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다 보면 종종 다툼의 상황들이 발생한다. 대부분은 양방 모두 잘못의 비율을 나누고 있는 경우이지만 때로는 일방적인 괴롭힘의 경우도 있다. 전에 비하면 요즘 교사는 그런 상황에서 지극히 제한된 역할을 부여받게 되지만 그런데도 교사는 일차 중재자의 역할을 맡게 된다.
특별히 큰 일이 아니라면 화해를 유도하고 원만한 관계를 회복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지만 가해 학생과 피해 학생의 태도나 그 일의 경중에 따라서는 그것만이 답이 아닐 때도 있다. 일방적이고 의도적으로 잘못을 저지른 학생이라 하더라도 지속적으로 용서를 구하고 반성의 노력을 보이는 경우라면 한 번의 잘못으로 그에게 낙인이 찍히지 않도록 살펴본다. 전적으로 피해를 본 녀석이라도 그 손해에 비해 과도한 조치를 요구하거나 상대에 대해 복수를 시도하는 경우라면 교사 관점에서 편을 들어주기가 힘들다.
반대로 지속적이고 적극적으로 사과의 태도를 보이는 가해 학생이라 하더라도 그가 저지른 행위가 극단적으로 비윤리적이고 피해 학생에게 심각한 상처로 남게 될 일이라고 판단된다면 가해 학생의 반성 태도와는 무관하게 일반적인 화해를 주선할 수는 없다. 어떤 이들이 보기에 중재자로서 교사의 태도는 사안에 따라 일관되지 못하게 보일 수 있지만 정확히 일치하지 않는 사건이라면 상황에 맞게 유연한 판단과 조치를 내려야만 하는 것이 교사의 역할이기도 하다.
또래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보통의 다툼이라면 원만한 사과와 용서가 교사의 지향점이 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학생들의 일이라고 하더라도 그 심각성과 관련한 아이들의 태도는 교사로 하여금 다른 태도와 역할을 부여한다.
그런 의미에서 다툼의 상황에서 중재자가 갖추어야 할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역할은 사안에 대한 정확한 이해이다. 무조건 용서하라는 것도 폭력이 될 수 있지만 합당한 처벌과 충분한 반성을 거친 아이에게 끝없는 대가를 요구하는 것도 옳지 않을 때가 있다. 무엇보다 조심해야 하는 것은 이전에 나 스스로 가지고 있던 학생과의 친분이나 선입견이 사안의 처리에 편중되게 작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유명 배우의 수십 년 전 범죄 경력이 드러나면서 언론과 사람들 사이에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소년 시절에 이미 충분히 처벌받은 행위에 대해 여론재판을 하는 것은 과하다는 지적이 있는가 하면 피해자에 대한 사과 없이 공인으로서 활동하는 것은 2차 가해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그가 행한 최근의 선행들을 언급하며 오래전 일 때문에 현재의 삶까지 단죄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하기도 하고 그의 범죄는 죄질이 좋지 않으므로 어떠한 처벌도 충분치 않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양쪽의 주장 모두 그 진술의 논리만으로는 충분히 타당하다. 그러나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은 정확한 진실이다. 오래전 그가 저지른 범죄행위에 대해서 그가 말하는 것과 기사에서 언급된 사실은 그 크기도 내용도 다르다. 30년 넘는 이후의 세월에 어떤 이가 아는 것처럼 그가 자신의 과거를 은폐하려 했는지 피해자에게 지속적인 사과의 노력을 하였는지도 명확하게 알려진 바 없다. 그가 저지른 일탈의 내용을 정확히 알게 되거나 그 일이 있고 난 뒤 지금까지 그의 행적과 마음가짐을 정확히 알게 된다면 갑을 주장하는 이도 을을 주장하는 이도 정반대의 의견으로 돌아설 수 있다.
우리가 목에 핏대 세워가며 그를 편들거나 비판하는 것은 사건의 정확한 경위를 알고 난 후에 해야 할 일이다. 그와 그의 삶을 판단하는 기준이 그에 대한 나의 호감이나 그가 지향하는 정치 성향 혹은 정확하지 않은 전해 들은 이야기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작은 일탈을 저질렀을 수도 있고 그 행위에 합당한 처벌과 반성을 지나왔을 수 있다. 반대로 그는 어떠한 방법으로도 씻을 수 없는 비인간적 범죄를 저지른 인간이므로 공인으로서는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자격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 우리가 그에게 공인의 책임을 부여하듯 우리가 그를 판단하는 잣대도 객관적이고 진실한 사실에 근거해야 한다. 유사한 사례를 들어가며 각자의 의견을 개진하는 이들도 있지만 그것은 우리가 느끼기에 비슷할 뿐 조금만 달라져도 우리의 판단은 전혀 다를 수 있는 별개의 사건일 가능성이 높다.
사람들은 단편적으로 보이는 나의 장애를 자신의 추측으로 판단하고 결론 내리고 평가하곤 한다. 사람들의 생각은 스스로 생각하기에 논리적이기도 하고 따뜻하기도 하지만 내 장애의 실제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경우가 많다. 내가 가진 특성은 다른 이들의 그것과 비슷해 보일 수도 있지만 작은 사실 하나 두 개만으로도 완전히 다른 현실을 만들어 낸다.
학생들의 작은 다툼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때마다 모두 다른 이유와 상황이 존재한다. 교사는 쉽게 판단하기 이전에 면밀히 살펴야 한다. 누군가의 삶을 평가하고 단정 지으려면 먼저 정확한 사실이 무엇인지부터 알아봤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