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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변호사 Dec 15. 2019

정의를 위해 싸우는 변호사?

변호사로 일을 하다 보면 내가 지금 하는 이 일이 과연 정의롭고 옳은 일인가 라는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분명 어릴 적 드라마나 영화에서 본 변호사의 모습은 정의를 위해 싸우고 진실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었다. 의뢰인의 무죄 입증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거나 불의한 세력에 맞서서 자신이 그동안 쌓았던 부나 명예를 내던지고 한 사건에 몰두하기도 한다.


나 또한 이런 모습을 보면서 자랐고, 내 머릿속 변호사의 이미지도 정확히 이런 정의의 사도 같은 이미지였다.


하지만, 실제 변호사로 일하면서 겪는 현실은 드라마 속 모습과는 많이 달랐다. 아니 어쩌면 조금 과장을 보태어 완전히 달랐다.


로펌을 운영하려면 많은 비용이 든다. 몇 명의 변호사가 모여 구성원 등기를 하고 로펌을 차리든 혹은 홀로 개업해서 법률사무소를 차리든 기본적으로 들어가야 하는 최소한의 비용들이 있다.


우선 임대료. 대부분의 로펌이나 법률사무소가 서울 서초동에 위치하고 있다. 악랄하기로 유명한 서초동의 임대료를 듣고 있으면 도무지 변호사로서 개업을 할 엄두가 나지 않는 것은 물론 "아 공부고 뭐고 그냥 건물주로 태어났어야 하는 것인가"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아무리 최소한의 비용으로 변호사 업무를 한다고 하더라도 카페를 옮겨 다니며 혹은 집에서만 변호사일을 할 수는 없으니 말이다. (물론 요즘에는 공유 오피스를 이용하거나 재택근무로 변호사 업무를 하는 분들도 있다. 하지만 소속 변호사들의 숫자가 늘어나면 이러한 형태로만 운영하기란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인건비. 물론 이 부분 지출을 줄이기 위해 개업 변호사가 홀로 이리저리 뛰면서 많은 일을 처리할 수 있다. 하지만 변호사가 기본적으로 사건 수임을 위해 상담을 해야 하고, 홍보도 해야 하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소송 준비 업무도 해야 하는데 여기에 더해서 소송 기록 열람 복사도 본인이 하고, 전자 시스템으로 서면 제출까지 본인이 하는 등 주 업무 외의 일들까지 모두 본인이 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게 되면 결국 각종 업무를 도와주는 직원분들이 있어야 한다.


사무실 인테리어 등 운영비. 로펌 사무실은 일을 하는 작업공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클라이언트들이 와서 상담을 하고 변호사들끼리 회의를 하기도 하는 공간이다. 그러니 변호사들이 일만 한다고 생각하면 꾸미고 차릴 것이 무엇이 있냐 싶겠지만 클라이언트들이 사무실로 찾아왔을 때 보이는 모습 또한 무시할 수는 없고, 그러다 보면 사무실 운영비는 점점 더 많이 들어간다.


어쏘 변호사 인건비. 그리고 변호사로 일을 하면서 사건 수임 등 다양한 업무에 조금 더 노력을 기울이기 위해 소속 변호사를 채용하게 된다. 이렇게 채용한 소속 변호사는 주로 자료 리서치나 서면 작성 업무를 한다. 파트너 변호사들은 소속 변호사들이 써온 서면을 확인하고 수정 지시를 하거나 최종 컨펌 후 서면을 제출한 후에 재판에 나가는 일을 하기도 하고, 주로 재판 전체의 흐름을 주도하는 역할을 한다. 즉, 파트너 변호사들의 업무가 많아지면서 그중 일부를 소속 변호사가 분담하는 것이다. 소속 변호사도 변호사이기에 한 명을 채용하더라도 인건비 지출이 상당히 늘어난다.


굳이 더 자세하게 살펴보지 않더라도 로펌 하나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이렇게 많은 비용이 들어간다.




그러면 클라이언트 입장에서는 사건 하나에 몇 백만 원의 수임료를 지불하고, 사건을 그렇게 많이 가지고 있는데 운영이 어렵고 경제적인 부분을 생각한다는 게 말이 되나? 기본적으로 한 달에 한 건만 수임하면 적어도 적자는 면하는 것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 있다.


언뜻 생각하면 저 말이 맞는 것처럼 들릴 수 있다. 하지만, 여기에는 큰 함정이 있었으니.


변호사가 사건을 한 건 수임하면, 보통은 그 사건이 끝날 때까지(물론 여기서 끝난다는 의미는 1심, 2심처럼 그 심급이 끝나는 때까지만 의미한다. 1심이 끝나고 2심을 진행할 경우에는 다시 수임 계약을 체결해야 한다는 점은 잊지 마시길) 모든 과정을 책임진다.


보통 민사재판을 기준으로 재판은 한 심급에서 아주 짧으면 4-5개월 길게는 1년을 넘는 긴 시간이 소요된다. 그 사이에 짧게는 두세 번에서 길게는 수 차례 재판을 오고 가야 하며, 재판을 오간다는 의미는 변호사가 가방 하나를 달랑달랑 들고 셔츠를 휘날리며 콧바람을 쐬러 다녀온다는 의미가 아니라, 매 재판 때마다 머리를 참기름 착즙기로 짜내듯 쥐어 짜낸 피, 땀, 눈물이 섞인 서면을 제출한다는 뜻이다. 아니 그것만 제출하면 다행이지. 보통은 한 번 재판 기일이 열리기 전까지 많은 사실 기록 조회나 각종 증거신청 등 다양한 세부 절차들이 이뤄진다.


그러니 재판 한 번에 들어가는 노력, 거기에 매달리는 사람들의 인력, 그리고 사건 하나가 진행되는 긴 기간. 이 모든 것을 따진다면 한 달에 사건 한 건으로 사무실이 운영될 수 있지 않냐는 생각이 얼마나 순진하고 틀린 생각이었는지 금세 알 수 있다.


이렇게 잠깐 살펴보더라도 로펌 사무실 운영은 쉽지 않다. 


그러니, 로펌을 운영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당연히 사건의 질을 따지거나 클라이언트와의 캐미 등을 고려할 여유가 많지 않고, 그저 수임료를 높게 책정해서 사건을 많이 수임해야 만한다. 


소속 변호사 또한 이러한 현실을 알고 있다. 나 또한 그러했고. 가끔씩 소속 변호사로서 나에게 할당되는 사건 중 정말 하기 싫은 사건들이 걸릴 때가 있다.


파트너 변호사와 미팅에 들어가면서 내내 마음속으로 주문을 외운다.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속으로는 아 수임하지 말고 가라 가라 가라 를 끊임없이 외치지만 "오늘 도장 찍고 가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라는 말을 할 때면 마음속으로 깊은 탄식이 흘러나온다. 그리고 조금 전까지 상담을 하면서 무언가 죄송한 듯 감사한듯한 태도로 앉아 있다가, 계약서에 도장을 찍는 순간 자신이 갑이 되었고 나는 비용을 지불했으니 이제 너는 일을 해라 라는 표정으로 씩 웃는 그 클라이언트들의 표정 변화를 볼 때면 간담이 서늘해진다.


하지만, 로펌이 운영되기 위해서는 사건을 가려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구미에만 당기는 사건만 맡아서는 로펌 자체가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꾹 참고 사건 기록을 받아 방으로 돌아간다.


이런 모든 현실을 고려하면서 맨 처음 했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정의를 위해 싸우고, 진실을 찾아 헤매고, 공익을 위해 싸우는 변호사. 과연 그러한 것이 가능할까.

한 때는 그렇지 못한 현실에 회의감을 품기도 했고, 나는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일하는가 답을 찾지 못해 오랜 시간 힘들어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현실은. 결코 내가 원하는 사건만 맡을 수 없다는 것, 그리고 때로는 도무지 왜 이러는지 이해조차 되지 않는 클라이언트의 주장을 들어줘야 한다는 것, 그리고 심지어는 나조차도 납득이 안 되는 클라이언트의 주장을 그럴듯하게 온갖 법률 지식으로 버무려서 마치 내가 그렇게 생각하고 원하는냥 법원에 가서 그럴싸하게 주장을 펼쳐야 한다는 것.


이렇게 변호사가 실제 하는 일은 내가 꿈꾸던 정의로운 삶과는 다소 거리가 멀었다. 


성추행범(심지어 명백한 증거가 있어 무죄 주장조차 할 수 없고 그저 형량 감축만 바라야 하는 사건에서)의 반성문을 대신 쓰고, 성추행범 부인 버전, 지인 버전, 친구 버전, 직장동료 버전의 다채로운 탄원서 초안을 써줄 때면 '인생 이렇게 살아서 뭐하나'라는 극심한 현타도 온다. 처음 이렇게 초안을 쓰라는 지시를 받았을 때 나도 모르게 내 방에 들어온 파트너에게 "제가요? 저보고 쓰라고요? 제가 왜요?"라고 필터링 없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말을 뱉어버리기까지 했으니.


땅 투기꾼을 대리해 소송을 진행하면서 승소했을 때, 나는 누굴 위해 무엇을 하는가 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고, 오히려 피고로 나온 사람을 보며 '오죽하면 돈을 못 갚았겠냐. 얼마나 힘들까.'라는 생각에 마음이 아플 때도 있었다.


타고나기를 변호사인 건지, 인간애가 없는 사람인지, 혹은 클라이언트인 원고에게 지나치게 감정이입을 한 사람인지 돈을 갚지 못한 피고를 욕하며 "돈이 없는 것들은 다 죽어야 해"라고 말했던 그 파트너를 잊을 수가 없다. 신입 변호사로 회사에 들어가고 아직 수습 변호사에 불과했던 내가 들었던 가장 충격적인 첫마디였다. 얼마나 그 충격이 큰지 무려 3년이 지난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현실은 현실이다. 낭만에만 젖어서 살 수도 없고, 현실은 드라마나 영화가 아니다. 그러기에 마음으로 꿈꾸던 일 이상의 상상을 초월하는 일들이 벌어지기도 한다.


아무리 현실이더라도 마음에 품은 정의를 향한 열정을 잊지 말자고 글을 마무리하고 싶었는데, 나조차도 현실은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커서 차마 그렇게 글을 마무리할 수가 없다.


그저 오늘도 이런 복잡한 생각들로 마음이 어지러운 변호사님들, 그리고 그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고군분투하고 있는 변호사님들을 마음속으로 응원할 수밖에.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약자의 편에서 고군분투하며 싸우고 계시는 변호사님들에게 나는 그렇게 하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부채의식을 가지고, 그들을 마음으로 응원하며 그분들을 위해 기도한다. 부디 이런 분들이 현실에 지지 않기를. 그리고 그런 분들이 더 늘어날 수 있기를.


그리고 적어도 나는 낭만에 젖어  수만은 없지만 그래도 아주 가끔은 내가 하는 일이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잠깐은 생각해보는사람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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