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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일 Sep 08. 2023

물의 정령아 제발 나와줘

 결코 많은 양의 숙제가 있는 게 아니었음에도 난 언제나 숙제를 하지 않았다. 엄마가 숙제 다 했냐고 물어보면 못 했다고 대답했다. 그러면 엄마는 못 한 게 아니라 안 한 거라면서 화를 내셨다. 손바닥도 많이 맞았고 책상을 쓸려보기도 했다. 회초리를 들고 때릴 듯이 겁을 주시면 우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신다고 해서 내가 공부를 하는 건 또 아니었다. 공부를 안 한다는 명목으로 많이 혼나던 시절, 내가 숙제를 열심히 하는 아이였다면 행복했을까. 난 내가 불행하다는 걸 계속 곱씹으며 살았다. 부모님께서 화를 많이 내셨던 게 옳은 일이었는지, 옳지 않은 일이었는지는 아직까지도 모르겠지만, 왜 그러셨는지 이해는 된다. 굳이 그러셔야 했는가에 대한 원망은 있다.


 학교가 끝나면 한 친구네 집으로 자주 놀러 갔다. 친구 집에 가면 캐치볼이나 야구 같은 것들을 했다. 그럴 때면 내가 불행하다는 사실을 잊었다. 우리 집보다 친구 집이 훨씬 재밌고 편안했다. 친구 집에 가면 가끔 친구 부모님을 뵙게 되었는데, 그럴 때마다 친구 아버지는 우리랑 야구나 캐치볼을 같이 해주면서 놀아주셨다. 친구가 말하기를 자기 아빠가 쌍방울 레이더스의 야구 선수였다고 했다. 집에 와서 네이버에 친구 아빠 이름을 쳐봤는데, 그런 이름을 가진 야구 선수는 없었다. 친구네 아버지가 거짓말을 한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별로 중요한 게 아니었다. 친구네 집은 어린 나에게 너무나도 이상적인 공간이었고, 그 부모님들 또한 그랬다.


 그에 비해 우리 집 분위기는 그다지 좋지 않았다. 그래서인가 초등학교 시절의 기억은 신기할 정도로 없다. 그나마 기억이 나는 건 내가 방 모서리 부분에 웅크려 있던 모습, 누군가 우는 모습, 형이 장난감 플라스틱 골프채로 엉덩이를 맞던 모습, 엄마가 형이랑 나를 밤에 재워주시며 쿵쿵따를 하던 모습. 그 정도가 있다. 방어기제가 내 어릴 적의 기억을 지워버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있다. 어릴 적에는 아빠가 나랑 형을 데리고 많이 놀러 다녔다고 말씀하시는데, 단 한 순간도 기억나지 않는다. 초등학교 고학년부터의 희미한 기억으로는 가족끼리 어딜 놀러 간 적이 없다. 그냥 그 당시에는 엄마 아빠 둘 다 미웠다. 너무 미웠다.


 친구 집은 내게 많은 위로가 되었지만, 나의 슬픔을 전부 해결해주지는 못했다. 그곳을 벗어나면 어쨌거나 집으로 가야 했기 때문이다. 저녁밥 먹을 때가 되면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밍기적대면서 집으로 걸어가고, 집 앞 놀이터에서 조금이라도 더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더 늦어지면 엄마 아빠한테 크게 혼났다. 나는 너무 억울했다. 나쁜 짓을 한 것도 아닌데. 그리고 그렇게 화낼 일도 아니지 않나. 집이 좋았으면 내가 잘 들어갔겠지.


 엄마 아빠도 부모 노릇이 처음이라 그러셨던 걸까. 부모님은 내가 살고 싶은 삶을 살지 못하게 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내 삶을 방해하는 사람이 내가 되었다. 원망의 대상이 부모님에서 나로 바뀐 이후로 많은 허탈감을 느꼈다. 자유가 있었더라도 지금과 별다르지 않았을 거라는 자조적 상상과 함께, 내 원망의 방향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로 내 삶의 책임은 오롯이 나의 책임이 되었다.


 어찌 암울하기만 했던 내 초딩 시절, 친구도 내 외로움을 해결해주지 못했고, 공부는 하기 싫었고, 내 상황은 결코 변하지 않을 것 같았다. 부모님의 태도가 갑자기 변할 거란 기대도 할 수가 없었다. 그러던 중에, 확실한 계기는 모르겠지만 나는 정령 같은 것들이 실제로 존재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어디서 주워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물의 정령 운디네나 불의 정령 살라멘더 이런 것들 말이다. 주위를 맴돌며 시전자에게 도움을 주는, 정령을 부리는 힘이 내게 생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정령들이 항상 내 곁에 머물러 줄 친구가 되어줬으면 했다. 그래서 나는 네이버에 “운디네”, “운디네 소환”, “정령 룬 그리는 법”, “마법진 양식” 이런 것들을 쳐보곤 했다. 운디네를 친 이유는 4원소의 정령 중에서 가장 상냥하고 치유의 능력이 있는 따듯한 마음씨를 가진 정령이 바로 물의 정령 운디네였기 때문이었다. 어디서 본 건지는 모르겠다. “정령 소환법”이나, “마법진 양식” 같은 것들은 네이버에 쳐도 나오지를 않았다. 고민 끝에 나는 내가 소망하는 것들을 강하게 생각하면서 마법 언어 룬처럼 생긴 구부정한 글자들을 300원짜리 공책에 적었다. 원을 그리고 기하학적인 그림을 그려냈다. 그리고 속으로 "물의 정령 운디네님 제발 나와주세요!!!" 라고 외쳤다. 그 순간 내가 그린 마법진에서 순수하고 아름다운 푸른 기운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하더니 잠시 후 엄청난 빛이 뿜어져 나왔다. 하얀 빛은 내 방 전체에 퍼졌고, 모든 물건이 빛에 반응하여 발광하고 있었다. 순간 내 머릿속은 하얘지고 정신을 잃고 말았다. 깨어나니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방 안의 모든 것은 그대로였고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나의 항상 곁에 있어 줄 친구 만들기는 실패로 돌아갔고, 정령 같은 것들에는 금방 흥미가 떨어지게 되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데 어떻게 흥미를 가지겠는가. 그 이후로도 나는 날 행복한 사람으로 만들어줄, “진짜 나”를 좋아해 줄 친구를 찾아다녔다. 그렇게 동경하는 친구들과 -예를 들어, 재밌고 무리의 중심에 있는 친구들- 가까워지고 싶었으나, 바라기만 하고 줄 건 없었던 나는 어떤 관계에서든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진짜 나”를 좋아해 줄 친구 같은 건 이 세상에 없다는 걸 몰랐기 때문이었다. "진짜 나"라는 것도 허울 좋은 말일뿐이고, 친구라는 관계조차도 서로 얻을 것이 있어야 성립된다는 것을 그때는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걸까.


 관계에 대한 괴로움은 스물다섯을 넘겨 휴학을 하고 나서야 겨우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혼자 허비한 시간들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새로운 인연에 골치 아플 일 없는 환경도 좋았다. 평소에 카톡도 잘 하지 않던 나를 불러주는 친구들에게 고마움을 느끼게 되었고, 순수한 사랑의 감정을 나누는 신기한 일도 경험했다. 욕심을 내려놓고 나서야 관계에 대한 고민은 가벼워졌다. 휴학을 하고, 생기는 갈등이라고는 내 자신과의 갈등뿐이었다. 내 고민조차도 버거운데 어떻게 새로운 사람들과의 인연을 내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을까. 관계 속에서 내 모든 슬픔에 대한 해결을 바라지 않게 되었을 때, 비로소 관계에 대한 무익한 고민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나게 되었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혼자 침대 옆 구석에 쪼그려 앉아 울었던 어릴 적의 내가 없었다면,

나는 어떤 사람이 되었을까.

더 괜찮은 사람이 되었을까.

아니면 그냥 걱정 없이 살게 되었을까.


모를 일이다.


마법진이 그려져 있는 그 공책은 잘 버려졌을까.

엄마가 보진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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