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생들의 생각에 대한 책들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화제가 되었던 것이 불과 얼마 되지도 않은 것 같은데 이젠 2000 연대 생들이 또 다른 가치들을 가지고 사회로 나오는 것이 또 다른 현상이라고 주장하는 글들을 심심치 않게 보게 된다.
실제 생활에서도 80년대생인 난 90년대생 후배들에게 의도치 않게 꼰대 취급을 받곤 하는데 그들 역시도 2000년 대생들 앞에서 나와 비슷한 처지가 되고는 한다.
사용하는 단어나 어휘마저도 서로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변하는 세대 간의 문화 차이는 따로 시간 내어서 배우지 않으면 이해조차 할 수 없는 하나의 과제가 되어버렸다.
특히 나름 젊게 산다고 자부하는 나 같은 사람에겐 20대의 언어들이 영어공부만큼이나 중요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내가 가르치는 제자들에게선 그런 세대차이를 거의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10년 전 졸업한 녀석들에게도 그렇고 아직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에게도 그렇다.
나에게 특별한 비결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제자들이 나에게 남다른 배려나 이해를 베풀거나 하는 아름다운 스토리가 있는 것도 아니다.
이번 주엔 장애청년들이 모이는 온라인 세미나 자리가 있었다.
청년이라고 하기엔 많이 쑥스러운 나이가 된 나였지만 나름의 역할이 부여된 터라 화면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오늘의 주제는 '온라인 수업 접근성'과 '버스 이동권'이었다.
어제도 이야기했던 것 같고 작년에도 이야기했던 것 같은 잇슈들이지만 오늘도 심각했다.
코로나로 인한 온라인 수업 그리고 저상버스의 균일 배차에 대한 내용 자체는 최근에 제기된 논제이긴 하지만 내가 스무 살쯤 때 고민하던 욉접근성과 버스 번호판 음성 알림에 관한 것들이 조금 모양을 바꾼 정도의 별 달라진 것 없는 안건들이었다.
'새롭게 등장한 소프트웨어를 시각장애인도 특별한 고민 없이 이용할 수 있는 날이 올까?'
'시각장애인도 버스를 편안히 탈 수 있을까?'
'시각장애인도 읽고 싶은 책을 바로바로 사서 읽을 수 있을까?'에 대한 토론은 내가 어릴 적 그리고 나의 선배들이 어릴 적부터 풀어내고 싶은 과제였지만 오늘 나의 제자들도 똑같이 부르짖고 있는 목표이기도 하다.
그 때문에 슬프게도 난 스무 살 가까이 어린 후배들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 수 있다.
다이얼 전화기 쓰던 때의 어른들이 스마트폰 들고 다니는 어린 친구들과 대화하는 것이 쉽지 않고 기타 하나 들고 노래 부르던 가수들 좋아하던 문화의 세대들이 아이돌 가수 문화에 스며들지 못하는 것과는 달리 우리는 시대와 세대를 초월해서 같은 것을 고민하고 공감한다.
버스 타는 것이 불편해서 할 수 없이 지하철 타고 먼 거리를 돌아가던 나처럼 내 제자들도 버스 대신 조금 더 돈을 내고 택시를 탄다.
책 한 권 보고 싶으면 주변에 녹음을 부탁하던 나처럼 내 후배들은 주변에 워드 봉사를 구한다.
컴퓨터 공부를 아무리 많이 해도 들어갈 수 없는 사이트는 그 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존재한다.
세대 간의 갈등이 사회의 주된 화제가 되고 서점의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는 요즘도 난 졸업한 제자들과 술 한 잔 기울이며 같은 고민을 나눈다.
스무 살 가까이 차이 나는 청년들과 같은 주제를 놓고 토론하지만 그 누구도 내게 올드하다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세상의 시계는 너무나 빠르게 흘러가지만 소수의 세상은 고장 난 시계처럼 멈춘 듯 흘러가지 않는다.
세대차이를 느끼지 못하고 제자와도 거리낌 없이 술 한 잔 나누며 동료애를 느낄 수 있는 순간들이 내게 나쁘지 않은 따뜻한 시간들이긴 하지만 난 이것들을 과감히 포기하고 싶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 그 안에서 나도 후배들과 세대차이를 느끼고 싶다.
"예전에는 눈 안 보이면 버스도 못 타던 시대가 있었어."
"책 보고 싶으면 일일이 워드 부탁을 하거나 녹음을 해야 했었잖아."
"공부는 하고 싶은데 온라인 수업 접근성이 안 좋아서 교수님께 따로 메일을 보내기도 했었어."
라고 꼰대처럼 옛날이야기할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다.
그리고 제자들이 내 이야기 들으면서 "선생님 꼰대처럼 옛날이야기 좀 그만 하세요. 요즘 그런 게 어디 있어요?"라고 이야기했으면 좋겠다.
나도 세대차이를 느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