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신분이 없는 자에게 뿌려진 첫눈

재즈 = 이 때 당시 나에겐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의 대표적인 표본

by 이루기

올해의 첫눈이 내린다.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듯 펑펑 쏟아지지만 매섭지 않았으며 그저 포근하게 세상을 덮어주는 눈이다.

폭설인 듯 폭설 아닌 온 세상을 하얗게 위로하는 축제 같았던 풍경.


하지만 창밖의 낭만을 오롯이 즐기기에 지금 내 마음의 여유는 턱없이 부족하다.

12월, 입시라는 긴 터널의 끝이 드디어 보이기 시작했으니까.

남들에겐 설렘일 이 눈이 재수생인 내게는 그저 스쳐 지나가야 할 풍경이라는 사실이 적잖게 안타깝다.


눈이 오면 슬쩍 떠오르는 연인들의 낭만, 혹은 내 가슴 한구석을 따끔하게 찌르고 지나가는 시리고 시린 지난날의 추억들.

지금 내 곁엔 연인도, 낭만을 즐길 여유도, 아무것도 없다. 오직 무거운 손과 비워내 할 마음뿐.

그렇게 나는 마음의 창을 닫는 대신 음악을 재생하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재즈 피아니스트 곽윤찬 1집 앨범 Sunny Days - Stella by Starlight'


나의 마스터이시자 한국인 최초로 블루노트 레이블에 입성한 재즈 피아니스트이신 그의 건반 위로 흐르는 재즈 선율이 차가운 내 방을 채운다.

지금은 비록 움츠러들어 있지만 언젠가 맞이할 나의 진짜 겨울은 이 음악처럼 근사하고 따뜻할 것이라고 상상하며.

나의 2005년 첫눈은 그렇게 선생님의 음악 속에 녹아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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