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 리뷰
이 글은 넷플릭스 작품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의 리뷰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장르물을 다루는데 답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는 장면이나 설정들이 있다. 예를 들어 수사물에서는 발바닥에서 땀난다는 말 외엔 묘사할 방법이 없는 형사들의 고군분투가 그려진다던가. 주인공은 조사를 해야만 하는 세력과의 갈등을 겪으며 숨길 수밖에 없는 비밀을 가진 채 초조해한다던가. 흑막이라고 불리는 최후의 빌런이 나타났을 때 아니 네가!!라는 말이 나오는 반전이 숨겨져 있다던가. 하는 것들 말이다.
장르마다의 특성은 대다수의 사람이 기대하는 점이면서도 식상함을 느끼기 쉬운 포인트이기에, 기본적인 규칙은 지키면서도 작품만의 변주로 확실한 자리매김을 해야 하는 이중고를 가져다주기도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았을 때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는 변주로 가득하다고 하기보다는 단점으로만 가득하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화면은 어둡고 사건 전개는 느리며 수사물에서 볼 법한 장면이 거의 없다.
그러나 이 드라마는 이런 단점을 뒤집어 모조리 장점으로 만들어버린다.
12.3일 이후로 가르마 위치만 달랐지 우리나라에도 존재하고 있는 것 같은 히틀러의 인기는 스포트라이트가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어두컴컴한 곳의 가장 정중앙에 우두커니 선 채로 그는 마치 자신만이 계시를 받은 듯 밝은 빛 아래에 존재했고. 모두가 자신을 올려다보는 가운데 반짝반짝 홀로 빛나며 말빨 하나로 군중들을 홀라당 사로잡았다.(아 물론 누구는 그마저도 못해서 전 세계인의 욕만 홀라당 얻어먹었으니 그게 다른 점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
이렇듯 스포트라이트는 집중할 수 있는 힘을 주지만 수사물에서는 그다지 각광받는 시점은 아니다. 그리고 이 포커싱을 위해서, 극 중 큰 비중을 차지하는 태수(한석규)의 집은 거의 대부분의 장면에서 어두워야만 한다는 위험요소가 있었다.
그러나 이 단점을 완벽하게 커버하기 위해. 위대한 배우 한석규가 등장한다. 개인적으로 한석규는 허탈함을 표현해 낼 줄 아는 세상 몇 안 되는 배우라고 생각하는데 이 작품에서도 그의 진가가 모든 장면에서 발휘된다.
태수의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담은 숨결 한 번에. 시청자들은 마음 바닥까지 훑는 듯한 저릿함을 느끼기도 하고, 애처롭게 딸을 쳐다보는 눈빛에서 쏟아지는 태수의 복잡한 심경을 보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눈가가 파르르 떨리기도 한다.
극 중 분위기와 너무도 닮은 태수는 거의 대부분의 장면에서 침착하고 냉철하며 묵직한 태도를 취하지만. 마치 혼자만 벚꽃을 뿌린 듯 샤랄라 빛나는 군도 속의 강동원처럼. 태수는 자신을 에워싼 어둠에 조금도 잠식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좋은 배우를 보는 카타르시스 자체가 스포트라이트가 되어 확실하게 태수를 비춘다.
수사 장르물에서 한국인이 좋아하는 속도로 수사가 진행되려면 계엄에서 해제까지의 속도쯤은 되어야 할 텐데, 이 작품은 프로파일러라는 태수의 직업상, 수사의 진척이 마치 국민의 짐 때문에 탄핵이 자꾸 미뤄지는 것만큼 느릿느릿하고 지지부진하게 진행되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드라마는 각본의 거의 대부분을 태수와 딸 하빈(채원빈)에게 집중시키는 두 번째 스포트라이트를 씀으로써 흩어지는 이야기를 없애고 극 중에 덩그러니 두 사람만을 남겨둔다.
여러 용의자와 더불어 결국에는 밝혀질 최종 빌런을 이리저리 꼬아 놓으려면 주변에 대한 설명이 많아질 수밖에 없고. 이로 인해 극을 따라가는 데 있어 에너지를 많이 써야 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과연 이 등장인물이 필요했는가?라는 물음이 생기기도 하고. 소위 말하는 떡밥이 완벽하게 설명되지 못해 물음표를 남기거나 실패한 수사물이라는 오명을 얻기도 한다.
그러나 외롭게 뻗은 두 가지 외에 모든 곁가지를 없앰으로써 극 전체는 긴장감을 잃지 않을 수 있게 되고. 딸과 아버지 사이에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불안감으로 시청자를 단단히 동여맨 채 수사의 방향과 속도를 받아들이게 한다.
행여나 그 와중에도 이탈하는 사람이 있을까 봐 걱정이라도 되었던 듯. 작품은 세 번째 트릭을 쓰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버릴 것 하나 없이 아름다운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형사들의 냄새나는 양말도, 목에서 피맛이 느껴질 것 같은 추격전도. 흠씬 두들겨 맞아 정신이 혼미해지는 폭력 장면도 없다. 오로지 극의 분위기를 십분 닮은 태수의 집이 존재할 뿐이다. 그의 집은 과연 김건희의 도이치 모터스 주가 조작정도가 아니고서야 프로파일러의 월급으로 이 정도의 수준을 유지할 수 있을까. 싶을 만큼 아름답지만. 동시에 어딘가 비밀을 감춘 듯 모든 문이 닫혀 있으며 대척점을 이루는 부녀관계를 간접적으로 보여주듯 그들은 늘 식탁의 끝과 끝에 존재한다.
장면들이 가진 아름다움과 선으로 구분한 상징들은(마치 영화 [기생충]처럼) 배우들과 어우러져 최종적인 장면을 구성한다.
분명 비어있거나 심심하다고 느낄 수 있는 위험요소를 이 마지막 트릭이 완벽하게 없애준다. 덕분에 배우들은 빛나고, 극의 진행 또한 매끄러우며, 비밀을 숨긴듯한 아름다움을 보면서 만족할 수 있는 드라마가 완성될 수 있었다.
마치면서 (좀 길다)
1. 한석규 베우는 나이에 맞는 역할을 언제나 따박따박 잘하는 배우라고 생각하는데. 이 작품만큼 그의 나이와 시간과 때에 맞는 작품은 없다고 생각한다. 단 하나의 거짓 없이 진실과 진심만으로 뭉친 대배우를 보는 이 마음이 얼마나 감사하면서도 코끝이 찡한 건지 모르겠다.
2. 비질란테로 대변할 수 있는 "사이다"물이 아니지만. 가장 현실적인 마지막을 선사한 드라마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또한 이런 결말은 한석규 배우가 있었기에 더 진실되었다고 생각한다.
3. 개인적으로는 제목조차 탁월하다고 생각한다. 처음엔 딸만 아버지를 배신한 줄 알았으나.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모든 관계의 인물들이 서로에게 비수를 꽂다 못해 더 이상 고통을 호소할 수 없을 때까지 서로를 괴롭힌다. 그들의 관계에서 오는 배신감 때문에 모든 장면이 아름답지만 동시에 아프게 느껴지는 이유다.
최근 누군가는 알량한 신뢰를 업고 온 국민을 배신했다.
이 배신이 가진 파급은 너무 커서 열흘이나 지난 지금도 일상에 온전히 발을 붙이지 못하고 사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덕분에 불안장애 약을 안 빼먹고 자알 먹는다)
제목이 이 드라마의 정체성을 갖고 있다면. 있는 그대로 보는 게 왜 이렇게 어려울까.라는 극 중 대사는 가르마 타는 거 외엔 그 어떤 관심도 없어 보이는 당신에게 선사하는 메시지 같기만 하다.
있는 그대로 보아야 한다.
당신 혼자 빠진 그 망상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스포트라이트를 이용했다는 히틀러처럼. 당신 또한 그의 말로를 따라갈 것이니. 그대의 최후가 오거든 단 한 번만이라도 눈을 똑바로 뜨고 있는 그대로 보기를 바란다.
당신은 우리에겐 친밀하지는 않았을지언정 배신자였으며. 주지 않은 신뢰마저도 이용하려 했다는 것을. 앞에 펼쳐진 이 모든 처참함은 당신이 자처한 것임을.
[이 글의 TMI]
1. 도시락 싸놨는데 안 들고 옴
2. 나 잡혀가면 좌표 좀 찍어줘요.
3. 냄비밥 해놓고 깜빡해서 밥 다 쉬었음.ㅠㅠ
#넷플릭스 #영화리뷰 #OTT리뷰 #이토록친밀한배신자 #munalogi #한석규 #신작리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