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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일 Sep 19. 2023

의존하기를 관두고

 나는 어릴 적의 기억이 많지 않은 사람이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그 어렴풋한 기억들을 조금씩 찾아낼 수 있었는데,

 오늘도 쓸 만한 기억이 뭐가 있을까 곰곰이 생각하다 초등학교 1, 2학년 즈음의 내가 생각이 났다.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엔 친형 뒤를 맨날 따라다녔다. 계속 쫓아다녀서 자연스럽게 형 친구들이랑도 같이 놀았다. 놀았다기보다는 형들이 나랑 놀아준 거지만. 어쨌든, 형이 나를 두고 놀러 가려고 하면 나는 펑펑 울면서 엄마한테 형이 안 놀아준다고 일렀다. 엄마한테 혼난 형은 결국 나를 항상 달고 다녀야 했고, 그런 나를 귀찮아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형한테 얼마나 미안한지 모른다. 날 때리지 않았다는 게 신기할 정도. 때린 적이 있다고는 하는데 기억은 없다. 얼마 전에 형이 말해주기로는, 나를 데리고 자기 친구들이랑 같이 피시방에 가서 카트라이더를 했는데, 내가 세 살이나 나이 차이가 나는 형들을 상대로 계속 이겨댔다고 했다. 열받은 형은 나를 쥐어박았고, 또 나는 울어버리고 말았다는 싱거운 추억. 어떻게 이런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지에 대해 생각해보면, 역시나 안 좋은 기억은 죄다 잊어버리려는 내 유년 시절의 방어기제 덕분이 아닌가 싶다.


 형에게 집착하던 나날들이 지난 뒤에도, 나는 어딘가 재밌어 보이는 무리에 껴서 놀고 싶었다. 초등학생, 중학생 때는 잘나가는 친구들과 놀고 싶었고, 고등학생 때도 재밌어 보이는 친구들을 좋아했고, 대학교 때도 선배들이랑 노는 걸 좋아했다. 세상에. 대학교 때까지도 그런 줄은 몰랐는데. 어쨌거나, 난 내 자신이 중심이 되어 친구들을 끌어들이는 일은 하지 못 했다. 내 스스로가 사람을 끌어들일 매력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매력이라는 것이 마음가짐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그때는 생각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매력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매력이 없었다.


 내가 포함된, 자연스럽게 형성된 무리가 있다 하더라도 나는 언제나 빛나 보이는, 선망하는 무리에 끼고 싶어 했다. 지금 내 곁에 있는 친구들이 얼마나 소중한 인연인지 모르고 그들을 알게 모르게 무시하고 멀어지려 했다. 나는 더 재밌게 놀고 싶었다. 그런 어린 생각으로 그들과의 관계를 온전히 즐기지 못했다는 것이 이제와 후회스럽다.


 사랑할 대상이 없는 자들은 기본적으로 사람에게 의존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사람에 의존하고 살았다. 어린 나이에는 보통 부모님께 의존하겠지만, 내 어릴 적의 기억은 공부를 하지 않아 혼나던 순간들과 그 순간들을 딛고 어른이 되는 상상을 하던 기억뿐이었으니, 당시에는 그 괴로운 시간들이 단지 나를 완성하기 위한 과정에 불과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런 시간들마저 아깝고 귀한 시간이라는 걸, 그 어린 나이에 알아차릴 수는 없었던 것이다.


 집이 마음에 들지는 않았던 탓에 나는 타인과의 관계에 집착하게 되었다. 매력이 없는 나를 위해서, 스스로 눈에 띄는 사람이 되려 했다. 그래서 계속 반장을 하거나 선도부장을 하거나 전교 회장 선거에 나가는 등, 내 영향력을 키울 수 있는 자리에 집착했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관심을 받고 싶었다는 거다. 결론적으로 받게 된 관심의 양은 많아졌지만 외로움의 근본적인 원인은 해결되지 않았으니, 뭘 하든 불행하기는 매한가지였다.


 언젠가부터 내 외로움의 원인이 내 능력 부족에 있다는 생각을 했다. 탁월한 능력이 있으면, 무엇이든 괜찮은 결과물을 만들어낸다면 어딘가에 속하려 발버둥 치지 않아도 될 텐데. 탁월한 능력으로 무언가에 몰입하게 되면 외로울 시간도 줄어들 터였다. 하지만 탁월한 능력을 가지게 되거나 그럴듯한 결과물이 만들어지기에는 노력의 양과 질이 터무니없이 부족했다. 능력이 없으니 노력도 재미가 없었다. 애초에 노력이 있어야 능력이 생길 테다. 나는 그 최소한의 실력을 갖추는 일조차도 힘에 부쳤다. 그러자면 또, 내 노력 부족을 탓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내 모습이 괴롭다. 특히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강박에 있어 그렇고, 강박이 있음에도 열심히 살지 않아서도 그렇다. 나를 탓함으로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걸까. 그렇게라도 괜찮은 사람이 될 수 있다면,

 흔쾌히 나를 탓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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