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태솔로의 소개팅 준비
아영- "근데 현주야, 남자랑 둘이 있을 때 무슨 말 해야 돼?"
생각지도 못했던 아영이의 질문. 그 질문은 나를 생각에 잠기게 했다.
내가 남자랑 둘이 있을 때 무슨 얘기를 했더라? 무척 얘기를 편하게 했던 것 같기는 한데...
(난 평소 남자든 여자든 내가 괜찮다고 느끼는 사람과는 무슨 얘기든 편하게 할 수 있었다. 특별히 노력하지 않더라도 하고 싶은 이야기, 궁금한 것들이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그래서 특별히 저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나- "글쎄...? 지금까지 너는 남자랑 둘이 있을 때 무슨 말을 했는데?"
아영- "나 남자랑 딱히 둘이 있어본 적이 거의 없는데? 그때 네가 소개팅 시켜줬을 때 한 번 남자랑 둘만 있었는데 거의 말 못 했어..."
남자랑 딱히 둘이 있어본 적이 거의 없다는 아영이의 답변에 나는 절로 숙연해졌다.
맞다... 내 친구 모태솔로였지... 모태솔로도 그냥 모태솔로가 아니었다. 생각해보니 아영이는 성인이 된 이후에 그 흔한 썸도 한 번 없었고, 연락하고 지내는 남사친도 하나 없었다.
아영- "근데 그럼 소개팅남은 나한테 카톡으로 연락하는 거야? 그럼 뭐 말해야 돼? 벌써 떨려..."
아영이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태초의 상태에 가까웠다. 소개팅을 도와주기로 마음먹은 이상, 이건 쉽게 생각할 일이 아니었다. 난 이미 주선자를 통해 아영이의 연락처를 전달했고, 아영이 말대로 곧 소개팅남이 카톡으로 아영이에게 연락을 해올 터였다.
떨린다는 아영이를 보고 있자니 내 심장이 더 쿵쾅거렸다.
나- "일단 카톡 오면 그냥 장소랑 시간 잡고 간단하게 인사하고 더 이상 얘기하지 마. 너 말 많은 편도 아닌데, 괜히 얘기 많이 하면 만나서 겁나 어색할 거 같아."
아영- "응! 그럼 만나서는 무슨 얘기 하지?"
나- "음... 그냥 보통 사람들 처음 만나서 하는 얘기들? 대학교에서 전공 뭐였는지, 회사 어떤지, 회사에서 무슨 일 하는지, 아 맞다! 요즘은 mbti 얘기도 많이 하니까, mbti도 좀 물어보면서 그걸로 얘기 한참 또 할 수 있겠다. 아, 코로나 걸렸었는지, 백신 뭐 맞았는지 이런 얘기들도 많이 했으니까 그런 얘기도 좀 하고, 요즘 개봉한 영화들 중에 보고 싶은 것들 있는지, 취미가 뭔지, 어디 사는지, 거기 맛집 뭐 있는지 그런 거 얘기하면 몇 시간은 뚝딱 아닐까?"
난 혼신의 힘을 다해 아영이가 나눌만한 대화 주제들을 쏟아냈다. 아영이는 내가 하는 말들을 마치 가이드처럼 여기며 경청했다.
나- "아영아, 그리고 주선자는 너 연애경험 별로 없는 거 알아. 그래서 소개팅하는 남자도 들었을 거야. 근데 모태솔로라고까지는 얘기 안 했어."
아영- "왜? 연애경험 유무가 중요한가? 왜 모태솔로인 거 얘기 안 했어?"
연애경험의 유무가 중요하냐고?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 33살쯤 되면, 보통의 사람들은 적어도 몇 번 이상의 연애를 경험한다. 어느 정도 관계를 잘 지속할 수 있는 사람이면 1~2년 이상의 장기 연애도 몇 번쯤 경험한다. 그래서 나는 연애를 시작할 때 상대방이 지금까지 어떤 연애를 해왔는지도 꽤 중요하게 생각해왔다.
수차례 연애경험이 있어도 한 두 달 만나고 헤어진 거라면 도대체 지금까지 왜 그런 연애만 했는지 (무슨 문제가 있는지) 생각하게 될 것 같고, 딱 한 명의 상대와 10년 이상의 연애를 했던 사람이라면 그건 부담스러울 것 같다. 이런 여러 케이스들 중에서 내가 가장 기피하게 되는 대상은 모태솔로였다.
지금까지 호감을 갖게 된 사람들 중에서 모태솔로였던 사람은 한 명도 없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서른이 넘은 이 나이에 모태솔로라는 것은 뭔가 내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내가 보기에 아영이에게 여자 친구로서 결함이 있는 부분은 전혀 없었다. 하지만 아영이가 모태솔로라는 말을 듣게 된다면, 다른 사람들도 나처럼 아영이를 편견으로 바라보게 될 확률이 높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굳이 모태솔로인걸 처음부터 얘기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아서..."
아영- "그럼 연애 얘기 나오면 어떻게 해?"
나- "그냥 연애 안 한지 오래됐다고... 경험이 많진 않다고... 이 정도만 얘기하는 게 낫지 않을까?"
아영- "오! 그러는 게 좋겠다! 오키오키!"
그러는 사이 소개팅남이 카톡으로 아영이에게 인사를 건네 왔다. 여기에다가 뭐라고 답장을 하면 좋을지 귀엽게 동동거리는 아영이를 보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근데, 아영이는 도대체 왜 모태솔로인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