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빙하는 아나운서

by 안승준

방송 출연을 하다 보면 연예인이나 유명 방송인들과 만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사회자와 게스트로 마주하기도 하고 앞뒤 코너의 손님으로 지나치다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때때로 연락처도 교환하지만 바쁜 스케줄 때문에 깊은 인연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그리 많지는 않다. 다른 방송국이나 무대에서 다시 만났을 때는 친한 친구를 만난 듯 격한 반가움으로 인사를 나누지만 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직업 특성상 습관적 인사치레인 경우가 더 많다.

대기실에서 만난 나에게 어떤 연예인들은 "정말 오랜만이에요. 잘 지내시지요?"라고 인사를 건네지만 난 그 이전에 그분을 만난 기억이 없다.. 연예인들 틈에 서 있는 나를 이름 없는 방송인쯤으로 넘겨짚고 의례적 인사를 건넨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깊게 이어지는 몇 안 되는 인연들은 더 소중하고 특별하다.

그녀는 9시 뉴스 앵커였고 당시 최고의 인기 프로그램이었던 '도전 골든벨'의 사회자였다. 밤에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DJ 엮고 여행작가로도 베스트셀러 제조기였다.

본인이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고작 한 두 번 출연한 게 전부인 일반인 게스트와 연락처를 나눌 이유도 없었고 따로 만날 까닭은 더더욱이 없었다.

새해가 시작되던 날 라디오 부스에 초대되었을 때도 다른 가수의 콘서트에 함께 갔을 때도 그냥 착한 마음을 가진 유명인의 봉사라고 생각했지만 동네 분식점에서 아무렇지 않게 마주 앉아서 라면을 먹고 종종 소주도 한 잔 기울이면서 어느 틈에 누나 동생 하는 진짜 친구가 되었다.

내가 춘천의 학교에서 근무하게 되었던 어느 날엔 혼자 자취하는 모습이 궁금하다면서 직접 운전을 하고 찾아온 적이 있다. 인기 아나운서의 방문에 동료 선생님들은 싸인과 사진 부탁을 했고 급기야 두 분은 식사자리에까지 동석했다.

지역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으로 유명한 민물회를 먹던 우리의 일행은 모두 다섯 명이었다. 나를 포함한 교사 세 명, 아나운서 그리고 그녀의 친구가 한적한 가든에 둘러앉았다. 귀한 손님을 대접한다고 찾은 곳이라 경치는 좋았지만 음식을 주문하기 위해서는 매 번 일어나서 멀리 떨어진 카운터로 걸어가야 했다.

문제는 나와 동료 선생님들은 모두 시각장애인이었고 누나의 친구는 외국인이었다는 데 있었다.

물수건도 소주 한 병도 매운탕을 주문할 때도 멀쩡하게 달려가서 주문하고 받아올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밖에 없었다.

하필이면 음식까지 맛있어서 우리의 주문은 회 한 접시, 소주 한 병, 튀김 한 접시... 하면서 계속 이어졌고 그때마다 왕복 달리기를 해야 하는 사람은 대한민국 대표 아나운서일 수밖에 없었다.

처음 몇 번은 일행들이 그녀에게 미안한 맘을 가지기도 했지만 대화가 이어지고 서로의 성격을 확인한 다음엔 주저하거나 거리끼는 것도 없어진 듯했다.

한참 동안의 만찬이 끝나고 계산을 위해 카운터에 도착한 우리를 사장님은 이리저리로 살펴보시면서 의아해하셨다.

누나랑 다니다 보면 얼굴이 알려진 터라 이리저리 살펴보는 것이야 익숙해진 경험이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여러 번 망설이던 사장님은 참고 있던 질문을 던지셨다.

"물어봐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도대체 어떤 모임이셔요? 난 비싼 음식도 시키고 술도 많이 먹으면서 아나운서가 모든 시중을 들기에 굉장히 대단한 분들이 왔나 보다 했는데 몸이 불편하신 분들이 나와서 좀 놀랬어요."

사장님은 현실을 보면서도 아나운서와 장애인들의 매칭은 뭔가 다른 의미가 있지 않고서야 이해하시기 어려운 듯했다.

그녀의 상상 속 별채의 식사 모임은 고관대작들의 은밀한 사교모임 정도로 여겨진 듯했다.

"이 선생님들 정말 대단한 분들이셔요."라고 웃으면서 말하는 누나의 농담 덕분에 사장님의 궁금증은 더욱 증폭되는 것 같았지만 우리는 웃으면서 식당을 벗어났다.

우리가 가진 고정관념이나 편견들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 근거 없이 단단해진다.

연예인이나 유명인들은 일반인과 친구가 되기 힘들고 그 대상이 장애인이라고 하면 그 현실성은 더욱 떨어진다. 봉사나 시혜의 대상으로만 여겨지는 장애인들과의 술자리는 뭔가 굉장히 특별한 사연이 있지 않고서는 이해하거나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그것은 사람들의 착각일 뿐 누나와 나는 그때도 지금도 특별할 것 없는 친한 친구다.

내가 대체로 도움을 많이 받기는 하지만 그것이 장애 때문만은 아니고 때때로 난 그녀의 마음을 위로할 수도 있고 도움을 줄 수도 있다.

의례적 인사를 건네고 비즈니스폰의 연락처를 나누는 연예인들을 만나면서 나조차도 여러 편견들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그것은 전부도 아니고 진짜도 아니다.

우리는 누구나 친구가 될 수 있고 언제 어떤 역할도 나눌 수 있다.

연예인도 유명인도 장애인도 어떠한 다름 들도 다 그렇다.

나의 오랜 친구인 손미나 작가에게 오늘은 글로 안부를 전한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