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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일 Apr 03. 2024

그깟 알량한 자유.

우리가 다툴 때면 난 초점없는 눈으로 생각에 잠기곤 했었지.


그럴 때마다 넌 내게 묻곤 했어.


대체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고 있느냐고.


난 뭐든 쉽게 만들어내질 못해.


글도, 노래도, 생각도, 내 마음까지도.


알다시피 내가 좀 주관이 없잖아.


많이 답답했을 거야.



너가 떠나는 순간에도 나는 가만히 있었어.


앉아서 울기만 했어.


떠나지 않으면 안될까. 말하고 싶었지만 그러진 않았어.


그땐 내가 맞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그건 그런 문제가 아니었지.


너가 싫다면 하지 말았어야 했어.


그리고 사과했어야 했다는 것도.


모두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알게 되었어.



너가 없어지고 나는 제법 초라해졌어.


원래 초라한 사람이었지.


그걸 잊고 살았어.


안 좋은 생각에 괴로울 때면 너가 생각나 금방 그만두곤 했었거든.


그런데 이젠 그냥 나 뿐이야.


어떻게든 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게 잘 안되더라.


너가 내 옆에 꼭 붙어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많은 힘이 되었는지 너는 모를 거야. 정말.



그 날엔 정말 마지막일 것 같아서, 얼굴을 계속 보느라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생각을 못했어.


그저 그동안 고마웠다고, 행복했다고 말했었지.


이제는 할 말이 생각이 났는데 들어줄 너가 없더라.


너가 그때의 우리를 어떻게 기억할지, 지금은 어떤 생각을 할지, 그런 건 이제 알 수 없게 되어버렸네.


꽤 많은 시간이 흘렀잖아.


정말 모르겠어. 너가 나를 미워하고 있을지, 아니면 그리워하고 있을지.


함부로 추측하는 것도 조심스러워. 실례잖아.


나를 미워하고 있다면 이 글을 보면서 날 마음껏 미워해줘.


너가 나를 그리워하길 바라는 내 마음은 내가 봐도 심하게 역겹거든.


사실은 돌아와달라고 말하고 싶어.


너를 평생 좋아할 수 있다는 건 얼마나 큰 행복일까 싶어.



너가 없어진 이후로 내 마음대로 살아봤어.


담배도 무지하게 피우고, 머리도 기르고 있고, 술도 생각없이 마셔.


약속이 있으면 다 나가고, 외박도 엄청 해. 주말 이틀이 다 내 시간이잖아.


너에게 한심하게 보일까 억지로 열심히 살던 것도 이젠 좀 풀어졌고


비오는 날엔 우산도 남들 위험하게 마구 흔들면서 다니고,


길을 걸을 땐 어깨도 마음껏 굽히고 다녀.


옷도 내가 원하는 대로 아저씨처럼 입고 다녀.


약간은 강박적으로, 너가 하지 말라던 걸 하려 했어.


이유는 없었어. 그래야 할 것 같았어.


이제와 생각해보면 너와 헤어져도 괜찮은 이유를 찾으려 했던 것 같아.


하지만 그런 건 찾을 수가 없었어.


너 하나 없는 게 제일 힘들었거든.


헤어지지 않았더라면 난 아직도 몰랐을 거야.


내가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합리화가 이거야.  


그깟 알량한 자유가 뭐가 그리 소중했을까.


그깟게 뭐가 그렇게 어려웠을까.  


난 아직도 그런 후회를 하고 있어.



너가 역으로 들어갈 때 너를 잡았더라면.


무언가 달라졌을까.


그런 생각을 종종 하곤 해.


당장이라도 전화를 걸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는 건


내가 너에 비해 아주 초라한 인간이라는 걸 이제는 조금 더 잘 알게 되었기 때문이야.


열심히 살아볼게.


미안해. 잘 지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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