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승준/공원에서 함께 웃고 있는 아빠와 햇살이
시각장애인 아빠가 아들을 키운다고 하니 사람들은 알려주고 싶은 게 많은 것 같다. 이 시기에는 무엇을 꼭 해야 하고, 아기를 안을 때엔 이런저런 주의를 명심해야 하고, 그 장난감과 유아용품은 꼭 사야 한다고들 말한다. 아빠 역할은 처음인 내게 그런 조언들은 실제로 큰 도움이 되기도 했다. 인터넷이나 책에 있는 정보보다 즉각적이기도 했고 신뢰감이 들기도 했다. 감사함을 표하는 내게 사람들은 더 큰 도움을 주고 싶어 했다.
역시나 “이 시기에는 이것을 꼭 해야 하고…”로 출발해서 뭔가를 “사야만 한다”는 것으로 이어지는 조언은 내 시각장애와 연결되면서 상상력을 동원한 충고로 이어지곤 한다. “누워있는 아기를 밟을 수도 있으니…”, “표정을 볼 수 없어서 아이의 상황을 알 수 없으니…”, “기저귀의 상태를 파악할 수 없으니…”로 이어지는 충고는 보이지 않는 눈으로는 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각자 나름의 염려이지만 실제로 그런 일들은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난 내 아들을 밟고 지나갈 만큼 조심성 없거나 둔하지도 않지만, 그 이전에 우리 부부는 아이를 거실 바닥 같은 아무 곳에나 아기를 눕혀놓지 않는다. 표정을 볼 수 없어서 불편하긴 하지만 아기들은 표정 말고도 다른 표현 방법을 충분히 가지고 있다. 기저귀가 젖었다는 표시를 내가 볼 수는 없지만 살짝 집어보거나 냄새를 맡는 것으로도 갈아야 할 기저귀를 파악하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다.
초보 아빠에게 육아 경험 풍부한 선배들의 조언은 대체로 큰 감사로 다가오지만 장애를 가진 아빠라서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을 것이라든가 특별히 더 위험할 것이라든가 상황 파악이 안 될 것이라는 충고는 내게 별다른 도움의 역할을 하지 못한다. 많은 사람의 염려대로 햇살이가 처음 태어났을 땐 나 또한 불안하고 무섭고 조심스러워서 거의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 젖병을 물리는 것도 아이를 안아주는 것도 제대로 하는 것인지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잘 해내지 못하는 나의 역할들은 아내에게 부담으로 전달되었고 난 늘 미안했다. 그렇지만 내 장애가 그렇듯 이제 난 엊그제 처음 아빠가 된 사람이 아니다. 난 누구보다 내 아들을 사랑하고 아내를 소중히 여기고 가정이 화목하기를 바란다. 언제까지나 무기력한 아빠이고 싶지 않았고 분주한 아내 옆에서 한가롭게 누워있고 싶지도 않았다. 여전히 부족한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젠 제법 아빠로서 할 수 있는 역할들을 여러 가지 찾았다.
분유를 먹이고 잠을 재워줄 수도 있고, 기저귀를 갈고 목욕을 시킬 수도 있다. 햇살이를 웃게해주는 방법도 몇 가지 마련했고 장난감과 육아용품의 사용법도 익혔다. 아내의 빠른 손놀림에 비한다면 아직 내 역할은 미미할 수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걱정하듯 장애가 있기 때문에 아무 일도 못하거나 매 순간 걱정거리인 존재는 아니다.
장애 있는 내 삶을 뭐라도 도와줘야만 된다고 느끼던 사람들처럼 요즘 내 주위엔 보이지 않는 아빠인 내겐 자신의 충고가 절실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열이 많은 내가 반팔이라도 입고 나가면 시각장애인이라서 주변 사람들의 옷차림을 보지 못해서라고 여기던 사람들은 내가 안고 있는 햇살이의 옷차림도 내 눈과 결부시켜 “더 따뜻하게” 혹은 “더 시원하게”를 주장한다.
아이와 놀 때도 목욕을 시킬 때도 기저귀를 갈 때도 사람들의 상상 속엔 끔찍하고 위험한 장면들이 마구 떠오르곤 하는 것 같다. 다시 말하건대 난 엊그제 아빠가 되지 않았고 햇살이를 누구보다 사랑한다. 나 나름으로는 최선을 다해서 해 줄 수 있는 것들을 찾아내고 연습하고 최고 수준의 조심성을 장착한다. 보이지 않는 눈으로도 잘 다니고 일하고 살고 있는 것처럼 시각장애 있는 아빠이지만 나도 많이 연구하고 많이 사랑하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
장애는 불편한 특성이 많지만, 장애 가진 대부분은 그 상황에 맞는 적응을 해낸다. 잘 모르는 사람들이 장애 있는 이들에게 보내는 조언은 잘 적응해서 살아가고 있는 현실의 장애인들에겐 과도한 걱정일 때가 많다. 어른이 된 제자들에게 더 이상 공부는 잘하고 있는지, 엄마 말씀은 잘 듣는지 굳이 질문하지 않는다. 9개월 아기를 키우고 있는 내게도 더 이상 아이를 밟고 다니지는 않는지, 배고픈 것을 알 수는 있는지, 기저귀를 잘 갈 수는 있는지 정도의 걱정은 거두어 주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