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개월 차 단상
아빠의 세계로 접어든 지 어언 7개월째다.
그간 정신적,육체적으로 많은 변화가 있었다.
이를테면 7개월 전보다 약 45%가량 못생겨졌고,
근육량이 약 37% 감소했으며,
무릎 관절 수명이 약 5년 단축되었다.
하지만 정신적으로는 성장했다.
수면욕, 식욕, 성욕이 두루 하향조정되어, 이젠 작은 욕구충족에도 깊이 만족하는 고효율 인간이 됐다.
또한 아내와 싸우면 절대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여러 차례의 실증적 검증을 통해 알게 되어, 앞으로 부부 관계에 임할 때 취해야 하는 올바른 자세를 정립할 수 있게 됐다(=아내의 말을 무조건 따른다).
지난 7개월은 정신적 성장뿐만 아니라 다양한 잔재주를 터득하는 데도 부족함이 없는 시간이었다.
예를 들어 밤마다 어둠 속에서 손가락 끝의 감각만으로 기저귀의 앞뒤를 가늠할 수 있는 신비로운 능력이 생겼고,
같은 동요 한 곡을 무한대로 변주할 수 있는 음악적 능력까지 갖추게 됐다.
행복의 기준도 변했다.
베일리가 밤에 세 시간 이상을 자주면 그게 그렇게 감사하고, 아내랑 싸우지 않고 하루가 지나가면 나 자신이 그렇게 대견하다.
누구는 이걸 '소확행'이라는 단어로 표현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빠가 된 후 깨달았다. 가정의 평화를 유지하는 건 절대 '소'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운동을 삼십 분이라도 한 날은?
자기관리의 신이 된 기분이다.
집에서 세끼를 다 해 먹었는데 자기 전에 설거지까지 끝내 놓은 날은?
아직 그런 적이 없어 모르겠다.
어릴 때 엄마아빠를 보며 "이 사람들은 언제나 내 편이다"는 생각에 조용한 안도감을 느끼곤 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참 대단한 사람들이다.
자식이 그렇게 느꼈다는 것만으로도 적어도 부모로선 성공한 셈이니까.
가끔 베일리가 날 뚫어져라 쳐다볼 때가 있다.
귀여워 죽겠지만 동시에 심히 부담스럽다.
내게 자신의 생존을 의탁해도 되겠냐는 눈빛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아니, 이미 의탁하고 있으니 앞으로도 고생 좀 해달라는 답정너의 눈빛이다.
7개월 단상을 요약하자면,
6개월 정도 지나면 좀 수월해질 거라는 주변의 애정 어린 충고가 구라였다는 걸 알았고,
베일리가 사족보행에서 이족보행으로 넘어가려 하자 오히려 신경 쓸 게 더 많아졌다.
하지만 베일리의 침, 모유, 먹다 뱉은 이유식, 똥, 오줌과 혼연일체 되어 7개월을 보내니 진짜 내 딸이라는 생각이 들고,
지금까지 남사스럽기만 했던 아빠라는 외투가 몸에 익는데 7개월이라는 지난한 시간이 걸린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아빠가 되기 전에 누가 이런 얘길 해준 적이 있다.
아이가 태어나고 1년 동안은 이혼 얘기 꺼내지 마라고.
그땐 뭐 저리 불길한 말을 조언이랍시고 하나 싶었는데, 이젠 그 의도를 너무나도 잘 알 것 같다.
둘 다 부모가 처음이고, 모르는 것투성이고, 늘 비몽사몽에 쌓이는 스트레스를 풀 시간도 없으니, 이보다 더 싸우기 좋은 조건이 있으랴.
이혼의 '이'자가 내 목구멍에 걸린 횟수를 세려면 아마 한 손으로는 모자랄 것이다.
하지만 둘 다 제정신이 아니려니, 하고 하루하루 헤쳐나가다 보면 언젠가 다시 좀비상태가 아닌 평범한 남녀로, 아니 오히려 전보다 더 성숙해진, 서로를 더 많이 이해하는, 서로 같은 목표를 바라보는 인생의 동반자로서 만나게 되리라,는 의미였다는 생각이 이제 와서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