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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딸기체리수박 Jul 23. 2021

임원도 워크샵에서 쫄쫄이 입고 장기자랑을 한다.

과몰입_영화 '넌 실수였어'

 사회 초년생 시절, 회사에는 노래방 회식이 그렇게도 많았다. 무슨 일만 있으면 노래방에 갔고, (아니, 솔직히 아무 일이 없어도 노래방에 갔다.) 막내급 사원들은 당시 유행하는 아이돌 그룹의 춤과 노래를 하며 선배들 앞에서 재롱을 떨어야 했다.


 난 친구들과 노래방에 갔을 때도 그렇게 춤을 추고 노는 타입이 아니었고, 누가 내 앞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것을 보는 것도 그다지 신나지 않았다. (방탄소년단, 빅뱅, 블랭핑크 등등 제외)

 근데, 내가 잘 알지도 못하는 회사 사람들 앞에서 웃으며 춤을 추고 있자니, 미칠 노릇이었다. 자괴감이 들었고, '내가 이러려고 기를 쓰고 여기 입사한 건가?'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머리를 스쳤다.


 그 힘들었던 시간들이, 비단 막내급 사원들만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어떤 회사에서는, 임원급 직원이 워크숍에서 쫄쫄이를 입고 장기자랑을 해야 한다. 그것도 본인이 관리하는 전체 직원과 함께 단체로 쫄쫄이를 입고 회장님을 위한 장기자랑을 해야 한다.


 그래도, 쫄쫄이 장기자랑은 약과다. 최소한 목숨이 위험하지는 않았으니까. 쫄쫄이를 입고 장기자랑을 하던 그 임원은, 회장님의 눈에 들기 위해 썩 내키지 않는 상어 체험을 하다가 거의 황천길을 건널 뻔하기도 했다.


 오, 그런 대박 사건이 있던 회사가 도대체 어디야?

 이런 궁금증을 가지고 있는 분들을 실망시켜서 미안하지만, 쫄쫄이 임원은 영화 속에 존재한다. 쫄쫄이 장기자랑과 상어 체험은, 오늘 소개할 영화 '넌 실수였어'에서 일어난 일이다.

https://youtu.be/98YFfT9YMPM

넌 실수였어 예고편

 본격적으로 쫄쫄이 임원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 아주 간단하게 영화에 대해서 소개를 해보면,

출처 : 다음 영화, wrong missy

 위 이미지에 나온 두 명의 인물은, 남자 주인공인 '팀'과 여자 주인공인 '멜리사(미시)'다. 둘은 소개팅에서 처음 만났다. 팀은 차분하고, 소극적이지만, 멜리사는 적극적이고, 어떻게 보면 굉장히 엽기적이다. 여기저기 시비를 걸고 다니기도 하고, 갑자기 화장실에 쳐들어오기도 한다. 팀은 멜리사를 굉장히 부담스러워하고, 둘의 소개팅은 그렇게 끝나버린다.


 그러던 어느 날, 팀은 공항에서 운명의 상대를 만나게 되는데!

 그 운명의 상대의 이름은? 신기하게도 멜리사다.

 운명의 상대와 극혐의 소개팅 상대의 이름이 모두 멜리사인 것이다.


 하지만 운명의 상대 멜리사는 정말 아름답고, 통하는 것도 많다. (이제부터 운명의 상대 멜리사는 멜리사, 소개팅녀 멜리사는 미시라고 적겠음) 팀은 멜리사에게 전화번호를 건네고, 둘은 연락을 하면서 점점 가까워진다. 심지어, 팀은 휴양지에서 진행되는 전 직원 워크숍에 멜리사를 초대하고, 멜리사는 초대에 응한다.


 워크숍으로 떠나는 비행기 안에서, 설레는 마음으로 멜리사를 기다리고 있는 팀.

 근데, 팀의 옆자리에 탑승한 건 멜리사가 아닌 미시였다. 알고 보니, 그동안 팀이 연락한 사람은 소개팅에서 만난 미시였던 것이다. 하필 운명의 상대와 기피 대상의 이름이 같았던 탓에, 대형 실수를 저지른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미시와 워크숍에 통행하는데, 일정 내내 미시는 팀을 따라다니며 온갖 기행을 일삼는다.


 과연 둘의 사이는 어떻게 될까?

 


 어떻게 보면 이 영화는 뻔한 로맨틱 코미디 클리셰도 많고, 특별한 긴장감이 없는 영화인 듯 보이지만 미시의 예측 불가 행동과 그걸 보고 괴로워하는 다른 등장인물, 특히 남자 주인공의 현실을 초월한 표정이 감상 포인트다.


 그럼,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내가 이 영화의 어떤 부분에 과몰입했는지를 나눠보려고 한다.



#1. 비행기 태워서 워크숍 가는 회사, 나도 가고 싶다!

출처 : 넷플릭스 WRONG MISSY

 이 영화의 전반적인 배경이 되는 곳은, 팀의 회사 워크숍 장소이다. 영화 속 분위기를 보았을 때 전 직원 워크숍인 것으로 추정되는데, 전 직원을 비행기 태워서 휴양지로 워크숍 보내주는 회사라니! 진짜 너무 부럽다.


 워크숍 분위기도 좋아 보인다. 불필요한 회의가 많아 보이지도 않고, 쓸데없는 술 강요도 없는 것 같고, 진짜 신나게 놀면서 여러 레저 활동을 즐기는 것 같다. 솔직히 이 정도 해주면 나도 쫄쫄이 입고 상어 먹이 주기 체험할 것 같다.


 그리고 팀이 앉아 있는 저 비행기 좌석을 한 번 보면, 이코노미가 아닌 것 같지 않은가?

 물론 팀이 임원이기는 하지만, 그걸 고려하더라도 좋은 대우를 해주는 회사인 것 같다. 심지어 휴양지 워크숍에 애인 동반이 가능한 회사라니...?

출처 : 넷플릭스 WRONG MISSY

 그리고, 숙소가 또 얼마나 어마어마한지! 풀빌라다. 다른 직원들이랑 숙소를 같이 쓸 필요도 없다. 팀(그리고 미시)을 위한 숙소인데 저 정도다.

 회사 워크숍에서 풀빌라라니?!! 이 정도면 정말 대단한 대우 아닌가? 친하지도 않은 직원들끼리 몇 명씩 단체로 좁은 숙소에서 자는 게 아니라, 1인실을 준다고?

 

 내가 내 휴가 쓰면서 내 돈 내고 여행 간다고 해도 못 가게 하는 회사가 많은 이 판국에(지금은 물론 코로나 때문에 어렵겠지만, 예전을 생각해도...) 저런 풀빌라 숙소를 잡아준다고?


 이 회사 도대체 어디야?


 이상하게도 영화를 보는 내내, 해외 워크숍 보내주는 회사 없는지 그 생각만 자꾸 머리를 맴돌았다.



#2. 직장인은 어쨌든 직장인이다.


 저렇게 좋은 회사를 다니지만, 팀은 전반적으로 약간 무기력하고 의욕이 없는 듯한 느낌을 주는 캐릭터였다. 저렇게 좋은 회사 다니면서, 뭐가 그렇게 불만일까?

출처 : 넷플릭스 WRONG MISSY

 내 질문에 대한 답변은, 영화 속 내용이 조금 진전이 되면서 확인할 수 있었다. 물론, 비행기 태워서 전 직원을 휴양지로 보내주는 대단한 회사지만, 아무래도 회사 분위기가 좀 이상하다.


 일단, 회사 내 실적 압박이 대단한 것 같다. 업무적으로 팀은 제스라는 또 다른 임원과 경쟁 구도를 갖고 있다. 근데 제스가 팀보다 실적이 훨씬 좋아서, 이로 인한 압박이 조금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팀 vs 제스라는 구도 속에 직원들도 경쟁 구도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경쟁과 실적 압박이 있는 회사. 사실 말이 경쟁이고 말이 압박이지, 내가 옆에 있는 동료보다 수치적으로 더 나은 결과를 만들어야 한다는 게 보통 압박은 아닐 것이다.


 또, 직원들은 회사의 회장을 우상처럼 대해준다. 그걸 보면서, '아, 저 회사도 빡세겠는데?' 싶었다.

 회사 워크숍에서도 회장님의 마음에 드는 장기자랑을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 영화 속 설정상 팀은 회사 임원 중 하나다. 근데 회사 임원도 어쩔 수 없는 직장인이었던 것이다. 그는 임원이라는 본인의 위치에도 불구하고 쫄쫄이를 입고 열심히 장기자랑을 한다. (솔직히, 지금 이 글을 읽는 직장인 중에 회사에서 쫄쫄이 입고 장기 자랑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난 절대 못하고, 안 한다.)


 영상을 통해 보면 장기자랑의 퀄리티도 꽤 높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만약, 내가 저런 퀄리티의 장기자랑을 해야 한다면, 아마 거의 한 달 가까이 근무 후 남아서 연습을 해야 할 것 같다. (안 할 거긴 하지만...)


 또한, 내키지 않는 상어 체험을 하기도 한다. 그것도 다 회장님과 좀 더 가까워지기 위해서다. 그런데, 회장님과 함께 상어 체험하다가 정말 죽을 뻔하기도 했다. 정말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팀이 아무리 좋은 회사를 다닌다고 한들, 직장인은 어쩔 수 없는 직장인일 뿐인 것이다.



#3. 냉혈한 회장님도 약한 부분이 있다.

출처 : 넷플릭스

 이 잘난 회사의 회장님은 얼핏 보면 약간 냉혈한 같기도 하다. 그리고 본인에게 약간 도취되어 있는 느낌도 있다. 늘 자랑이다. '내가 왕년에, 내 마누라가 왕년에~'


 상대방에게는 피도 눈물도 없는 것 같고, 인색하고 심지어 자기밖에 모르는 듯한 느낌을 주는 이 회장님. 알고 보니 그의 마음속에는 할머니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이 남아 있다. 한 회사를 이끄는 회장님도 어쩔 수 없는 사람이었다.


 사람은, 저마다 마음속에 품고 있는 것들이 있다. 이게 영화 속에서는 굉장히 코믹하게 그려졌지만, 내게 시사하는 바는 꽤 컸다.


 어쩔 수 없이 사회적으로 요구받는 모습을 유지하면서 사는 사람들도, 혹은 피해를 받지 않기 위해 강한 사람인 것처럼 꾸몄던 사람들도, 사실은 마음속에 누군가를 품고 산다는 것이다.


 우린 직장인이기 전에 그냥 '우리'였음을..! 깨달았다.




 이 영화를 보기 전이라면, 이 글을 한 번 읽어보고 등장인물들의 마음에 한 번쯤 이입을 해보길! 이 영화를 이미 본 사람들이라면, 이 글을 한 번 읽어보고, '오? 이 영화가 이랬었나?'하고 한 번 더 영화를 떠올려 주길!


 해당 매거진은, 모든 영화와 드라마에 대해서 직장인의 시각을 입히는 매거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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