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마이야기&생각하기-
9. ‘오름’에서 만나는 말의 숨결
9.1. 말과 함께 솟아난 오름
⚬진행자: 제주도에 말과 관련된 오름이 있나요? 왠지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요.
⚬해설가: 네, 맞아요. 제주도에는 말과 관련된 오름이 꽤 많아요. 오름은 한라산을 중심으로 제주도 전역에 흩어진 기생화산들을 일컫는 제주도 고유의 독특한 화산 지형을 뜻하는데요. 이러한 오름 중에는 어승생악(御乘生岳)처럼 이름 자체가 말과 연관된 곳도 있지만, 과거 마장(말을 키우던 곳)이 있었거나 현재까지도 방목된 말을 볼 수 있는 곳들이 많아 ‘말 관련 오름’은 정말 다양하게 존재한답니다.
⚬진행자: 그렇다면 대표적인 오름을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해설가: 제주 오름 중 말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이름 유래를 가진 대표적인 오름은 바로 어승생악(御乘生岳)이에요. 어승생악은 제주도에 흩어진 360여 개의 오름 중 하나로, 밑바닥에서 정상까지의 실제 높이인 비고(比高)가 350m에 달하는 가장 높은 오름이랍니다. 정상에는 아름다운 원형의 화구호(火口湖)도 품고 있죠.
⚬진행자: 어승생악이 어떻게 말과 관련이 있는지 궁금해요. 이름만 들어서는 잘 상상이 안 가네요.
⚬해설가: 어승생악이라는 이름 자체가 ‘임금의 말’과 깊은 연관을 지닙니다. 가장 널리 알려진 설은 어승생(御乘生)이 한자의 뜻 그대로 ‘임금이 타는 말(御乘馬)’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는 거예요. 보다 구체적으로 이러한 유래는 조선 효종 때 제주목사 이원진이 1653년에 저술한 지리서 『탐라지(耽羅志)』에 명확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탐라지』에는 “이 오름 아래에서 임금이 타는 말이 나왔으므로 그렇게 불린다(此岳下出御乘馬故名)”라고 쓰여 있죠. 이는 어승생악 인근이 단순히 왕의 일화에 그치지 않고, 임금에게 진상할 훌륭한 군마(御馬)가 태어나고 길러지던 국영 목마장이었음을 직접적으로 보여줍니다.
⚬진행자: 그런데 다른 견해도 있다던데요? 어떤 내용인가요?
⚬해설가: 네, 맞아요. 일부에서는 어승생악의 이름이 원래 ‘어스싕 오름’ 또는 ‘어스싕이 오름’이라는 제주 고유어에서 유래했으며, 이를 한자로 소리 나는 대로 옮겨 어승생(御乘生)으로 표기한 것이라고 봅니다. 이 관점에서는 이 오름 아래에서 임금이 타는 말이 나왔다’는 해석은 나중에 한자 御乘生의 뜻에 맞춰 새롭게 만들어진 유래일 수 있다고 지적합다. 즉, 한자 표기가 원래 고유어의 의미를 왜곡하거나 새로운 유래를 창조했을 가능성을 제기하는 것이죠.
⚬진행자: 어승생악의 이름이 제주 역사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나요?
⚬해설가: 어승생악은 그 이름 자체에 조선시대 제주도의 중요한 역사적 역할이 담겨 있어요. 이곳은 임금에게 바치는 최고급 말인 어마(御馬)를 생산하던 핵심 국영 목마장이었거든요. 따라서 이곳은 단순히 왕실에 말을 진상했다는 사실을 넘어 말의 위상과 제주도의 유구한 목축 역사를 상징하는 중요한 문화유산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진행자: 다른 말 관련 오름도 좀 더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궁금해집니다.
⚬해설가: 네, 이름 자체에 ‘말’이 들어가지 않더라도, 과거 제주도가 국영 목장이었던 시절의 ‘갑마장(甲馬場)’이나 ‘녹산장’ 같은 마장(馬場)들이 있었던 지역의 오름들은 말과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따라비오름과 큰사슴이오름(대록산) 주변은 대표적인 갑마장 터였으며, 지금도 드넓은 초지에서 말을 볼 수 있는 문도지오름이나 아부오름 등은 말과 함께 제주 특유의 목가적인 풍경을 선사하고 있죠.
⚬진행자: 큰사슴이오름은 이름만 보면 말과 연관이 없어 보이는데요? 혹시 사슴을 키우던 곳이었나요?
⚬해설가: 네, 큰사슴이오름이라는 이름 자체는 말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어 보일 수 있어요. 하지만, 이 오름이 위치한 지역은 제주 말 생산의 핵심 거점이었습니다. 고려 말부터 조선시대까지 제주말은 국가의 중요한 자원이었고, 중산간 지역의 넓은 산마장(개인 목장)에서 길러졌죠. 그중에서도 가장 규모가 컸던 녹산장(鹿山場)이라는 산마장이 바로 표선면 가시리의 큰사슴이오름(대록산) 앞 대평원에 있었습니다. 즉, 큰사슴이오름 일대는 과거 제주말의 주요 생산지였던 셈입니다.
⚬진행자: 설명하신 것 중에 ‘녹산장’이 뭐예요?
⚬해설가: 녹산장(鹿山場)은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 대록산과 성읍리 따라비오름 일대의 평원에 조선 후기 설치되어 운영되었던 대규모 말 목장을 말해요. 광활한 초원을 상상하시면 된답니다.
⚬진행자: 어떤 계기로 설치되었고 그 목적은 무엇이었나요?
⚬해설가: 녹산장은 개인 목장인 산마장 중 하나였어요. 임진왜란 당시 김만일(金萬鎰, 1550~1632)이라는 인물이 조정에 전마(戰馬)를 바친 것이 계기가 되었죠. 이후 1658년(효종 9년) 제주목사 이회(李檜)의 건의로 정식 설치되었으며, 주목적은 나라에 필요한 어승마(御乘馬, 임금이 타는 말), 전마, 그리고 역마(驛馬, 역참에서 쓰는 말) 등을 생산하는 것이었답니다.
⚬진행자: 현재 녹산장 터는 어떻게 활용되고 있나요? 과거의 모습을 짐작할 수 있을까요?
⚬해설가: 오늘날 녹산장 터는 과거의 드넓은 목장이었던 흔적을 간직한 채 새로운 모습으로 활용되고 있어요. 지금은 표선면 가시리의 마을 공동목장과 제동목장, 그리고 정석 비행장으로 사용되고 있답니다. 특히, 드넓게 펼쳐진 목장 지형을 그대로 활용하여, 제주의 시원한 바람을 동력 삼아 거대한 풍력발전기들이 웅장하게 서 있는 모습도 볼 수 있어요. 바람개비처럼 천천히 돌아가는 풍력발전기들을 바라보면, 예전에 이곳을 뛰어다녔을 수많은 말들의 모습과 함께 제주의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듯한 독특한 풍경을 만끽할 수 있을 거예요.
⚬진행자: 녹산장은 제주 역사에서 어떤 의미와 가치를 가지나요?
⚬해설가: 네, 이곳은 제주도에 대규모 산마장이 운영되었음을 입증하는 중요한 역사 유적이에요. 이곳은 다양한 목축문화를 탄생시킨 산실이기도 하죠. 녹산장 내에는 목장 경계를 위해 쌓았던 상잣성, 중잣성, 하잣성과 같은 돌담, 그리고 간장(말을 가두는 시설) 등 역사 유적들이 남아있어요. 말의 수와 건강 상태를 점검하던 원장(圓場)도 존재했고요. 현재 녹산장은 제주도의 목장 역사와 목축문화가 응집된 상징적인 장소로 그 역사 문화적 가치를 관광 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한 노력이 더 필요한 곳이기도 합니다.
⚬진행자: 이번에는 갑마장에 대해 알려 주세요. 녹산장과는 어떻게 다른가요?
⚬해설가: 갑마장(甲馬場)은 조선시대에 최고 등급의 말인 갑마(甲馬)만을 따로 모아 길렀던 국영 목장을 말합니다. 정조 때 기존의 녹산장이 갑마장으로 지정되었어요. 이때부터 번널오름과 소록산 일대 대평원에서 주변 목장에서 선별된 ‘1등마(갑마)’를 일시적으로 사육하게 되었답니다.
⚬진행자: 이곳의 역할은 무엇이었고, 언제까지 운영되었나요?
⚬해설가: 갑마장은 조선시대 말의 증식과 국가에 바치는 공마(貢馬) 생산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하지만 1895년(고종 32년) 공마 제도가 폐지된 이후부터 점차 쇠퇴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진행자: 따라비오름은 어떤 곳이에요? 혹시 그곳에서도 말을 볼 수 있을까요?
⚬해설가: 제주 동부에 자리한 따라비오름은 해발 342m의 부드러운 능선과 여러 굼부리가 어우러진 아름다운 오름이에요. 가을에는 황금빛 억새가 장관을 이루어 ‘오름의 여왕’이라는 별명을 얻었죠. 이 빼어난 경관 뒤에는 600년이 넘는 제주 목마장의 유구한 역사가 숨 쉬고 있습니다. 따라비오름 서쪽의 드넓은 초원은 과거 조선시대 제주 말산업의 핵심 무대였습니다. 이곳에는 임금에게 진상할 최고급 말을 길렀던 국영 목장인 갑마장(甲馬場)과 개인 목장인 녹산장이 펼쳐져 있었어요. 덕분에 현재까지도 잣성(돌울타리), 목감막 터, 급수통, 목도 등 다양한 목마장 유적들이 남아있어 당시의 모습을 엿볼 수 있습니다.
⚬진행자: 따라비오름의 목마장 유적들을 직접 체험할 수 있나요? 왠지 직접 걸어보고 싶어지네요!
⚬해설가: 네, 물론이죠! 갑마장을 에두른 ‘갑마장길’이라는 걷기 코스가 조성되어 있어 유적들을 직접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 길을 따라 걸으면 옛 목마장의 광활함과 선조들의 목축문화를 느낄 수 있고, 운이 좋으면 드넓은 초원에서 자유롭게 풀을 뜯는 방목마들을 만나는 특별한 경험도 할 수 있어요. 특히 갑마장길에는 갑마장 설치를 입증하는 잣성이 가장 원형 그대로 잘 보존되어 있어요. 잣성은 위치에 따라 하잣성, 중잣성, 상잣성, 간장으로 구분되는데, 이 잣성길은 30~40분 정도의 간단한 산책 코스로도 활용될 만큼 잘 조성되어 있습니다. 갑마장길 전체는 갑마장 터인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 마을과 주변 오름, 목장길 등 드넓은 평원을 연결한 약 20km의 도보 여행 코스이니 제주 여행 시 꼭 방문해 보시기 바랍니다.
⚬진행자: 꼭 탐방해 보고 싶어요. 상상만 해도 멋지네요. 야호!
⚬해설가: 정말 신나시죠! 제주도는 단순히 아름다운 자연경관만 있는 곳이 아니에요. 말과 함께한 깊은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 쉬는 곳이랍니다. 어승생악처럼 이름 자체가 말과 직접적으로 연결된 오름도 있지만, 넓게 보면 제주에 흩어진 360여 개의 오름 대부분이 과거 목축문화와 말을 키우던 역사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어요. 많은 오름 주변에서 옛 마장 터나 잣성(돌담) 같은 유적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죠. 제주가 괜히 ‘말의 고장’이라 불리는 게 아니랍니다. 오름을 탐방하며 아름다운 풍경을 만끽하는 동시에 제주의 오랜 역사와 말들의 숨결을 느껴보는 특별한 경험을 꼭 해 보시길 바랍니다.
(사진) 부드러운 능선이 일품인 따라비오름(자료:https://san.chosun.com/news/articleView.html?idxno=14198#google_vignette)
9.2. 생각하기
❶ 멈춘 자리에서 삶의 의미를 성찰하라.
자연은 스스로 말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의미를 부여하는 순간..
❷ 책임감을 가지고 삶의 시간을 쌓아가라.
평화롭게 보이는 풍경 뒤에는 늘 드러나지 않는 수고와 인내가 존재한다..
❸ 변화 속에서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라.
과거에 머무르는 삶은 결국 멈춰 선 삶이다. ‘녹산장’이 사라지고 그 터가..
✍ 사유의 여백: 당신의 생각을 적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