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영화x책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unalogi Jun 05. 2022

나는 기억한다. 고로 존재한다.

이 글은 영화 [애프터 양]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에 안드로이드, 혹은 복제인간의 영화적 "쓰임새"는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에 벌어지는 좌충우돌의 이야기들을 풀어놓는 것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 또한 하나의 "인간"이며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사악한 목적을 가진 사람들을 처단하기도 했고, 또는 인간을 공격하거나 나쁜 일을 벌이는 존재에 국한되기도 했다.


제3 인간으로 분류되는 그들은 모두 괴로움과 위태로움을 지닌 존재들로 종종 묘사되었고. 그들은 늘 사람이 되고 싶어 하거나 합법적인 존재가 되는 것을 자신들의 인생에 있는 가장 큰 목표처럼 갖고 있었다.


영화 [애프터 양]은 이런 시대를 훌쩍 뛰어넘어, 제3인간으로 분류된 그들의 존재가 합법이며 그로 인해 또 다른 갈등(?)에 접어든 안드로이드와 그들과 함께 하는 사람들에 대해 다루고 있다.


여태 봐 왔던 액션이나 스릴러가 아닌. 이미 일상에 완벽하게 녹아든, 매일매일의 색을 닮은 양의 이야기는 오히려 사람들이 생각해 봐야 할 주제에 대한 물음까지도 함께 던진다.




왜 사진 찍기를 망설였을까.;가족의 정의에 대한 질문
사진출처: 다음 영화

영화 속에 나오는 가족은 유달리 "생물학적인 자신의 후손"과 "정상적인 4인"가족에 집착하는 한국인들이 보기에. 이상함의 극치를 달린다 해도 부족함이 없는 조립식 가족이다. 인종에 대한 크로스 오버는 물론. 입양아와 안드로이드까지 함께 하고 있으니.


나머지 등장인물들은 그래도 친숙하면 좋으련만 영화에 나오는 가족의 형태는 "정상"에 가까워 보이는 쪽은 별로 없어 보이기까지 한다.


그럼에도 그들은 함께 무언가를 연습하고, 서로를 타박하기도 하고 위로하기도 하며 함께 무언가를 해 내는 집단의 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이런 "이상함"에 아랑곳하지 않고 아무렇지 않게 카메라 앞에 서서 사진을 찍는다.


다양성, 혹은 넓은 포용력으로 대변될 수 있는 그 시대의 분위기 속에서도. 양은 자신의 소속감에 대한 의문이 문득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가족이 사진을 찍기 위해 서 있는 순간에도. 동생이 얼른 오라며 손짓을 하는 그 순간에도. 양의 모습은 선뜻 프레임 안으로 끼어들지 못해 주춤거리는 것처럼 보였으니까.


하지만 그가 잔잔한 미소를 보이며 우두커니 서 있었던 이유가 자신이 가진 이 눈부신 가족에 대한 감사함을 갑자기 느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그들이 이미 가족이고. 그 사실에 행복해한다는 걸 모든 가족 구성원의 표정에서 충분히 알 수 있었으니까. 여전히 그 시대의 가족들을 이어주는 끈끈한 "그 무언가"가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표정만으로도 충분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양도 문득 그 순간을 머릿속의 한 공간을 기꺼이 털어 저장했던 것이라고. 그렇게 믿고 싶다.




일상이라는 이름의 별자리;혹은 진주
사진출처:다음 영화

성인이 된 거의 모든 사람들은 더 이상 내가 크게 특별한 존재가 아님을 깨달을 때 상실감을 많이 느낀다고 한다. 게다가 그 어떤 변화도 보이지 않는 반복된 일상에 처할 때 걷잡을 수 없는 무기력함도 느끼게 된다.


그것이 영화 속이라 해도 그다지 크게 다르지는 않나 보다. 영화는 좋게 말하면 안정된 일상을, 나쁘게 말하면 지루함의 연속인 하루하루의 반복된 이벤트들을 보여준다.


그러나 고장 난 양의 기억장치를 들여다보는 시점에 갔을 때. 영화는 우리의 인생이 불꽃놀이보다 화롯불에 가까움을 말해준다. 아이러니하게도 사람이 아닌 안드로이드 양의 저장 장치를 통해서.


양은 일상에서도 특별한 순간을 찾아내 자신의 삶을 지탱할 데이터로 삼았다. 물론 처음엔 아주 작고 보잘것없는 빛의 부스러기에 불과했을 테지만. 양은 열심히. 그리고 꾸준히 부스러기들을 때론 뭉치고, 뿌리기도 하며 자신에게도 미지의 영역 같았던 저장 공간을 조금씩 채웠다. 그 결과 양의 모든 기억은 은은하지만 충분히 주변을 밝힐만한 별이 되어 빛나게 되었다.


양이 자신의 생에 존재한 모든 이벤트들을 스스로 다듬어 자신만의 별자리로 만들어 놓은 덕분에. 제이크는 그 하늘을 올려다보며 눈물을 흘렸다. 자신에게는 지루함의 연속이었을 그 순간들도. 양에게는 그 하찮아 보이는 매일이 별의 재료였음을 깨닫는 순간이었을 것이다.





AI는 사람과 얼마나 다른가.;Ai는 정말 사람이 되는 것이 최종 목적일까.
사진 출처:다음 영화

영화 속의 양은 애써 자신이 누구인지 묻지 않는다.

그저 일상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기 위한 무던한 노력을 할 뿐이다.


충분히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사람에게는 감정이라는 말로 퉁칠 수 있지만. 어쩌면 안드로이드에게는 시스템적 오류에 가까운 밀려오는 그 "무언가"에 맞닥뜨리는 순간이 몇 번이고 찾아왔을 것이니까.


그러나 그 카오스 속에서도 양은 웃음을 잃지 않는다.


거울을 바라보는 양을 보며, 문득 양만큼은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양은 자신이 고장 나서 더 이상의 "쓸모"가 없더라도 자신을 그리워해줄 가족이 있다고 믿었을 것만 같았다.


바람이 될 것이라며 슬프고 쓸쓸하게 노래를 불러주는 동생도. 그 노래를 들으며 양의 빛나는 기억들을 생각하는 가족도. 그런 존재가 있는 것만으로도 양은 행복했을 것이다. 그러니 "더 이상"은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한계에 대해 이미 알고 있지만. 양은 그들을 생각하며 할 수 있는 만큼의 노력은 게을리하지 않겠다는 마음을 담아. 지그시 입꼬리를 올렸을 것이다. 그게 양에게는 행복.이라고 정의되고 기억하기를. 그 기억들을 모아 자신의 존재를 입증했기를 바랄 뿐이다.





마치면서

최근 많은 심적 변화와 카오스를 겪었다.


(마음속 지옥 중 하나를 소개하자면, ) 내 일상은 본업인 연구원으로의 업무를 비롯한 세컨드 프로젝트들로 가득 차서 단조롭다 못해 기계처럼 반복되는 삶의 중간에 있었고. 과연 이걸 해서 얼마나 큰 부귀영화를 누리게 될까.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음과 동시에 무언가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란 생각에 정말 오랫동안 지키려고 애써 왔던 수면 패턴이 완벽하게 박살 난 날들을 보냈다. 그마저도 울면서 잠에 드는 날이 많아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머리가 깨질 듯 아팠다.


그러던 중 이 영화를 보게 되었다.


양은 누군가를 그저 바라보는 순간을. 이 가족에 속해 있음을 느끼는 찰나들을 모두 자신의 머릿속(마음속이라고 믿고 싶지만)에 아름다운 별자리로 남겨놓았고.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순간들을 모두 빛나는 것으로 바꿔놓는 법을 터득한 사람(?) 이었다.


너무 익숙해져 쓸쓸함마저 느껴지는 일상에 애착을 가지고 그것을 고이 품었던 양의 마음에 많은 것을 느꼈다. 지금 내 마음을 훑고 지나가는 바람이 무엇을 상징하는지는 나도 알 수 없지만. 영화를 보는 순간 아주 조금의 위안을 얻을 수 있었다.


무언가 반복될 때 깊이가 생긴다 했다. 내가 맞이하게 될 그 무언가의 "깊이"가 어느 정도가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이 모든 고뇌의 순간들도 마치 양이 그랬듯이 내 마음속에서도 별자리가 될 수 있는 날들을 기다려 보려 한다.


언젠가는 고뇌의 깊이만큼 빛나고 있을 내 별들을 보며 나도 그 순간을 계속이고 곱씹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이 글의 TMI]

1. 여름 샌들 샀는데 발목 다침.

2. 햇빛 알레르기 약간 생겨서 피부과에 돈 갖다 바침.

3. 일주일에 글 하나씩 쓰는 게 왜 이렇게 힘든지 잘 모르겠다. 특히 요새.

4. 영화 [범죄 도시 2] 리뷰가 대박 나서 좀 얼떨떨한데. 진짜 감사합니다.



카카오뷰도 있어요+_+

http://pf.kakao.com/_bjlGb



#애프터양 #저스틴H민 #콜린파렐 #조디터너스미스 #코고나다 #최신영화 #영화추천 #영화리뷰어 #영화후기 #내일은파란안경 #브런치작가 #네이버인플루언서 #Munalogi #오늘뭐볼까 #영화리뷰 #안드로이드






매거진의 이전글 케빈의 부모에 대하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