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류 탈락이 내게 남긴 것

sbi 출판 마케터 1차 서류 탈락

by 유영

대학교 3학년 2학기 때 즈음부터 출판 마케터가 되겠다는 생각이 어렴풋이 들기 시작했다. 마케팅을 부전공하고 있지만, 사람들의 약점을 파고들어 무언가를 판다는 게 좀 싫었다. 기왕 내가 무언가를 팔아야 한다면, 책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책은 사람의 마음을 풍요롭게 하니까, 책의 가치를 알리고 그게 누군가의 구매까지 이어져 그 사람의 마음 속에 남는다면 그건 참 의미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출판계는 정보가 너무 없다. 애초에 이 업계를 희망하는 사람도 별로 없기도 하고. 관련 전공생도 아닌 내가 준비할 수 있는 건 오직 sbi뿐이었다. sbi는 출판인으로서의 지식을 가르치는 학교다. 취업연계과정으로 수료시 출판계 취업이 수월하다. 그래서 작년 8월부터 스터디에 들어가 이것저것 나름 업계 분석을 해봤다. 그리고 2 달 전부터 서류 준비를 시작했다.

준비해야 하는 서류는 총 3가지. 자기소개서, 독서이력서, 마케팅 관점 서평. 스터디원들과 피드백을 열심히 주고 받으며 약간은 자신만만한 마음으로 서류 제출을 했더랬다. '이거 된다'라는 스터디원의 평도 있었으니, 서류쯤은 당연히 붙을 거라고 생각했다.

제출 다음날부터 바로 2차 필기 시험을 준비했다. 하루에 거의 8시간 씩 공부를 했다. sbi에서 펴낸 책들을 전부 구매해 읽고, 출판 마케팅 바이블이라고 불리는 <잘팔리는 책 안 팔리는 책>도 읽고, 베스트셀러 분석과 서평 필사 등.. 어떤 문제가 나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준비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그런데 1차 서류 결과는.. 탈락이었다. 믿기지가 않아서 ctrl+f 를 눌러 내 이름도 검색해보고, 다시 들어갔다 나와보기도 했다. 그래도 결과는 탈락이었다. 내 이름이 없었다. 가장 처음 든 생각은 '부끄럽다'였다. 결과 발표 5분 후, 필기 스터디가 예정되어 있었다. 스터디원들에게 어떻게 말해야하나 민망했고, 너무나 당연하게 1차는 붙을 거라 생각했던 내 스스로가 너무 부끄러웠다.

그래도 그만큼 나는 내 노력을 믿었고, 내 결과물에 나름 만족했었다. 한 시간 정도 가만히 앉아서 탈락 이유를 마구 추측해봤다. 솔직히 말해서, 내가 너무 잘나서 가르칠 게 없어서 떨어트린건가? 하는 말 같지도 않은 생각까지 했다. 그만큼 탈락 사유를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스터디원들도 다 당황한 눈치였다. 상상치도 못한 탈락이었다. (ㄴㅇㄱ) 엉엉 울고, 엽떡 시켜먹고, 러닝을 하면서 생각을 정리했다. 달리면서 계속 이제 뭘 해야하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내일은 뽑아둔 면접 질문에 답변 달아보려고 했는데, 이제는 할 필요가 없으니.. 막막하다. 겨우 하루가 지났는데 내 일상이 모두 흐트러졌다.

그래도 나는 나를 가엾게 둘 순 없다. 준비하는 과정에서 나에게 분명 남은 것이 있다. 그걸 헤아려보려고 이 창을 열었다. 뭐가 남았을까?


1. 나는 책이 여전히 참 좋다.

솔직히 나는 다독가는 아니다. 책보다 세상에 재밌는 게 너무 많다. 그런데도 뭐가 젤 좋냐고 하면 책이 제일이다. 그 이유는.. 책이 주는 몰입은 차원이 다르기 때문인 것 같다. 오로지 홀로, 나와 그 책만 존재하는 그 느낌이 좋다. 가장 개인적인 행위인 독서를 통해 타인과 공명하는 순간을 목도하고 싶어서 출판 마케터가 되고 싶었고, 준비하는 과정에서 그런 장면을 그려보는 것 만으로도 힘이 났었다.

그리고 30권의 짧은 서평을 적어야 하는 독서 이력서를 준비하면서, 전혀 힘들지가 않았다. 덜 읽는 분야의 책을 찾아보고 읽는 과정이 참 즐거웠다. 책으로 둘러쌓여있는 게 좋았다. 읽을 책들이 마구마구 쌓여있다는 게 좋았다. 그러므로 나는 책이 여전히 좋다는 이 사실이 나에게 남았다.


2. 독자를 그려보고 책을 분석해보는 힘이 생겼다.

베스트샐러 분석, 서평 필사를 하며 대략적으로 이 책의 마케팅 과정을 예측해보았다. 그 과정에서 나름의 인사이트를 얻었다. 마케팅은 그 대상을 생각하는 일이 전부라는 말에 동의한다. 예상 독자층을 그려보고 그에 맞는 전략을 세워보는 힘이 생겼다. 그리고 그 과정이 즐겁다는 사실이 나에게 남았다.


3. 결론적으로 나는 여전히 출판마케터가 하고싶다.

사양 산업이다, 박봉이다 이런 말들에 휘둘리기도 했던 것 같다. 출판마케터에게 주어지는 일이 참 다양하다고 들었다. 내가 만족스러운 돈을 받지 못해도 야근하고 주말에도 출근하는 일상을 견딜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더랬다. (이 생각도 참 기만이다 ㅋㅋ 너 뭔데?) 그런데 해보지도 않고 포기하고 싶진 않다. 얼마나 X같은지 내가 한 번 겪어봐야할 거 같다. 그래야지 내가 버틸 수 있는지 아닌지 알겠지. 그리고 그 과정 역시 지금의 나처럼 분명 무언가를 내게 남길 것이다.


이제 뭘 해야할까? 잘 모르겠다. 계속 공부하고 공고 찾아보고 지원하겠지..

설령 떨어졌다고 해도 이렇게 후회하지 않을 정도로 무언가에 매진해본 경험이 얼마나 값진가.

다시 눈물이 날 것 같다. 이 눈물의 의미가 뭘까? 후회? 아쉬움? 분함?

뭐가 됐든 나는 이 과정을 오롯히 받아들일 것이고, 내 것으로 소화해낼 거다. 그리고 나아갈 것이다.

더 좋은 기회가 나에게 올 것이라 믿는다. 모든 것에는 때가 있고, 의미가 있다.

부디 이 절망이 얼른 나를 지나치고, 다시 앞으로 나아갈 힘이 생기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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