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좋은 주제 152
오랜만에 화장 한 할머니를 봤다. 어쩌면 오랜만이 아니라 거의 처음일지도 모르겠다. 생각해보니 정말 처음인 것 같다.
내가 기억하는 할머니의 모습 절반쯤은 치매로 기억이 온전치 못한 모습이다. 나머지 절반은 작은 몸으로 리어카를 끌고 다니며 폐지를 줍는 모습, 그리고 힘든 데 폐지 줍는 일 그만하라고 화내는 아빠와 다투는 모습이다.
할머니를 보면 가난도 습관처럼 몸에 베이는 건 아닌가 싶었다. 아빠가 아무리 용돈을 드려도 할머니는 그 돈을 쓰지 못했고, 폐지를 주으러 다니셨다.
그런 할머니가 화장이라니. 파운데이션 혹은 파우더라는 표현보다 분이라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리는 뭔가가 얼굴에 곱게 펴 발려져 있었다. 할머니와는 조금 어울리지 않는 붉은색 립스틱도 입술 위에 곱게 펴 발려져 있었다.
그렇게 오랜만에 고운 화장을 했는데도 할머니는 평소보다 굳어 있었다. 꽁꽁 싸매진 채 차가워 보였다.
할머니가 입고 있는 저 옷이 적삼이라는 건가? 그전에 그 누구도 입지 않았던 적삼이라 그런지 꽤 빳빳해 보였다.
할머니는 그렇게 아끼고 아껴서 새 옷 한 번 사지 않더니, 죽고 나서야 새 옷을 입었다.
할머니가 저런 빳빳한 옷을 입고 있는 것도, 어울리지 않게 발려진 립스틱도 생경했다.
셋째 고모는 할머니를 끌어안고 엉엉 울었다. 셋째 고모는 할머니 살아생전 할머니를 보러 온 적이 거의 없었다. 그런데도 저렇게 눈물이 많이 나는 모양이었다.
나는 아빠의 표정을 살폈다. 아빠는 눈물을 흘리지 않았고 뭔가 꾹 하고 참는 것 같았다.
셋째 고모는 할머니를 부여잡고 계속 울었다.
"우리 엄마... 이렇게 고생만 하고 가서 어떡해... 고생만 하다가 가네..."
할머니는 엄청 멋진 사람이었다. 자신이 공부 못한 게 한이라면서, 대학생들 공부에 도움이 되고 싶다는 말씀을 많이 하셨다.
그러더니 의대에 시신 기증을 하고 싶으시다고 살아생전 자식들을 한 명 한 명 설득하셨다. 결국 사망 후 의대에 시신을 기증 한다는 기증 서명을 하셨다.
죽어서도 가치 있을 가라고 좋아하셨다. 난 그게 멋졌다. 근데 셋째 고모 생각은 달랐나 보다. 고생만 한 우리 엄마 죽어서도 고생시키기 싫다나? 결국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이미 서약까지 했던 일을 없던 일로 만들었다.
할머니는 죽어서도 하고 싶은 일을 못하게 됐다.
당근을 통해 글쓰기 모임을 모집했습니다.
저를 포함해서 일곱 분 정도가 모여서, 글쓰기 좋은 주제 642라는 책에서, 원하는 주제를 골라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이번 주 제가 고른 주제는 <당신이 장례식장에서 본 시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