로 애드리브를 이용하거나 대사를 건너뛰기도 하는 등 예기치 못한 상황은 벌어지기 마련이다.  이럴 땐 자막 오퍼레이터들은 재빨리 자막이 없는 ‘검은색 슬라이드’ 화면을 띄워 자막과 대사가 엇나가는 일을 막아내는 순발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여기까지가 대략 라이브 무대에서 경험할 수 있는 자막이다. 


1.     영상화 시대의 자막 

         그렇다면 지금 한국에서 활발히 논의되는 공연을 ‘영상화’ 할 경우엔 어떨까? 연극 자막은 주로 무대의 좌우 또는 상하에 별도로 설치된 자막스크린에 영사된다. 그러므로 무대의 영역과 스크린의 영역이 겹치지 않기 때문에 독립적 공간이 유지된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관객으로 하여금 인지의 불편을 겪게 한다는 단점이 있었다. 하지만 영상 자막의 경우, 자막이 영상과 겹친다는 점에서 영상의 손실을 초래하기는 하지만 자막을 좀 더 편리하게 확인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간혹 배우가 미리 약속된 내용과 조금 다르게 즉흥적으로 연기하고 실수를 하면 동시성이 어긋날 수 밖에 없으나 영상화 자막은 이런 다양한 변수가 존재하지 않는다.


         세계 라이브 공연 시장의 유통은 철저히 영어권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다. 따라서 외국 작품을 언제나 자막으로 접했던 국내 관객들과 달리 영어권 관객들은 무대 자막에 전혀 익숙하지 않는 문화적 풍토를 갖고 있어, 무엇이든 자막을 놓고 본다는 것은 상당히 불편한 체험이다. 위에 언급된 일반 자막의 물리적 환경까지 더해져 우리 작품의 해외 유통에 방해가 된 요소를 고려해본다면 영상화에 더해진 자막은 오히려 다행이라 생각된다. 


         영상은 배우가 보여지는 장면 내에서만 대사에 해당하는 번역만 제공하면 된다. 배우가 발화하는 대사 가운데 끊김(pause)이 발생할 때 관객들로 하여금 대사 흐름에 맞춰서 자막을 끊어 읽을 수 있도록 번역가 또는 오퍼레이터가 끊어 읽기 지점을 정하는 작업, 즉 ‘스폿팅(spotting)’에만 신경을 쓴다면 비교적 라이브 무대의 자막보다 소통하는데 장점이 있다고 하겠다. 스폿팅이란 사실 영상 편집에 자막을 한번이라도 직접 넣어본 경험이 (특히 번역해서)있는 프로듀서라면 무슨 말인지 바로 이해될 것이다. 


         라이브 공연의 경우 무대와 자막 스크린의 거리가 멀기 때문에 관객이 배우들의 연기, 대사와 자막을 한꺼번에 인지하기에는 어려움이 따르기 마련인데 이런 인지적인 문제를 감안해서 연극 자막은 배우의 대사 시작 이전 또는 마침 이후로 자막을 실제 보다 2~3초 정도 빠르게 혹은 늦게 처리하기도 한다. 하지만 영상 자막은 이런 물리적 거리가 없어 영상내 자막 공간의 가로 길이와      행을 정하고, 또 공연용 대본을 자막으로 쓰는 것이 아닌 자막용 번역이 잘 되기만 한다면 스폿팅에 주의해 대사의 시작과 끝에 맞게 동시성을 유지할 수 있다. 


         영국은 공연의 최초 기획 단계에서부터 고령자나 청각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소외시켜온 문제를 해결하기위해 대부분의 공연에서 캡션(Caption Service, 자막서비스의 다른 용어) 서비스를 하고 있다. 

공연 자막의 제작 및 실행 과정에 있어서 빠질 수 없는 존재인 자막 오퍼레이터는 공연 시작 전 최소 50시간 정도를 자막의 분석, 스폿팅, 수정 작업에 시간을 보내고 있다. 천천히 읽거나 두 번 읽어야 이해가 되는 자막 번역은 필요 없다. 배우의 대사 속도가 짧아진다면 번역의 축약 기술이 필요하고, 필요하다면 전통적인 자막의 방식 외에도 작품의 장르와 성향에 따라 문자보다 이미지에 익숙한 젊은 세대를 반영하는 이모티콘을 이용해 대사의 간결함과 감정까지 전달 하는 공연 자막의 새로운 실험도 필요하다. 

1.     새로운 실험의 필요성

         해외 진출 또는 우리 작품의 노출이라는 면에서 보면 국내 프로듀서나 프로그래머, 연출가들이 해마다 영미 공연 시장에 나가 작품을 보고 대본을 구입해 스스로 번역해 다시 읽어보고 라이선스를 하고 있으나 그 반대로 영미 프로듀서가 한국으로 가서 우리와 똑같은 노력을 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심지어 우리는 온라인으로 대본도 찾아보기 쉽지 않은 구조이고 국내에서 흥행이 된 작품의 제작사 홈페이지를 들여다 보면 그 뺵빽하게 홍보하는 한글 안내페이지와는 달리 외국어(영어) 페이지는 단출하기 그지없다. 이런 점에서 공연 작품의 트레일러 및 전체 영상화는 특히 지금과 같은 환경에서 아카이빙외에도 해외 진출의 중요한 교두보이다. 해외 온라인 축제에서의 교류, 향 후 작품의 검색  등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국내 작품(희곡)의 노출이 비교적 쉬워진다는 순기능이 있기 때문이다. 


         가끔 해외에서 한국 영상을 유튜브로 보고 있으면 해외에 없는 독특한 점이 발견된다. 바로 한국의 다이나믹한 예능 자막이다. 국내 미디어 관련 학과에서는 오락이나 교양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자막이 시청자의 주의, 정서, 그리고 영상을 기억에 미치는 영향력에 대한 석사 연구가 활발히 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TV같은 방송 자막에 보이는 활발한 연구와는 달리 국내 공연 자막에 관한 연구는 아직 걸음마 수준이다. 그마저도 최근 발표된 자료는 우리 공연의 해외 진출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해외 작품의 국내 수용에 초점이 머물러 있다. 다행스러운 점은 해외 원작의 내한 공연이 증가하면서 한국어 자막에 관심이 집중되기 시작했고 일부 우리 작품의 해외 투어를 적극적으로 기획하는 제작사에서도 자막에 공을 들이고 있는 모습이 포착된다는 점이다. 자막의 내용은 물론이고 캐릭터나 분위기에 따라 서체, 글씨 크기를 달리하기도 한다. 필자는 번역의 과정에서 반드시 영국 배우들과 현장에서 리딩의 과정을 두 세차례 거치고 있다. 국내에서의 번역 지원이 되고 있는 공연용 대본의 번역과 자막용 번역은 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현재 진행되는 공연의 영상화와 맞물려 공연의 장르와 작품의 성격에 맞는 말풍선, 예능 자막 등등 우리 공연 학계에서도 우리 작품이 해외에서도 잘 수용될 수 있도록 공연 자막 관련해 활발한 연구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서로 알아듣지 못하는 말을 각자가 자기의 언어로 페이지 늘여서 발표하는 그런 연구 논문보다는 실용적인(Practical) 소 논문들이 기다려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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