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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히니 Dec 31. 2020

당신의 사수는 누구?_강대리, 김대리, 성대리, 하대리

과몰입_드라마 '미생'

 혹시 미생이라는 드라마를 본 적 있는가? 첫 방영을 했던 2014년에도 그랬지만 지금까지도 넷플릭스에서 꽤 인기를 끌고 있는 드라마여서, 다들 미생에 대해 한 두 번쯤은 들어봤을 것 같다.


 미생은 종합상사 원인터내셔널에 근무하는 직장인들의 삶을 보여준 드라마로, 주요 인물이었던 신입 캐릭터들이 모두 큰 인기를 끌었다. (그래서인지, 장그래 역의 임시완, 안영이 역의 강소라, 장백기 역의 강하늘, 한석율 역의 변요한 모두 그 당시보다 훨씬 유명한 스타가 되었다.)


 보통 드라마에서 나오는 진한 러브라인, 파격적인 요소 같은 것들은 없었지만 나도 이 드라마에 푹 빠져서 지금까지 2~3번쯤은 정주행을 했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 드라마를 볼 때마다 지금까지의 회사생활을 돌아보면서 다양한 시각으로 캐릭터를 분석해보기도 하고 '나라면 어땠을까?', '저게 최선이었을까?'라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다.


 외출이 어려운 요즘! 얼마 전 미생을 또 정주행 하면서, 이번엔 신입사원 네 명의 사수에 대해서 심층적인 분석을 하게 되었다.


 과연, 강대리, 김대리, 성대리, 하대리 중에 누가 더 좋은 사수일까? (이름 순서는 그냥 가나다 순서이다.)


 사실, 회사에서 어떤 사수를 만나느냐는 신입사원에게 회사생활 절반 이상, 아니 거의 80% 정도를 차지할 정도로 중요한 문제인 것 같다.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 회사에 적응을 잘할 수도 있고, 아니면 그냥 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를 떠나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출처: 드라마 캡처, 왼쪽부터 강대리 김대리 성대리 하대리

 그럼 회사에서 신입사원도 해봤고, 선배도 해본 나의 입장에서 어떤 사수가 좋은 사수 일지 심층 토론을 해보기로 하자! 참고할 수 있는 영상도 준비했으니, 미생을 본 적이 없는 사람도 나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생각하는 최고의 사수 1위, 강대리


 강대리는 장백기의 사수로 나온 캐릭터로, 사실 내가 회사생활을 하면서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이상적인 인물이다. 드라마 안의 설정에 따르면, 그는 회사 안에서 능력을 인정받아 동기들 중에 인센티브를 가장 많이 받는다. 업무에 있어서 꽤 부리는 부분도 없고 일처리가 똑 부러진다. 에이스 중에 에이스다.


 내가 그를 최고의 사수라고 꼽는 이유는 여러 가지이다.


 첫 번째, 일단 일을 잘한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그는 업무 능력이 뛰어나고 회사에서도 인정받는 인물이다. 어떤 일이 팀을 위해 필요한 일인지 잘 알고 있고, 그 과정 중에 다른 사람을 이용하거나 희생시키지 않는다.


 두 번째, 감정동요가 크지 않다. 이건 정말 대단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얼핏 보면 그는 좀 차가운 듯한 인물이지만, 그래서인지 회사 안에서 서로에게 선을 지킨다. 네 명의 대리 중에 후배에게 존댓말을 쓰는 유일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호구 같은 상사도 절대 아니다. 엇나가는 부분에 대해서는 따끔하게 지적하면서도 선을 넘지 않는다. 극 중에서 장백기와 여러 갈등을 겪어도 업무 외적으로 선 넘는 발언은 절대 하지 않고, 감정이 상할 법한 일이 있더라도 그걸 계속 담아두고 쌓아두지 않는다.

 

 세 번째, 배우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 사람에게는 조언을 제공할 준비가 되어 있다. 물론 강대리 자체가 업무가 많고 바쁜 사람이라서 그런지 본격적으로 인수인계를 해주는 장면은 나오지 않았지만, 배우고자 하는 마음으로 질문을 한다거나, 업무에 대한 의견을 내는 사람에게는 더 좋은 방향으로 갈 수 있는 나름의 조언을 제공한다.


 이런 점을 살펴볼 수 있는 몇 장면들을 보면,

https://www.youtube.com/watch?v=J57p9qCPYaQ

2분 10초부터 보세요!(출처: 유튜브 디글 클래식)

 이 장면은, 강대리가 장백기에게 간단한 엑셀 파일 정리를 시킨 후에 일어나는 일에 대한 영상이다. 사업을 기획하고 싶은 장백기는, 강대리가 시킨 자잘하고 단순한 업무에 분노하면서 엑셀 자료를 작성한다. 별 것도 아닌 일. 당연히 완벽하게 끝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장백기가 작성한 파일은 원인터 통일 양식과도 맞지 않는, 듣도 보도 못한 양식에 작성 된 자료이다.


 그저 장백기에게 화를 내고 있는 것처럼 보일 수는 있겠지만, 사실 여기서 강대리는 장백기에게 양식에 대한 안내, 업무 확인 절차에 대해서도 알려주고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9m6unQ1ujA8

1분 30초부터 보세요! (출처: 유튜브 디글 클래식)

 이 영상에서, 간단한 정리 업무를 시키는 강대리에게 분노한 장백기는,


 "저는 사업을 만드려고 왔습니다. 정산하고 표 만들고 업체 리스트 뽑고 오타 체크하려고 이 회사 들어온 거 아니란 말입니다. 이런 잡일은 인턴 때 충분히 했고...(중략)...대리님 제가 왜 그렇게 마음에 안 드십니까?...(중략)...지금은 배울 때가 아니라 써먹을 때라고 생각합니다."


 라는 헛소리를 내뱉고 나가 버린다.


 양식에 따라서 자료도 만들지 않고, 지금까지 팀에서 작성한 자료도 제대로 읽지 않았으면서 배울 게 없다고 소리치는 장백기. 나였다면, 면전에 대놓고 뭐라고 하지는 못해도 최소한 동기들 사이에 장백기가 이상한 사람이라고 소문을 냈을 것 같다.

 하지만 강대리는 업무 외적인 지적은 하지 않는다. 맞대응도 하지 않고, 뒷담화도 하지 않는다. 최소한 그 다음날 기분 상한 티라도 낼 수 있을텐데, 그것도 하지 않는다.


 나중에 강대리를 통해서 점점 업무를 배워나가는 맛을 알게 된 장백기는 강대리를 잘 따르게 된다. 그런 장백기에게 강대리도 조언을 해주기도 하고, 부족한 부분을 알려주기도 하고, 때론 장백기에게 독일어 발음을 지적받으면서 (나름 오순도순?) 회사생활을 한다.


 개인적으로, 장백기 같은 인물이 강대리라는 사수를 만난 것은 큰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장백기가 강대리를 만나지 않았다면 기초 공사가 제대로 되지 않는 채 업무 경력을 쌓아서 큰 일을 하더라도 세세한 부분을 놓치면서 업무를 추진했을 것만 같다.



내가 생각하는 최고의 사수 (공동) 2위, 김대리와 하대리


 누군가는, 어떻게 김대리와 하대리가 공동 2위가 될 수 있는지 의아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 물론 조금 애매한 부분이 있긴 하지만 난 사실 김대리 같은 사수도, 하대리 같은 사수도 각각 장단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먼저, 영업 3팀 김대리는 업무 센스도 있고 희생도 할 줄 아는 좋은 회사원이다. 물론 그건 알고 있지만 어쩐지 좀 맹목적인 구석이 있다. 오상식 차장에 대한 신뢰가 너무 커서, 그가 하자고 하는 일이면 조금 무모한 것들도 함께 한다. 그러느라 다른 동기들에 비해 인센티브도 적게 받고 주재원 파견에도 선발되지 않는 중이다.


 상사 입장에서 누군가가 김대리처럼 나를 믿어주고 지원해주면 든든하긴 하겠지만, 사수로서는 글쎄? 장그래의 경우 김대리와 업무 스타일이나 생각이 잘 맞았는지 모르겠지만, 나라면 영업 3팀이 참 싫었을 것 같다. 늘 까다롭고 성과에 도움되지 않는 일들을 물어오고, 또 그것 때문에 고생하지만 빛도 못 보는 영업3팀. 근데 사수인 김대리는 이런 것들을 당연하게 받아 들이고 주말 밤낮 노력하며 일을 하고 있다면?

 결국 내 미래는? 둘 중 하나일 것 같다.

  1) 김대리 처럼 고생하면서 얻을 수 있는 실익은 하나도 없는 삶

  2) 실익은 챙기더라도 고생하는 김대리랑 비교되면서 욕 먹는 삶


 (참고!) 심지어, 주말에도 전화해서 만나자고 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4Xo7DV_M1DQ

(출처: 유튜브 디글 클래식)


 인간적으로 좋은 사람인 것도 알겠고, 일을 배우기에도 나쁘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는 있다. 하지만 함께 일하면 허공에 삽질하는 것처럼 힘든 시간을 보내게 될 것 같다.


 안영이의 사수 하대리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면, 그가 쓰레기 같은 면모를 지녔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개인적으로 그의 쓰레기 같은 면모가 잘 드러난 장면이라고 생각하는 영상을 하나 가지고 왔다.

https://www.youtube.com/watch?v=esRc1blpT-s

(출처: 유튜브 디글 클래식)

 안영이에게 화를 내면서 얼굴에 보고서를 던지고, 손찌검까지 할 것 같은 기세다. 심지어 보고서에 맞은 안영이 얼굴에는 피가 고인다. 다른 장면들을 보면 실제로 쌍욕을 하기도 하고 초반에 늘 안영이에게 화를 많이 냈다. 화를 내는 이유도 타당하지 않았다.


 근데, 그럼에도 내가 하대리를 김대리와 공동 2위로 꼽는 이유가 있다.

 

 첫 번째, 최소한 솔직한 사람이다. 안영이를 숨어서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대놓고 괴롭히기 때문에 차라리 이런 사람과 있으면 누구나 내가 피해자라는 것을 알아준다. 그래서 최소한 전사에서 억울한 일은 생기지 않는다. 그리고 솔직한 사람이어서 그런지, 안영이가 한 일을 본인이 했다고 뺐어간다거나 하지 않는다.


 두 번째, 내가 조금만 굽히고 들어가서 같은 편이 되면, 그때부터는 나를 챙겨주는 사람이다. 물론 선배에게 무조건 굽히고 들어간다는 것 자체가 옳은 발상은 아니지만, 유하게 지내기 위해 조금만 굽히고 들어가면 그때부터는 마음도 써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대리가 초반에 안영이에게 했던 행동들에 대한 실드는 절대 불가다. 그래서 지금 이 글을 쓰면서 계속 고민을 하게 되는데, 그래도 둘 중 어떤 사수가 좋을지는 쉽게 마음의 결정이 되지 않는다.



 마지막 3위, 최악의 상사 성대리!


 성대리는 한석율의 사수로 나온 캐릭터이다. 상사나 동료들에게는 일도 잘하고 착한 사람, 심지어 착해서 물러 터진 사람으로 평가받기도 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알고 보면 책임 전가, 업무 스틸, 모함 등에 능한 사람이다.


 사실, 한석율은 처음에 성대리를 매우 좋아했다. 그래서 시키는 일도 척척 해내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성대리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런데, 반복적으로 성대리에게 당하다 보니 뭔가 이상한 걸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한석율은 결국 성대리에 대한 분노를 참지 못하고 사내 익명 게시판에 글을 남기는데, 그 글의 작성자가 한석율 임이 전사에 소문난다. 결국, 한석율은 선배들에게 미움을 받게 되는데 그 와중에도 성대리는 사람들에게 착한 척을 한다. 하지만, 한석율과 가까이 있을 때는 합당한 이유 없이 갈구고 조롱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ZvC-jsWFwWU

55초부터 보세요! (출처: 유튜브 디글 클래식)

 나는 회사를 다니면서 강대리 같은 사람은 아예 본 적이 없고(능력 있는 사람은 봤지만 감정 컨트롤까지 능한 사람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음), 나머지 사람들은 그래도 꽤 겪어 보았는데, 정말 성대리 같은 사람이 최악이었다.


 심지어 성대리, 돈에도 인색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a_6y-BTwa90

(출처: 유튜브 디글 클래식)

 글을 쓰면서, '좋은 사수 만나는 거 참 힘들지.'라는 생각을 했는데, 한 편으로는 나도 좋은 사수가 되기 위해 노력을 해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원하는 강대리 같은 사수가 되는 건 아마 어려울 것 같다. 업무 능력도 능력이지만, 난 감정 동요가 굉장히 자주 일어나는 편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최소한 최악의 사수가 되지 않기 위해 솔직하게, 내가 맡은 일은 열심히 하고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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