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베로나를 로맨틱하게 해주는 건 줄리엣이 아냐

by Loveyouth

베로나의 밤은 그랬다. 모든 것이 정돈된 깨끗한 도시에 시원한 바람이 불었고, 타지에서 온 동양인에게도 상냥하게 웃어줄 줄 아는 친절한 사람들이 있었다. 불평불만이라는 게 나올 수 없을 정도로 활력 넘치고 로맨틱한 무드가 감도는 도시에서 우리 부부는 무슨 일 때문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 이유들로 한바탕 싸움을 했다. 왜 싸웠더라...


지난해 이탈리아 여행을 계획하며 내가 꼭 가고 싶었던 도시는 로마도 밀라노도 베니스도 아닌 베로나였다. 가장 기대하고 있던 오페라 축제가 열리는 곳이기도 했다. 여행 준비라곤 그 나라의 역사나 미술책을 찾아보는 내가 웬일로 영화 '레터스 투 줄리엣'도 한 번 더 보며 '얼른 저기 가고 싶다'라고 호들갑도 떨었다. 그렇게 설렘과 기대를 가득 품고 도착한 베로나는 역시나 내 취향을 제대로 저격했고 신난 마음에 노래까지 부르며 구석구석 열심히 도시를 탐미했다.


지정석이었는데 빨리도 갔네 <아레나 디 베로나>

그런데 무슨 일 때문이었는지 남편의 옷을 사고 나오면서부터 우리 둘 사이에 묘한 기류가 흘렀다. 이 기류는 우리 둘의 감정을 상하게 하고야 말았고, 별안간 투닥거리며 다투게까지 했다. 어렵게 예약하고 몇 개월을 기다렸던 오페라를 보기 위해 아레나 디 베로나에 입장하는 순간까지 우린 마음을 풀지 못했다. 결국 남편과 나는 축제를 즐기기 위해 한껏 드레스업하고 샴페인까지 들고 있는 이탈리아 사람들의 틈바구니에 껴서 묵언수행을 하기에 이르렀다.


우리 부부가 본 오페라는 그 유명한 '아이다(AIDA)'다. 비극적이나 참으로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가 시작될 무렵까지 오빠와 나는 비싼 티켓값만을 떠올리며 남처럼 앉아 자리를 지켰다. 그것도 사랑의 도시 베로나에서, 그것도 2000년 전에 지어진 유적물인 아레나 디 베로나에서 오페라를 관람하는 생경한 경험을 하는데도 시큰둥. 그러거나 말거나.


1막부터 4막까지 긴 러닝타임을 자랑하는 '아이다'가 그렇게 거북스러운 분위기에서 시작됐다. 친숙하지 않은 언어로 불편하게 시작된 오페라. 사실 내게 그날의 '아이다'가 내 생에 두 번째 오페라였다. 아마 남편에겐 첫 번째였던 것 같다. 한껏 기대를 하긴 했지만 어떤 부분에서 뭐가 좋은 건지 잘 알지 못했고, 기분마저 좋지 않아 2000년 전에 지어진 이 아레나가 별도의 장치 없이도 음향 효과가 뛰어나다고 하니 그거나 듣고 가자고 마음먹었다.


눈물 나던 오페라 '아이다'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 시간이 흐를수록 작품에 빠져들었다. 1막, 2막, 3막.. 극이 클라이맥스로 치닫자 수준급 성악가들이 꾸미는 완벽에 가까운 무대에 시선을 떼지 못했다. 선선한 날씨에 역사적인 공간에서 펼쳐지는 믿기 어려운 이 광경이 오묘하면서도 환상적인 분위기를 내게 선사했다. 무대 양 옆으로 설치된 대형 스크린으로 영어 번역 가사를 보며 겨우 이해한 아이다에 흠뻑 빠져 눈물이 찔끔 났다. 그리고 내 옆에는 주르륵 흐르는 눈물을 내가 볼세라 재빠르게 훔치며 앉아 있는 나의 못난이 남편이 있었다. ‘그래, 내가 왜 이 조 씨를 좋아했냐. 이 미친 듯이 완벽한 감정 교류 때문이지.’ 나쁜 마음은 눈 녹듯 사라지고, 오페라의 벅찬 감동과 이 낯선 도시에서 느끼는 이방인의 자유만이 우리 곁에 남았다.


시작은 줄리엣이었지만 오페라로 남은 베로나. 어쩜 이 도시를 사랑스럽게 만들어주는 건 줄리엣이 아니라 한 여름밤 수천 년 전에 지어진 아레나에 펼쳐지는 오페라일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스쳤다. 한바탕 싸운 우리 부부만 그런가? 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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