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실보다는 바깥 세상을 꿈꿨던 얄팍한 시절
<2004년 5월 31일>
대학교 들어간 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땡땡이쳤다.
재미없는 강의를 듣느니 차라리 좀비한테 쫓기는 게 낫겠다 싶어서였을까.
혼자 찾아간 오전 9시의 CGV는 내 전용 상영관이나 다름없었지만 사실은 조조할인을 위함이 아니었을까 싶다.
오늘은 평상시에 관심이 있었던 무에타이 액션 영화 <옹박>이 아직 개봉 전이라 좀비들에게 익사이팅하게 쫓겨보겠다는 각오로 공포영화인 <새벽의 저주>를 골랐다.
작품성? 글쎄. 맥락 없이 터지는 사건들에 게임 <바이오하자드>를 그대로 베낀 듯한 설정이 거슬렸지만, 평일의 일탈이 키포인트였던 현시점에서는 그게 딱히 뭐 중헌가 싶기도 했다.
킬링타임으로 즐기기엔 나쁘지 않은 공포였으며 아무도 없는 극장에서 느끼는 서늘함이 꽤 짜릿하기도 했고.
영화감상 이후에 나름 영감을 필요로 한다며 사색을 즐기다가 집으로 돌아오니 오후 4시 27분.
밖은 아직 환한데 내 방에서 안락함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분이 묘하게 좋다.
눈앞에는 분식집에서 포장해 온 오징어 덮밥과 냉장고에서 방금 꺼낸 시원한 캔맥주가 놓여 있고, 아무 생각 없이 켜놓았던 컴퓨터의 모니터 속에는 익숙한 싸이월드 미니홈피가 떠 있다.
BGM을 취향 껏 고르고 일촌들의 파도타기를 하며 한 숟갈 뜨는 오징어 덮밥의 맛.
이 완벽한 여유를 위해서라도 나는 기꺼이 불성실한 대학생이 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