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를 키우는 요즘 우리 부부의 식사 시간은 대부분 분주하다. 한 사람이 밥을 먹고 있을 때 다른 한 사람은 아기를 돌보아야 한다. 숟가락을 움직이는 속도가 빨라지고 여러 가지 반찬을 먹어야 하는 상황은 웬만하면 만들지 않는다.
그 와중에도 밥을 차려내고 식탁을 정리하는 것은 대부분 아내의 몫이 되곤 한다. 오늘 아침엔 햇살이가 자는 덕분에 우리 식사 시간에 모처럼 여유로운 상황이 찾아왔다. 출근 시간도 넉넉히 남아있는 터라 밥을 뜨고 숟가락을 찾아오는 것부터 직접 해 보았다. 반찬을 덜어놓고 식탁을 차리는 주된 과제는 여전히 아내가 하고 있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도와보리라는 마음으로 식사 후 식탁을 닦는 일도 오랜만에 해 보았다.
생각보다 그곳은 꽤 더러웠다. 나름은 깔끔하게 식사하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었는데 나의 착각은 생각보다 현실과의 괴리가 컸다. 숟가락을 내려놓을 때 붙었을 거라 추측되는 밥풀들도 있었고 반찬 찌꺼기도 여기저기 떨어져 있었다. 내가 닦은 자리가 나 아닌 다른 이의 자리였다면 "식사 좀 깨끗하게 하지!" 하며 한마디쯤 할만큼 자리가 더러웠다.
차려진 음식의 종류에 따라 어느 날은 좀 더 깔끔한 뒷자리였을 수도 있지만 오늘의 상황으로 미뤄보건대 내가 음식을 먹은 후 식탁의 상태는 대체로 깔끔과는 거리가 멀었을 것이다. 기억해 보건대 아내는 한 번도 "오빠! 좀 깔끔하게 먹어줄래?"라는 말을 한 적이 없었다.
다음 식사 때, 혹은 다른 일로 식탁에 앉을 때 내 자리가 깨끗했던 것은 더러워진 나의 자리를 큰 지적 없이 치워준 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집에서는 아내가 그랬겠고 학교에서는 급식실 선생님이 그랬을 것이다. 외식이나 회식을 진행한 식당에서는 가게의 점원이 내 자리를 치웠을 것이고 또 다른 자리에서는 내가 기억하지도 못하는 어떤 이가 내가 지나간 자리를 원래의 깨끗한 상태로 돌려주었다. 그들 중 어떤 이도 나의 더러운 식사 습관에 대해 냉철하게 지적하거나 비난하지 않았다.
만약 내가 먼저 어떤 이의 식사 후 자리를 닦으면서 음식을 좀 더 깨끗하게 먹어줄 것을 모질게 지적했다면 그는 그간 나의 흔적들을 들어가며 나의 깔끔하지 못했던 식사 자리를 신랄하게 비판할 것이다.
우리는 생각보다 많은 흔적들을 남기며 살아간다. 꼼꼼하게 완성했다고 자부하는 원고에는 오타가 발견되고 그것은 어떤 이에 의해서 수정되거나 이해받으며 소비된다. 말실수하거나 상대가 원하지 않는 행동을 하지만 지적받는 경우보다는 이해받거나 넘어가 주는 경우가 더 많다.
상대의 말실수를 꼬투리 잡고 다투는 정치인들의 싸움에서 우리는 자신의 행동을 생각하지 않고 지적하는 이들의 결과가 어떤지 자주 확인하곤 한다. 당장 큰 처벌이라도 내려야만 할 것 같이 상대를 지적하던 어떤 의원은 그동안 스스로가 내뱉었던 수많은 언행으로 인해 결국 스스로를 단죄하는 결과를 마주한다.
우리가 오늘 특별한 지적 받지 않고 살아가는 건 매 순간을 완벽하게 살아내었다기보다는 많은 부분 이해 받았기 때문이다. 매번 식사 자리마다 한 톨의 밥풀도 흘리지 않고 먹으려는 완벽주의자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편히 식사하고 이해받고 나도 그의 뒷자리를 이해해 주는 것이 인간적이다.
법도 윤리도 한치의 어김 없이 곧게 살아갈 수 있다면 좋겠지만 사람인지라 때때로 우리는 실수하고 실수하였는지도 모르면서 살아간다. 그중 대부분의 시간을 우리는 누군가에게 이해받고 있다.
오늘 나의 식사 자리가 여유 있고 편안할 수 있었던 것은 아무 말 없이 나의 뒷자리를 정리해 주는 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나의 삶에서 큰 다툼이나 어려움이 없다면 생각보다 많은 시간 많은 이들이 나의 실수를 이해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