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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unalogi Feb 06. 2021

중년의 힘을 보여줘

책 [내 그림자에 말 걸기]리뷰


이 글은 영화 [써니]의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우리는 탐험을 멈추지 않으리니 모든 탐험의 끝은 시작하였던 곳에 도착하여 비로소 처음으로 그곳을 알게 되는 것이리라-TS 엘리엇 네 개의 사중주 서른다섯에서 쉰 살 까지는 심리적으로 중요한 변화가 일어나는 시기다. 나이가 들면서 사라졌던 어릴 적 특성들이 되살아나기 시작한다. 늘 소중히 여겨온 신념, 도덕관념, 삶의 원칙들이 갑자기 미심쩍어진다.

노화의 문턱이 가까워지는 시점이면 이제껏 내면에 쌓아온 그림자가 너무 비대해져 우리는 풀지 못한 욕구와 미련에 압도당하고 만다.중년기에는 의심, 불안, 감정에 취약해진다. 그래서인지 갑자기 사랑에 빠지거나 결혼을 깨거나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사표를 내던지기도 한다

삶의 주체가 아닌 객체가 되어 갇혀버린 것 같고, 모든 게 허무해지기 시작할지도 모른다. 이렇듯 위험한 순간순간은 그러나 완전히 새로운 차원의 발전을 위한 발판이 될 수도 있다. 주의를 기울이면 뭔가 더 필요하다는 깨달음이 온다. 

코로나 시국인데다 병원에서 일하는 탓에 더 잘 못 내려가게 되긴 했지만.

그래도 일 년에 두세 번쯤은 고향으로 찾아가던 시절에는. 엄마는 늘 저를 지긋이 쳐다보시며 가만가만 다 큰 딸을 쓰다듬곤 하셨습니다. 징그럽게 왜 이러냐며 피해 보지만. 부모의 손길은 얼음장 같은 제 마음도 녹였기에 늘 엄마 옆에 머물곤 했죠. 한참을 엄마가 제 몸을 쓰다듬어준 뒤에야 저는 곁을 내주며 엄마와 비슷한 주파수를 띄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 엄마는 늘 농담 반 진담 반을 적절히 섞은 표정으로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널 유치원 교사를 포기하면서 키웠다.

널 내 꿈만큼이나 사랑했고, 지금도 그러하고. 앞으로도 그럴 거다. 알겠지?

하고요.


그 어떤 부담이나 압박을 담아 하는 말이 아님을 알고 있지만. 이상하게 엄마의 그 말을 들으면 저는 늘 가슴이 찡했습니다. 엄마의 꿈은 유치원 교사였습니다. 아빠와 결혼을 하고 저를 임신한 뒤에 일을 그만두셨죠.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 그 시절엔 그게 당연시되었으니까요.


우리 모두는 그 누군가의 자부심이라고 하지만. 어쩐지 엄마와 아빠의 자부심이 나라는 인간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부끄럽고 작게만 느껴져 저는 늘 괜한 심술을 부리곤 했죠. 이제 엄마가 첫아이인 저를 낳았을 나이를 이미 훌쩍 넘은 딸을 보며 하는 그 말이 얼마나 쓸쓸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알고 싶지 않았을 수도 있죠.


남편 뒷바라지 잘 하고 아이 잘 키우는 게 결혼한 여자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미덕이다.라고 생각하며 평생을 살다 이제야 좀 숨을 고르려고 허리를 폈더니. 어느새 엄마는 중년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억울함과 허무함이 겹쳐져 자신이 잊고 있었던. 혹은 묻어두었던 다른 삶이 급격히 생각났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생각에 젖어 있는 것은 비단 저희 엄마뿐은 아니었을 겁니다. 영화 써니의 나미 역시 엄마가 입원해 있는 병원에서 오래된 친구 춘화를 만나면서부터 부쩍 그런 생각을 하게 되죠.


정신 질환자와 천재를 가르는 차이는 무엇인가. 바로 의식의 힘이다. 무의식에 삶을 넘겨주면 절대 안 된다.

일이나 삶이 건조해질 때 영원한 아이의 놀이 정신을 끌어들이면 진지함을 덜고 자극을 얻을 수 있다. 

나미의 눈을 추억으로 가득 흐리게 한 고등학교 시절에. 나미는 자신이 알고 있던 말 중 가장 무거운 단어를 배우게 됩니다. 바로 전학 이란 단어입니다. 살고 있던 우주를 송두리째 이사해야 하는 일이 전학이었구나.라며 마음을 다해 그 단어의 뜻을 배우고 나니 더더욱 혼자 서울의 학교에 왔던 것이 피부로 느껴지기만 합니다.


아무도 없을 것만 같았던 그 우주에 홀로 있어야 했던 시간을 줄여주었던 것이 바로 친구들이었죠. 마치 나미를 위해, 기다리는 심정으로 그 자리를 비워놓은 것처럼 친구들은 나미를 받아주었습니다. 그렇게 자신이 속한 서클 이름인 써니(Sunny)처럼. 나미의 인생은 태양으로 가득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 친구들과 함께요.


비록 춘화는 암으로 인해 병원에 있지만. 다른 친구들은 지금 어떤 모습으로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하며 나미의 눈은 다시 한번 더 흐려집니다.


중년에는 실패와 상실에 직면하게 된다. 나이가 들면서 저마다 이런저런 한계에 부딪히고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 일도 생기며, 하늘을 찌르던 자신감도 떨어진다. 우리는 겉핥기 식 삶에 머무를 수도 있고 아니면 삶이란 이전까지 알던 것보다 훨씬 더 깊고 통제하기 어려우며 신비롭고 경이롭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도 있다. 

이때부터 영화는 중년의 문턱에 접어든 친구들의 모습과 고등학교 시절의 모습을 번갈아가며 보여줍니다. 덕분에 이 두 모습 사이의 간극이 얼마나 큰 지를 직접적으로 보여주죠. 펠레의 저주라도 걸린 것처럼. 모든 친구들은 자신들이 원했던 모습과는 정 반대의 모습으로 살고 있습니다.


조금 있으면 세상을 떠나게 될 춘화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친구들을 찾아내는 과정이 즐겁긴 하지만. 나미는 입안이 계속 씁쓸해져 오는 것을 참을 수는 없습니다. 학창 시절은 어쩌면 자신들이 기억하는 것보다 평범했을지도 모릅니다. 단지 현재의 모습과 너무도 대조되기에 더 아름다운 것처럼 보이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나미는 했을지도 모릅니다.


내가 알던 그 친구들의 기억이 지금의 친구들의 모습이 맞는지. 다들 마음속에 가지고 있었던 그 크고 원대한 꿈이 없어진 자리는 어떻게 채우고 살고 있는.. 아니 어떻게 버티고 있는 것인지. 나미는 그런 친구들이 안쓰럽기만 합니다. 하지만 곧 알게 되죠. 자신 역시 그런 꿈을 잊고 살고 있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인간은 살면서 수많은 세속적 목적을 달성해야 한다. 업무상의 요구 처리, 가족부양, 재정적 안정 달성 등 지상의 목적은 우리 삶에 중요하고 필요하지만, 또한 한시적이고 상대적이며 끊임없이 변한다. 중년 이후의 삶에서는 무엇을 행하는지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행동에 끌어들이는 의식의 수준이다. 이는 올림포스의 신들과 시간을 공유하는 것이다. 

우리에겐 이루지도 키우지도 못한 채 묻어둔 재능과 잠재력이 무척이나 많다. 설령 삶의 주요한 목적을 달성해 후회할 일이 거의 없는 것 같아도, 자신에게 허락되지 않은 유의미한 경험은 여전히 존재한다. 자희로든 타의로든 무엇을 선택하건, 다른 무언가는 선택에서 제외된다. 그동안 살면서 할 수 없었던 일. 그래서 스스로 왠지 작아지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되는 일을 잠시 떠올려 보라. 당신의 삶에서 억울하거나 아쉬운 점은 무엇인가? 무엇이든 삶에서 빠진 것만 같아면 그게 바로 당신의 살지 못한 삶이다.

모든 문화가 그 구성원들을 반쪽짜리 삶으로 은근히 몰아간다. 문화는 우리가 관심 둘 대상과 무시할 대상을 정하는 데도 영향력을 행사한다. 우리는 살면서 수용할 것과 배척할 것을 문화의 틀 안에서 익힌다.

어쩌면 나미는 제가 엄마의 말의 뜻을 알고 싶어 하지 않았던 것처럼. 자신도 외면하고 싶었는지 모릅니다. 이 나이 되면 하고 싶은 게 없다고 말하며 무덤덤하게 말하며.'소싯적' 그림 실력을 발휘하죠. 그리고 그런 나미에게 날 받아놓은 여자인 춘화는 말합니다.


그냥 살지 말라고.


나미는 문득 잠시 스쳐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을 겁니다. 그 생각이 하도 짙었던 탓에 잡고 있던 연필을 뻗을 수 없었죠. 짙은 기억의 바닥에는 자신 역시 그림을 그리고 살고 싶었던 어린 나미의 꿈이 있었을 것입니다. 살다 보면 그런 거지.라는 말로 뭉개가며. 나미 스스로도 그 꿈을 짓밟고 있었겠지요. 만약 춘화를 다시 만나지 않았더라면. 자신은 지금 이렇게 오랜만에 스케치용 연필을 잡지도 못 했을 테죠.



누구나 단처럼 자신의 살지 못한 삶을 그대로 현실화하할 수 있는 건 아니고 또 모두가 그것을 바라는 것도 아니다. 댄의 삶의 큰 흐름은 바꿀 만한 재력을 갖춘 행운아였다. 크게 성장한 자기 사업을 남에게 넘겨야 했고 불행한 연애를 끝내는 과정 또한 괴로운 데다 돈도 많이 들었지만, 그렇게 외부의 일들을 정리함으로써 그는 내면에서 몰아치는 숨은 가능성에 직접 다가갈 수 있었다. 물론 모두가 단처럼 할 수 있다면야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적극적 상상을 통한 상징화 작업으로도 그만큼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살기에 바쁜 나머지 우리는 삶을 경험하는 방식에 의문을 가질 틈조차 없고, 그래서 언제든 감지하거나 느끼거나 생각할 수 있는 것의 대부분을 무시해버린다. 그러나 엄연히 존재하는 것들이다. 의식을 확장하려면 반드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자각하지 않는 한 우리는 살지 못한 삶을 계속해서 남에게 투사할 것이다. 스스로 평가절하하고 거부하는 자기 안의 무엇, 그것으로 남을 비난하고 헐뜯을 것이다. 자신이 두려워하는 것, 그것 때문에 남과 싸우거나 도망칠 것이다. 자신에게 부족한 무엇, 그것을 채우려 남에게 의존할 것이다. 

선택하지 않은 일은 문제를 일으킨다. 제대로 처리하지 않으면 그림자가 되어 무의식의 어딘가를 오염시키고 훗날 복수를 감행할 것이다.

이 영화에는 가장 큰 허점이 존재합니다. 그것은 춘화와 나미가 부자라는 것에 있죠. 누구나 어릴 적 친구들을 찾아다닐 시간적, 금전적 여유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생각을 하는 것마저도 사치스럽다며 스스로에게 채찍질을 가해야 하는 사람이 태반일 것입니다. 하다못해 영화에서도 춘화와 나미를 뺀 친구들은 그런 자신들의 삶을 받아들이며 여태 살아왔습니다.


저희 엄마도 마찬가지였죠.


자신의 꿈을 통째로 갉아먹으며 뱃속에서 무럭무럭 자란 저에게. 엄마는 감사하게도 그 어떤 프레임도 씌우지 않고 저를 키웠습니다. 희생양을 맛있게 먹어치운 자신이 낳은 아름다운 괴물이 마치 자신 인생의 가장 큰 행복인 양 저를 키우셨을 것입니다. 꿈을 포기했던 엄마가 자존심까지 포기하며 가정을 지켜내느라 고군분투하고 난 뒤에 남은 것은. 어느새 부쩍 커 버린 큰 딸이었을 겁니다. 자신이 제대로 해 주지 못했다고 늘 가슴을 치며 자책했기 때문일까요. 힘들수록 더 말을 안 하는 그 딸을 보며 엄마는 자신이 포기했던 꿈의 색을 제게서 언뜻 보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아무 말 없이 엄마에게 방송통신대학 교재를 내미는 것으로 여태 미뤄두었던 엄마의 말에 대답했습니다.



나는 나와 모순인가? 그래 좋다. 나는 나와 모순이고 나는 크며 많은 것을 품는다. -월트 휘트먼 [나 자신의 노래]

엄마는 방송통신대학을 마무리하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 사건은 엄마에게 아주 긍정적인 결과를 가지고 왔습니다. 맞춤법을 잘 모르시던 엄마는 투덜거리는 큰 딸을 끼고 맞춤법 공부를 하십니다. 가끔 여전히 틀리는 맞춤법으로 가득한 편지를 제게 보내시기도 하죠.(나한테 피아노 틀린다고 뭐라 할 게 아니었음. 유전이다 이기야)


절대 배울 일 없다던 컴퓨터를 배우셔서 고스톱 머니로 13억을 보유하고 계시기도 하고(물론 아빠가 다음날 날림), 갑자기 줌(Zoom) 주소를 카톡으로 보내며 딸이 보고 싶으니 당장 들어오라고 떼를 쓰시기도 합니다. 딸이랑 나중에 같이 유럽 가면 부끄러우면 안 된다며 영어 공부도 시작하셨습니다.(참고 1) 엄마에게도 이제 햇살이 가득한(Sunny) 날이 시작되나 봅니다.


자신이 묻어 두었던 삶을 완벽하게 되돌리지는 못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런 시도들은 엄마를 제가 태어나지도 않았던 스물일곱 영현 씨로 돌아가게 했습니다. 이제 영현 씨보다 나이가 많아진 딸은 저와 보조개가 똑 닮은 영현 씨에게 가만히 속삭여봅니다. 영현 씨의 꿈만큼 앞으로도 저를 사랑해 줄 그 마음에 감사한다고 말입니다. (참고 2)



[참고 1] 

영화로 영어 배우는 건 좋은데 그게 하필 사무엘 잭슨 영화임. 마디 파커 장인에게 뭘 배우겠다는 거야 엄마.ㅠ


[참고 2]

저 보고 아무리 생각해도 유치원을 차려야 할 거 같으니 빨리 결혼해서 애를 낳아 달랍니다. 저는 엄마가 다시 결혼해서 애 낳는 게 빠를 거라고 대꾸했습니다. 결혼이 싫으면 유치원이라도 차려 달라는데 이게 날강도지.


[이 글의 TMI]

1. 글자체 거슬린다고 피드백 주셔서 감사합니다. 주말에 여태  올린 글 수정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사랑해요ㅠ

2. 원래 이 글의 TMI를 제일 마지막에 쓰는데 마감에 쪼들려 이제야 쓴다. 하. 못할 짓이지만 그래도 한드아. 

3. 오늘도 딸기만 먹으며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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