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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veyouth Oct 25. 2019

12. 그렇게 돈을 쓰다가는 빌어 먹고살게야

울타리 설치를 눈앞에 두고

우리 부부는 언제나 예고도 없이 사고를 친다. 아, 예고가 없어서 사고라 부르는 건가.. 암튼, 그냥 앞집이 울타리 공사를 하는데 왜 우린 그날따라 가격이 궁금했을까? 설치를 하려면 얼마나 기간이 걸리는지, 보통 높이는 얼마나 하는지가 무슨 상관이길래 그 많은 질문을 해댄 걸까.


우린 이 집 자체만으로도 만족했다. 어차피 천안-서울 왔다 갔다 하기에도 바쁘기에 다른 집에서 무엇을 하건 그건 우리의 관심 밖이었다. 더더욱이 남들이 무엇을 하건 무던한 우리이기에 2층 테라스 폴딩도어 조차 정말 필요성이 느껴졌던 어느 날에 1차 집 중 가장 늦게 설치를 했더랬다. 울타리도 그랬다. 다른 집에 하나 둘 울타리가 설치될 때 '와, 이 이렇게도 하는구나'하곤 먼 산 구경하듯 했다.


아침부터 개싸우는 쮸삐동순

그런데 이상하게 어느 날 울타리를 설치하고 싶어 졌다. 이유가 없진 않았다. 우리 집 상전들 쮸삐 동순이가 아침 산책마다 타운하우스 전체가 제 집인 양 우리 집을 넘어 다른 집 정원으로, 또 도로로 뻗어나가기 시작하면서 생각의 변화가 조금씩 찾아오기 시작했다. 특히나 이 한적한 곳에도 이동 차량이 은근히 있어 벌써 몇 번째나 아찔한 순간이 발생해 '울타리를 해야 하나' 고민에 빠졌었다. 하지만 집안일에 한 게으름 하는 우리 부부는 나태함을 앞세워 그동안 뚜렷한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더더욱이 무언가 일을 벌여 작업을 하기에 우리 부부의 재정상태가 넉넉한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울타리는 말 그대로 그림의 떡이었다.


그러던 햇살 좋은 10월의 어느 날, 앞집에서 공사를 하고 계시던 업체 사장님을 우리 부부가 봐버린 거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보고 말았다. 남편을 불러 홀린 듯이 상담을 했다. 당장 내일이라도 공사를 할 것처럼 온갖 TMI를 남발하며 상담을 마쳤다. 하필 사장님은 우리 부부 모두 좋아하는 스타일이셨다. 상담에 강요는 없었고,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하되 무척 친절하셨다. 함께 작업 중인 이웃 역시 엄지를 치켜세우며 아주 꼼꼼하시다고 칭찬하니 마음이 연두부처럼 흐물흐물 해졌다.


결론은 11월이 되면 우리 집에 울타리가 생길 예정이다. 남편과 나는 상담이 끝나자마자 긴축재정에 돌입했다. 지금 쓰고 있는 이 글이 일은 일대로 저지르곤 무언가 당위성을 부여하기 위해 쓰는 것 같아 마음이 아려온다. 그래서 그런지 엄마가 예전부터 내게 했던 그 말이 떠오른다.



그렇게 돈을 쓰다가는 빌어 먹고살 거야


 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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