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승준 Dec 04. 2023

하지 못한 말

©Pexels/ 한 사람을 둘러싼 네 사람이 화를 내고 있다.

교사에겐 교과 지도 외에 생활지도라는 책무가 있긴 하지만 학생들의 바르지 못한 행동을 그때그때 매번 지적하거나 혼내지는 않는다. 내가 그 녀석들보다 인성적으로 월등히 낫다는 자신이 없어서이기도 하지만 “너는 조금 더 성실하게 살아야 해!”, “공부 좀 열심히 해라!”, “성격 좀 고쳐라!”라고 직접적으로 말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지도법이 아니란 것을 알기 때문이다.

기다리는 것이 당장 내뱉는 것보다 절대 쉬운 일은 아니지만 좋은 말로 받아주고 인내하다 보면 아이들은 대체로 옳은 방향을 찾는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본 모든 불편한 상황들이 마음에서까지 깔끔하게 거둬지는 것은 아니어서 어느 순간 툭툭 겉으로 터져 나오기도 한다.

“이렇게 해서 졸업하고 나면 어쩌려고 그러니?”

“학교생활이 그렇게 힘들면 다른 일은 힘들지 않은 게 없어!”

꼰대 같은 소리를 참지 못하고 뿜어내면 내심 후회의 감정이 들지만 그건 참고 있던 내 진심의 소리이기도 하다. 학생들 아닌 다른 이들과의 인간관계에서는 더더욱이 내게 생활지도의 책무 같은 것은 없기 때문에 조금 받아들이기 불편한 태도를 본다고 하더라도 지적하거나 겉으로 표현하지 않는다.

‘저 사람은 왜 저렇게 게으를까?’, ‘예쁜 말을 쓰는 방법을 모르나?’

‘매번 도움만 받고 나눌 줄을 모르네’라고 생각이 들더라도 굳이 내색하지 않는다. 내겐 그들을 교육할 의무 같은 것도 없지만 용기 내 말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좋은 쪽으로 나아질 가능성보다는 관계가 나빠지는 쪽으로 영향받을 가능성이 더 높기 때문이다.

아주 친한 친구라면 때때로 진심담은 충고 정도야 할 수 있겠지만 사회에서 만들어진 수많은 약한 고리들 속에서 대부분 사람들은 그런 과감한 시도는 하지 않는다. 그것은 내가 다른 이들을 대할 때도 그렇지만 나를 스쳐 가는 다른 이들도 나에게 그럴 것이다. 학생들도 그렇고 직장동료도 또 다른 인연들도 그럴 것이다. 칭찬이나 좋은 말만 듣고 사는 것 같지만 그건 다른 이들이 그런 말들만 걸러서 내게 들려주기 때문이다. 단점 하나 없는 완벽한 이가 있을 리 없지만 내가 그럴 일은 더더욱이 없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다른 이들도 나보다 훨씬 더 큰 노력으로 참고 인내하고 감수하고 있을 뿐이다.

얼마 전 작은 다툼을 겪었다. 나 나름으로는 나쁘지 않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상대는 그동안 참고 있던 나의 바르지 못한 행동들을 여과 없이 지적했다. 억울하고 답답함을 해명하려다 나 또한 상대에게 늘 좋은 감정만 느끼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고 내뱉어 버렸다.

지나치게 솔직해져 버린 서로의 대화는 다툼이 될 수밖에 없었다. 미안하다고 말하며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내가 상대에게 잘해준 것이나 그의 잘못을 참아준 것이 다수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매우 잘한 일이라 평가받는다 하더라도 그것들은 내가 잘못한 것을 정당화 시켜주지는 않는다. 난 내가 알지 못하는 사이 누군가를 불편하게 했고 그는 꽤 오랫동안 참고 있었다.

난 조금 더 나은 관계를 만들어 가기 위해 그 지적에 귀를 기울여야만 한다. 내가 그렇게 하고 있듯 나를 둘러싼 모든 이들도 나에게 하고 싶지만, 하지 못한 말들이 너무나 많다. 칭찬 한마디가 들릴 때 그 뒤에 얼마나 많은 원망과 비판이 숨겨져 있을지 모른다. 다툼이 있다면 나에 대한 솔직한 평가에 귀 기울여야 한다.

내 주변엔 나의 생활을 지도할 책무를 가진 선생님은 없다. 다른 이들이 하지 못하고 참고 있는 말들이 튀어나오기 전에  나를 겸손하게 평가해야 한다. 그것이 내 관계를 조금이라도 나아지게 하는 길이다.


작가의 이전글 구겨지니까 셔츠지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