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승리호 리뷰
이 글은 넷플릭스 [승리호]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취향에는 옳고 그름이 없습니다. 자기가 재미있게 본 영화가 좋아하는 영화입니다.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은 자신의 영화가 가진 독특한 유니버스에 관객들이 친숙해지게 하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입니다. 영화 초반부에서 (가끔은) 중반부까지 이어지는 매우 길고 정교한 설명이 바로 그것이죠. 자칫 지루하기만 할 수도 있는 그 '적응의 시간'을 잘 이끌고 나가는 것이 감독의 능력이라면 능력일 것입니다. 인셉션의 경우 아주 훌륭하게 해냈고, 테넷의 경우는 궁금증 유발으로라도 잘 버텼다고 생각합니다.
승리호도 그렇습니다.
외국에서야 이런 영화가 예전부터 많이 만들어져왔고, 소위 말하는 팬덤도 만만찮게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물었던 우주 SF 영화죠. 얼마 전까지만 해도 기술적인 한계 때문에 좀 어렵지 않을까.라고 판단했었는데 승리호가 이렇게 포문을 열어줄 것이라 생각하니 저도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영화 자체의 설정 말고도 장르 특성상 가지는 유니버스 설명이 이어지는 초반 동안에 저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기다리면 터지겠지. 익숙하지 않은 세계관이고 쟁쟁한 인물들이 나오는 영화이니 설명하느라 그럴 수 있겠지.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한 거 아니냐고.라는 말이 결국 입 밖으로 나오고야 말았습니다.
초반 30분 동안 중고등학교 때도 안 했던 사투를 벌이면서 머릿속이 복잡했습니다. 지금이라도 끄면 남은 러닝 타임 동안의 시간을 아낄 수 있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죠. 네. 졸았다는 말입니다. 그것도 거하게.
닮은 영화가 수두룩하다
영화 [도둑]에서 이정재 배우가 이렇게 말하죠.
뭐 대머리면 다 전두환인 줄 아나. 하고요. 우주영화에서 우주선 나오니까 다 표절이다.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만들어지고 있는 영화들 중 이제 완벽하게 "새로운" 소재로 저희를 찾아오는 경우는 잘 없으니까요. 기본적인 플롯 정도는 관객들 머리에도 어느 정도 심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명작과 망작을 나누는 것은 그것을 표현해 내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안타깝게 승리호는 이 작업에 실패했습니다.
가장 먼저 생각나는 영화는 가오갤(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입니다. 우주 쓰레기를 주우러 다니는 자기주장 강한 팀원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으니 어느 정도는 쉽게 예상할 수 있죠. 하지만 어째서인지 후반부로 갈수록 7번 방의 선물 향기가 조금씩 새어 나오기 시작합니다. 마치 승객이 꽉 찬 명절 고속버스 안에서 덜 닫힌 김치 뚜껑에서 잊을만하면 울컥 울컥 새어 나오는 김치 냄새처럼 말이죠. 그 향기는 결국 제가 고개를 찌푸리게 만든 주범이 되었습니다.
이야기야 그럴 수 있죠. 장르적 특성이나 한국인의 정서까지 피해 가며 영화를 만들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대신 이런 한계를 극복하려면. 나오는 인물들의 개성이 잘 느껴져야 합니다. 시쳇말처럼 캐릭터가 살아 움직이며 미친 듯이 극을 끌어가야 하죠. [울프 오프 월스트리트]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그러했듯이 말입니다. (진짜 그게 개인기지 연기냐고요)
그러나 이 부분에서도 승리호는 다시 한 번 위기를 맞이합니다.
아마도 캐릭터의 개성을 빌드 업(Build up) 하는데 시간이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대사나 겉모습으로 주인공들의 성격이나 특징을 보여주고 싶어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기엔 송중기 배우는 배역이 겪은 일에 비해 너무 곱고 단정하게 생겼습니다. 김테리야끼..아니아니 김태리 배우의 독고다이 같은 선장의 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캐리비안에서 해적을 할 것만 같고요.
가장 최악은 유해진 배우와 진선규 배우가 나온다는 이유만으로 어쭙잖게 유니버스를 확장하려 했던 시도였습니다. 타짜 1편에서 나온 대사를 차용한 승리호 내에서의 가족(?)도박이라던 가, 범죄 도시에서 있었던 손목 절단 사건을 자신의 무용담처럼 언급하는 부분이 바로 그것이죠. 정말 하나도 웃기지 않았습니다. 영화 초반부터 여기까지 오는 대략 한 시간 동안. 저는 가벼운 짜증이 그러데이션으로 쌓이는 것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기술력, 혹은 CG(그래픽) 스태프분들의 피 땀 눈물
사실 승리호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가장 걱정했던 것은 CG의 완성도였습니다. 최근 막대한 돈이 들어가 볼거리를 보장한다는 것을 자랑처럼 이야기하던 영화들이 참 많았습니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봤더니 자전거 경주 장면조차 하나 제대로 구현해내지 못하는 것을 보면서 저 돈은 짤짤이 하는데 썼나.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죠.
이번만큼은 네 생각이 틀렸다고. 승리호는 제 눈앞에서 어깨를 당당히 폈습니다.
정말 훌륭하다.라는 말이 절로 나왔습니다. 눈을 의심할 만큼 정교하고 이질감 없는 CG였습니다. 이제 진짜로 한국에서 여기까지 가능하다는 말인가.라는 생각에 제가 만든 영화도 아닌데 뿌듯했습니다.
약간의 무게감이나 원근감 정도의 아쉬움은 있지만. 이 정도면 정말 얼마나 노력을 했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서 가벼운 소름이 돋았습니다. CG 대박이다.라는 말 안에 숨어있는 이름조차 모르는 모든 관계자분들이야말로 이 영화의 또 다른 주연배우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진짜 애썼다. 애썼어. 애는 너무 썼다.
쌍 천만을 이룩했던 [신과 함께]가 개봉했을 때. 한참 논란(?)이 되었던 것은 배우들의 연기였습니다. 과장되었다. 어디를 보는 것인지 모르겠다. 대사 톤이 이상하다. 등등의 이야기가 생각보다 꽤 많았고 그때 배우들은 솔직하게 이야기했었습니다.
사방이 CG를 위한 녹색 천으로 덮여 있어 연기를 어떻게, 어디까지 해야 할지 감조차 잡을 수 없었다고요. 자신들도 이런 방식의 영화를 처음 찍어봐서 모자란 점이 너무 많았다.라고 얘기했었죠.
얼마나 힘들었을지. 이해합니다. 저만해도 코로나 시국이 시작되자 줌으로 회의를 바꾸면서 음소거 그거 버튼 하나를 못 누르는 바람에 온 동네방네 노래를 불러 제낀걸 녹화 당하는 굴욕을 겪었으니까요. 익숙하지 않은 환경은 그 어떤 베테랑에게라도 아쉬움과 당황스러움을 남길 수 있죠. 그렇게 생각하면 어색한 배우들의 연기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자신들이 앞을 보는 건지. 뒤를 보는 건지. 어디에 무엇이 있는 건지 알지도 못하는 상황에서도 연기를 해야 했을 테니까요.
게다가 코로나로 인해 개봉하지 못한 영화들이 넷플릭스로 가는, 아니 가야만 하는 현상에 대해서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하다못해 이런 작은 제 블로그에 올리는 글 하나도 제대로 쓰지 못하면 딸기 한 팩을 먹어 치워대며 스트레스를 뿜어내기 바쁜데. 스텝 몇 백 명의 밥줄이자 배우 자신의 포트폴리오의 한 면을 장식할 이런 영화가 기 한 번 못 펴보고 넷플릭스로 가는 것이 섭섭하지 않거나 억울하지 않다면 그것은 거짓말이겠죠. 모두 모여 이렇게 열심히 만든 영화에 대한 설명을 할 기회조차도 그렇게 많지 않은 것이 저 역시도 조금은 아쉬워집니다.
하지만 늘 그렇듯이.
최선을 다한 것과 잘하는 것은 다릅니다.
냉정하다고 소문난 저를 포함한 우리 대중들은 열심히 만든 작품보다는 잘 된 작품을 보기를 바라죠.
승리호라는 작품은 그런 시각으로 보았을 때 CG 부분에서만큼은 무릎을 꿇고 절을 올리고 싶을 만큼 대단합니다. 그리고 거기에 올인 해 버렸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넷플릭스로 넘어온 것이 오히려 더 다행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영화 승리호였습니다.
이 영화는 마치 제대로 비벼지지 않은 비빔밥과 같은 영화입니다. 집에 있는 재료들로 누구나 익숙한 형태의 비빔밥을 만들어냈지만 제대로 비비지 못해 밥이 뭉친 부분도, 고추장만 뭉친 벌칙 같은 부분도 존재하는 비빔밥 말입니다. 화룡점정 참기름까지 또르르 넣고 슥슥 비빈 비빔밥을 군침을 잔뜩 흘리며 한 입 가득 밀어 넣었을 때. 아쉽게도 제가 씹은 부분은 무언가 잔뜩 뭉쳐 균형이 깨져버린 비빔밥인 것만 같습니다. 먹을만 하긴 하지만 조금은 견뎌야 하는 부분처럼 말입니다.
[이 글의 TMI]
1.오늘 상사 카드 찬스로 맛있는 것을 먹었다.우헤헤.
2. 하지만 다들 세 입 먹고 남겨서 매우 당황쓰.
3. 혼자 무소음 진공청소기 모드로 고개만 끄덕거리면서 밥 다 먹음.
4. 이틀만 버티자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