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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승준 Jul 15. 2024

여름캠프

©Pexels/아이들이 드럼을 치고, 노래하고 있다.

교사라는 직업군에 속해 있으면서 자주 하게 되는 실수 중 하나는 학생들을 수업 시간에 만난 경험만으로 평가하게 되는 것이다. 돌려 말했지만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공부 잘하는 녀석은 뭐라도 잘할 것 같다고 생각하고 그렇지 않은 아이들에겐 은연중에 반대의 평가를 내리곤 한다. 똑똑하다는 것이 하나의 기준으로 단정될 수 없다는 것도 알고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는 것도 충분히 체험하고 있으면서도 공부 가르치고 답안 채점하는 게 매일매일 마주하는 일이다 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 편협한 잣대로 아이들을 구분하고 있는 나를 볼 때가 있다.


그나마도 그 기준이라는 것이 내가 가르치는 수학 성적에 한하는 것이라 더더욱이 공정하지도, 정확하지도 않다. 수학 조금 못하더라도 다른 과목은 잘할 수 있고, 수학을 잘한다고 해서 모든 것을 다 잘한다는 보장이 있는 것도 아닌데 수학 성적이 높지 않은 학생이 영어시험 만점을 받은 것을 볼 때엔 '이 녀석에게 그런 재주가 있어?'하며 놀라고 수학 성적 높은 학생의 낮은 국어 성적을 마주할 땐 '무슨 사정이 있었을까?' 하며 반대의 감정을 가진다. 멀리서 찾지 않아도 나 자신도 수학 문제 푸는 재주가 조금 있을 뿐 다른 특별한 재주가 있지도 않으면서 어떤 근거로 그런 본능적 평가를 내리는지 조금만 깊이 생각해도 부끄럽기 그지없다. 


우리 학교 학생들이 매년 여름이면 가게 되는 캠프에서도 고정관념으로 꽉 차 있는 나의 머리에 큰 종소리가 울리는 사건이 생겼다. 전주의 일부만 듣고 노래 제목을 맞추는 게임에서 계속 손을 들고 연이어 맞춰나가는 활약을 하는 아이는 내 머릿속에서 의외라는 평가를 내리기에 충분했다. 그 또한 수학 성적이라는 말도 안 되게 편향된 기준에 근거한 것이긴 했지만 그것을 감안한다고 하더라도 그의 활약은 대단했다.


'딩!'하는 한음 정도가 울릴 때마다 곡의 제목과 부른 가수를 맞추고 정확한 가사로 노래를 부르고 그에 맞는 춤까지 정확히 재현해 갔다. 그 아이는 재주가 있었고 똑똑했고 훌륭했다. 근거 없는 나의 판정은 이번에도 완전히 틀린 것이 증명되었다. 이어진 장기 자랑에서 노래를 기가 막히게 부른 학생도 암벽타기를 멋지게 해낸 아이도 팀 활동에서 친구들을 리드하고 두각을 나타낸 녀석도 나의 기준인 수학 성적의 결과와는 크게 상관관계가 없었다. 그 결과가 당연한 것은 우리는 캠프 활동에서 수학 시험을 보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2박3일의 캠프에서 난 우리 학교 학생들의 각기 다른 재주와 매력들을 진하게 확인했다. 수학 교사가 해도 되는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은 굳이 수학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아도 될 만큼 충분한 다른 장점들을 가지고 있었다. 


난 많은 자리에서 장애 하나만으로 나를 평가하지 말아 달라고 호소한다. 세상은 시력 대결을 하기 위해 만들어진 곳도 아니고 보이고 보이지 않는 차이는 아주 작은 부분의 차이일 뿐이라고 말한다. 난 보이지 않는 눈을 가지고 살아가지만, 충분히 매력적이다.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이 모두 수학 공부를 잘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 또한 각자의 다른 매력들을 품고 살아간다.


난 수학 교사이지만 좀 더 넓은 시야로 다양한 관점에서 제자들의 장점을 바라보아야 한다. 사람을 판단하는 모든 기준은 최대한 다양해야 한다. 2박3일 아닌 아주 긴 캠프를 함께하는 우리 안에서 좀 더 많은 다양성이 펼쳐질 수 있는 기준과 프로그램들이 존재할 때 우리는 지금껏 찾지 못한 더 많은 매력과 함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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