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해피엔딩’으로 본 브로드웨이 크레딧 전쟁
“0.1%의 지분이 100%의 존재감을 만든다”
― ‘어쩌면 해피엔딩’으로 본 브로드웨이 크레딧 전쟁과 한국 제작사가 당장 바꿔야 할 계약 전략
브로드웨이 6관왕에도 사라진 이름들
창작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Maybe Happy Ending) 은 2025 토니상 시상식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포함해 6개 부문을 쓸어 담았다. 그러나 미국작품의 포스터·프로그램북·언론 보도 어디에서도 초기 개발사를 자처했던 우란문화재단(Wooran Cultural Foundation)과 국내 시즌 공동제작사 CJ ENM의 이름을 찾기란 쉽지 않다. 왜일까? 답은 간단하다. 브로드웨이는 “리스크를 진 만큼만 빌링(billing)을 준다” 는 불문율이 지배하는 시장이기 때문이다.
‘지분→빌링’ 원칙: 이름 대신 투자로 말하라
브로드웨이 제작 계약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Above-the-Title Producer(리드/공동 프로듀서): 제작비의 10 % 안팎을 책임지거나 저작권을 직접 보유한다. 포스터 헤더, 플레이빌(Paybill) 표지, 토니상 명단 모두에 대문짝만 한 이름이 올라간다.
Development Partner·Special Thanks: 워크숍, 리딩, 공간·기금을 제공해도 지분이 없으면 포스터 하단 8pt 글씨 한 줄, 혹은 프로그램북 맨 뒤 ‘감사 리스트’에 머무른다.
우란문화재단은 창작 워크숍 ‘Project Box Seeya’부터 대학로 초연(2016)·영어 리딩(2016)까지 제작비를 댔지만, 브로드웨이 본 제작에 지분을 넣지 않았다. CJ ENM 역시 한국 내 흥행 시즌을 주도했어도 뉴욕 옵션 계약(Option Agreement)에서 투자조항과 빌링권을 확보하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두 기업은 토니상 무대에서 “한국의 숨은 공로자” 정도로만 언급됐다.
한국언론사만의 호들갑을 제외하면 해외 언론에서도 크레딧 노출 빈도로만 보면, ‘Maybe Happy Ending’은 브로드웨이 제작팀(Jeffrey Richards & Partners) 중심의 미국 내 작품으로 인식된다.
계약으로 이름을 살린 해외 선례들
결국 “지분을 넣거나(투자) ↔ 계약서에 박아두거나(옵션)” 둘 중 하나를 실행한 개발사만이 글로벌 홍보물 헤드라인을 차지했다.
한국 제작사가 당장 고려해야 할 ‘협상 조항’
Credit Line Clause
“On all advertising and paid publicity materials of first and second billing, the following shall appear:
‘Originally developed and produced by [회사명]’
Position Protection
“Billing to appear immediately below or equal in size to the smallest Co-Producer credit.”
Logo Usage Right
“Company logo to be used wherever producer logos appear, subject to union rules.”
옵션 계약서(Option Agreement) · 강화 계약서(Enhancement Agreement)에 이런 조항을 박아두면 지분이 없더라도 최소 Playbill 1면, 공식 홈페이지 Credit 섹션엔 이름이 남는다. 이 조건을 거부한다면, 투자액의 1~2 %라도 Co-Producer로 넣어 “Above-the-Title”에 진입하는 편이 효과적이다.
“크레딧은 브랜드 자산” — 놓치면 후발주자만 좋다
브로드웨이 제작비는 평균 1,800만달러(약 250억원). 초기 개발사가 1 %만 투자해도 18만달러로 전 세계 언론·포스터·토니상 명단에 회사명이 남는다. 이는 해외 바이어를 만나는 순간, 돈보다 강력한 레퍼런스가 된다. 실제로 NYTW는 Hadestown 이후 투자유치가 38 % 증가했고, RSC는 Matilda 한 작품으로 10년치 교육 프로그램 운영비를 확보했다.
결론: “우리가 만든 빨간차에 번호판부터 달자”
<어쩌면 해피엔딩>은 한국 뮤지컬 최초로 브로드웨이 최우수 작품상을 거머쥐었다. 그러나 씨앗을 뿌린 한국 기업 이름은 머리글자가 아닌 각주로 남았다. 다음 ‘빨간차’를 준비하는 한국 제작사·재단, 예술경영 지원센터가 기억해야 할 것은 단 하나다.
“0.1 % 투자든, 단 한줄의 옵션 조항이든, 글로벌 크레딧은 미리 사수하는 사람이 갖는다.”
지분을 품고, 계약서를 다듬어라. 그래야 K-뮤지컬·K-연극이 세계 시장 헤드라인에 당당히 한글 이름을 올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