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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unalogi Feb 10. 2022

누구를 위해 총은 울리나.

영화 [355]리뷰

이 글은 영화 [355]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나 이제 뭐해?"


영화 [무뢰한]에서 자신의 분량 촬영을 마친 대배우 전도연이 울먹이며 한 말이라 했다.


남부러울 것 하나 없는 연기력을 가진 그녀에게 마저도 충무로는 쉽사리 작품을 허락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여성이라는 것이 21세기인 지금도 이렇게 장벽이 된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에피소드였다.


그러나 PC(Political Correctness)는 영화판도 가만히 두지 않았다. 여성 영화라는 타이틀을 가진 많은 작품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했고 여태까지 억눌려 있던 여성들의 서사들이 하나둘씩 나타나기 시작했고, 이런 흐름은 조금씩 목소리를 높여 자신들의 파이를 키우기 시작했다.


이제 남자가 없어도, 혹은 남자들만 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액션 영화들에서도 여성들의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이미 [미스 슬로운]과 [제로 다크 서티]에서 액션뿐만이 아니라 지략까지 확인받은 제시카 차스테인을 앞세운 것만 봐도. 영화 [355]가 얼마나 이 흐름에 정점을 찍고 싶어 하는지 알 수 있다.


세계 5개국의 요원들이 평화를 지키기 위해 모였다는 설정에서 시작하는 영화 [355]가 가진 세 가지 포인트들을 리뷰로 정리해 보았다.





지킬 자격이 없는 자들의 공허한 총성.;과연 무엇을 지키는가.
사진출처:다음 영화

정확하게 케이퍼 무비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팀을 이뤄 무언가를 탈취해 내는 영화의 특징답게, 영화 속 주인공들은 각각의 포지션에서 최고의 능력을 가진 사람들로 이뤄져 있다. 단지 자신의 주특기에 따라 전방에 나서는가 아닌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그리고 이런 역할의 차이는 각 캐릭터의 "지켜야 할 존재"의 유무에서 온다.


명백하게 지킬 것이 있는 그라시엘라(페넬로페 크루즈)와 카디자(루피타 뇽오)는 현장에서 은퇴해 더 이상 "총질"을 하지 않거나 상담 정도의 역할을 맡고 있고, 자신만이 지켜야 할 전부이자 무기인 마리(다이앤 크루거)와 메이스(제시카 차스테인)은 무차별 공격 캐릭터에 가까운 것을 통해 알아챌 수 있다.


그러나 총을 들지 않으려 하던 카디자가 연인의 죽음으로 인해 다시 총을 잡고, 자신의 성향과는 맞지 않지만 어쨌거나 함께한 동료를 지키기 위해 겨우 흉기를 사용하는 그라시엘라를 보면. 그녀들이 자신의 일생을 바쳐 지키려 하는 것이 얼마나 한 사람의 캐릭터를 잘 바꿔놓는지를 알 수 있게 한다.


문제는 이 지켜야 할 "무언가"의 리스트에 팀 355가 스며들게 하는 과정이 그다지 자연스럽지 않다. 너무 급작스럽다는 표현이 좀 더 알맞을 것 같다.


마리와 메이스는 만나기 전에도 각자가 속해있던 단체에서 황소고집으로 유명했으며, 서로 죽인다 해도 그 어떤 어색할 것도 없는 사이인 채로 만나게 된다. 팀 355에 합류한 과정까지는 세계 평화를 위해서라고 치부하며 넘어갈 수 있겠으나. 그녀들이 작은 임무 후 펍에 모여 맥주와 함께 개인적인 수다를 떠는 장면은 이질적으로 다가온다.


서로에 대한 믿음을 급속도로 쌓아 올렸다고 퉁치기엔 그들 사이의 서사가 너무 가볍고 형식적이라. 오히려 영화 앞부분에 공들여 쌓아올린 갈등이 모래성처럼 허망하게만 느껴지기 때문이다.


또한 지켜내겠다고 다짐한 세계 평화는 영화 내에서 조금은 부가적으로 느껴진다. 위기의 크기나 심각성을 주인공들이 오롯이 견뎌내며 파이널 빌런을 향해 가는 것이 아니기에, 마지막 전투에서 느껴야만 했을 비장함은 팀 355의 완전체가 모이는 속도만큼이나 느리고 산만하기만 하다.


세계 평화는커녕 영화 한 편마저도 지켜내지 못할 듯한 그녀들의 활약을 보며, 차스테인이 갈겨대는 총소리가 참으로 공허하게 느껴졌다. 대체 누구를 위해 총은 저렇게 울어야만 했을지는 알 수 없다.



여성 영화?;그 자격도 없다.
사진 출처:다음 영화

여성들도 무언가를 할 수 있다.


혹은 남성에게 "뒤지지" 않는 액션 영화를 보여주겠다는 다짐은 영화 전반에 잘 녹아 있다. 차스테인도 훌륭하지만 영화 [355]에서만큼은 다이앤 크루거의 압승이라 말할 수밖에 없다.



그녀는 마치 터미네이터처럼 목표를 위해 돌진하고, 방해하는 모든 것은 지게차로 밀어버릴 배짱도 가지고 있다. 다양한 언어를 구사하는 그녀의 능력 또한 영화에서 십분 발휘되기에 영화가 진행될수록 심리적인 축이 차스테인에서 다이앤에게로 자연스럽게 넘어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덕분에 액션 시퀀스에서 질 것이다. 혹은 밀릴 것이라는 생각보다는 든든하다는 믿음이 마음 두둑이 쌓이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영화는 이들의 염색체에 들러붙어 절대 떼어 버릴 수 없는 성별을 꼭 한 번은 보여줘야 한다는 신념을 버리지 않은 것만 같다.



그녀들은 하나같이 "남자에게"배신 당해 울고, 그들을 모이게 한 요소가 배신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람을 너무 쉽게 믿으며, 높은 힐을 신고 뛰어다닌다. 드레스를 입어 반전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미인계도 빼먹지 않는다.



무엇을 말하려는지는 알겠으나, 문제는 그 어떤 것도 입 밖으로 꺼내 시원하게 말하지 못하고 입안에 맴도는 어린아이의 투정 마냥 임팩트가 없다. 그들이 헤어지는 마지막 장면에서 후련함이나 뭉클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점이 영화가 지닌 어정쩡함을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거기에 더불어 후속편을 암시라도 하는 듯한 주인공들의 대사는, 마음 가득 말라붙기 시작한 눅진하기 짝이 없는 탄산음료 같은 찝찝함을 선사한다.



그 어떤 여성을 대변할 수 있는 영화도, 후속편이 만들어질 만큼의 후련함을 주지도 못한 영화이기에 이 거북함은 쉽게 가시지 않는다.



페어플레이 하자;그게 무엇이든
사진 출처:다음 영화

하루를 연습하지 않으면 자신이 알고

이틀을 연습하지 않으면 선생님이 알고

사흘을 연습하지 않으면 청중이 안다 했다.


부족한 언어 실력 때문에 분량이 적을 수도 있고, 그나마 있는 대사마저도 어색할 수는 있다. 하지만 존재감이 너무 부풀려져 청중, 아니 관객들이 영화를 보기 전 부터도 왜 나오는지 알 수 없는 캐릭터가 영화에 존재한다.


극 중 린미셩(판빙빙)은 세계 제3차 대전을 일으킬 수도 있는 위험한 물건의 암호를 푸는 정도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이 역할은 카디자도 충분히 해 낼 수 있음을 암시하고 있으므로 유일무이한 존재가 아니다.


또한 (흑화 한) 세바스찬 스탠은 그 물건을 얻기 위해 아무 죄 없는 사람들을 쏘아 죽일 만큼 잔인하지만, 어째서인지 이미 장치가 활성화되어 쓸모없는 역할이 된 린미셩을 곱게 방에서 내보내는 자비를 베푼다.


마치 동양의 모든 신비가 거기에 담겨 있는 듯한 급작스러운 차(Tea) 문화의 전파와 독(Poison)의 효능 검증도 영화에는 별로 어울리지 않는다. 팀 355가 들이닥쳐도 아무 문제가 없었을 정도의 보안 상태가 엉망인 세바스찬 스탠의 집이었다면 총알 한발씩으로도 이미 그의 목숨을 앗아갈 수 있었을 테니 말이다.


이렇게 린미셩은 단지 결승전에서 가장 가까운 곳부터 등장했다는 이유만으로 버젓이 포스터에 등장하고 있다. 포스터 상으로 보면 다이앤 크루거와 같은 위치에 놓인 그녀가 곱게 보일 리가 없다.


영화를 위해 노력한 모든 사람들의 그 애쓰는 마음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단지 등장하는 것만으로 다른 인물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것은 불공평하다. 영화에 "끼워 넣기" 위한 안간힘이 보이지 않을 것이라 믿겠지만, 애석하게도 그 생각은 머리부터 숨기고 보는 닭들이나 하는 생각일 뿐이다. 결국은 이 모든 아집의 합이 자신이 출연한 영화의 품격마저도 함께 떨어뜨리는 것을 왜 매번 모르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그러니, 그것이 영화이든 겨울 운동회이든 상관없이.


페어플레이하자.


청중들이 외치는 불만의 목소리가 커지면, 그나마 유지했던 연주자의 자리에도 앉을 수 없을 것이다. 아니면 혼자만 남게 되던가.




마치면서

영화를 보는 내내 차여신의 절규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그녀는 모든 것을 끝낼 것처럼 치명적이고 전투적이었지만. 영화가 진행될수록 그녀의 고군 분투는 영화를 살리기 위한 안간힘의 향연임이 너무도 자명했다.


게다가 다이앤 크루거가 이렇게 홀대받는다는 느낌을 주는 영화는 난생처음이라 많이 불편한 마음을 가지고 자리를 지켜야만 했다.


그 어떤 요소 하나 제대로 자기주장하지 못하는 영화 속에서 배우들이 해 온 노력에만큼은 정말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손뼉을 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니 속편 생각은 속 편하게 접어두시길 바란다.




[이 글의 TMI]

1. 다이앤 크루거 진짜 멋있었음.

2. 그 와중에 다이앤이 하는 독일어 들려서 신났음.

3. 그렇게 그 신남이 영화에서 신나는 마지막 포인트였다고 한다.


카카오뷰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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