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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일 May 21. 2024

새소년에 대한 단상과 아쉬움.

새소년의 음악은 17년도, 그러니까 그들이 갓 데뷔했을 때, 내가 갓 일병이 되어 휴가를 나와, 그들의 음악을 계속해서 들으며, 갓 나온 젤다의 전설 야생의 숨결을 플레이했던 기억으로 강하게 남아있다. 가장 달콤한 휴가인 일병 첫 휴가에 괴물 신인 밴드의 음악을 들으며 괴물 신작 게임을 플레이한 셈이다. 행복한 3박4일이었다. 이렇듯 좋은 음악은 그와 함께한 시간들을 좋은 기억으로 남게 해주곤 한다.


나는 새소년이라는 밴드를 아주 좋아한다. 3명의 멤버로 시작해 데뷔 초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고, 지금은 보컬인 황소윤과 베이스의 박현진으로 이루어진, 이미 성공했고, 미래 역시도 아주 유망한 괴물 락밴드라고 간략하게 말할 수 있겠다. 나는 홍대병은 아니지만, 정말 새소년을 초창기부터 좋아했고 지금도 아주 좋아하고 응원하고 있다.


새소년은 초장부터 음악적으로나 대중적으로나 대단한 퍼포먼스를 보여주고 있었다. 이들은 데뷔한지 얼마 되지 않아 ‘유희열의 스케치북’에 나와 노래를 선보였고, 금방 온갖 축제를 누비며 락스타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나는 새소년의 성공에 희열을 느꼈고, 그들이 나아가게 될 찬란한 미래를 기대하고 있었다. 특히 락이 주류에 드는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날이 다르게 유명세를 키워가던 어느 날, 내 눈에 새소년과 관련된 트러블이 점점 보이기 시작했다.


당시 새소년의 보컬 황소윤은 머리를 짧게 숏컷으로 잘랐는데, 그 모습으로 ‘파도’라는 곡을 부른 영상이 크게 인기를 끈 적이 있었다. 축제 무대 위에서 난폭하게 기타를 치며 한껏 음악에 취한 황소윤의 모습은 간지 그 자체였다. 영상을 감명 깊게 본 나는 ‘대앰. 이거 미쳤다.’라고 생각하며 댓글창을 봤는데, 이게 왠걸. 댓글 분위기가 심각하게 망가져 있었다. 나는 댓글창을 쭉 살펴보며 이 갈등의 원인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지금부터는 내가 지극히 주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본 분란의 원인과 결과에 대해서 얘기해보려고 한다.


해당 영상에서는 탄성을 지르는 여자들의 목소리가 많이 담겨있었고, 그런 바 댓글에서 여성 시청자들이 주접 댓글을 달고 있었고, 그를 본 남자 시청자(영상을 보고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들은 익숙하지 않은 주접 댓글에 반감을 표하며 여자들을 욕했고, 그 반감에 반하여 여자들은 더 강한 어조로 주접 댓글들을 달기 시작했다. 당시의 한국 사회는 페미니즘이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고, 남녀갈등이 극에 달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이 주접 댓글 논쟁은 '표현의 방식'이라는 논점을 점점 벗어나 남자와 여자의 차이, 숏컷에 대한 인식, 레즈비언과 부치에 대한 규정과 반박 등의 사회적, 젠더적인 논점에서의 갈등으로 커지게 되었고, 어느덧 남자들은 황소윤을 남자 흉내내는 숏컷 페미니스트라며 욕하고 있었고, 여자들은 길가에서 저렇게 멋진 남자는 한번도 본 적이 없다며 그들을 비아냥대고 있었다. 웅앵웅. 쿵쾅쿵쾅. 와라라라라이. 그 안에 음악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다.


그 이후로 새소년과 관련된 영상의 댓글창을 보면 꼭 하나씩은 조롱의 댓글을 발견할 수 있었고, 또 그로 인한 소모전이 빈번하게 발생되곤 했다. 그와 별개로 새소년은 대외적인 성공을 이어나갔지만, 그 소모전을 보고 있노라면 내가 먼저 지쳐버려서, 점점 새소년의 음악에도 관심을 두지 않게 되었다. 물론 화제의 앨범이었던 “여름깃” 정도의 앨범이 나오지 않았던 탓이 제일 크긴 하다. (싱글 “난춘”과 “자유”는 좋게, 그리고 많이 듣긴 했다.)


난 누구의 편도 들고 싶지 않다. 그 자체가 피곤해진지 오래다. 내가 이러한 현상을 예로 들어 전하고 싶었던 건, 새소년의 커다란 성공을 바랐던 한 팬의 개인적인 아쉬움이다. 나는 정치적으로 다루어지는 이데올로기적 이미지가 창작자에게 입혀지지 않는 편이 좋다고 생각한다. 이데올로기가 자의로든, 타의로든 입혀진다면 아티스트가 창작물이 아닌 다른 이유로 폄하를 당하는 일이 잦아지게 된다. 과도한 억까가 발생하게 된다는 말이다. 그러자면 그 억까를 막기 위한 억까가 시작되고, 그렇게 음악을 좋아하는 팬들은 그걸 어깨 너머로 지켜보다 결국 지쳐버리고 마는 것이다.


이 아쉬움이 당연하다는 건 아니다. 이건 나의 개인적인 바람에 불과하다. 당연히 아티스트들은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밝힐 수 있고, 또 그 팬들도 그 생각을 말할 수 있다. 다만 나는 새소년의 음악이 좋다는 사실을 선입견 없이 모두가 알게 되는 세상이 오길 바랐고, 이제는 그러기 어려워졌다는 사실이 아쉬울 뿐이다. 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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