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 수 없는 것들에 대하여!

by 안승준

수학 시험이 끝날 때 학생들에게서 많이 듣는 소리 중 하나는 "시간이 너무 모자랐어요."이다.


"두 문제나 못 풀었어요.", "세 문제는 보지도 못했어요."라고 말하는 아이도 있지만 심한 경우엔 "5번까지밖에 못 풀었어요."하는 경우도 있다. 넓디넓어 보이는 답안지 속에 달랑 다섯 개만 적혀있는 횅한 답안지를 채점하다 보면 교사 된 입장에서도 아쉽고 안타깝다.


5번까지만 풀어낸 녀석은 나머지 문제의 풀이 방법을 전혀 모를 수도 있었지만, 대체로는 그랬을 가능성보다 5번을 붙잡고 씨름하느라 다른 문제들은 시도도 해 보지 못했을 확률이 더 높다. 시험문제의 난도라는 것이 문항의 번호와 동일하게 오름차순으로 올라가는 것은 아니므로 그가 보지도 못한 나머지 문항 중엔 너무도 쉽게 답을 구할 수 있는 것들도 있었을 것이다. 어떤 문제는 난도와 상관없이 그에겐 풀어본 적 있는 익숙한 것이었을 수도 있다.


5번의 문제를 어떻게든 풀어보려는 그의 의지는 기특하지만, 50분의 시험시간 중 아주 작은 시간의 투자만으로도 그는 오늘 시험시간 안에 그 문제를 풀기는 어렵다는 사실을 인지할 수 있었다. 시간의 흐름을 전혀 느끼지 못할 만큼 멘탈이 붕괴되는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분명 그랬을 것이다.


그가 5번 대신 6번이나 7번을 푸는 시도를 했더라면 좀 더 높은 점수와 나은 기분을 얻을 수 있었겠지만, 시험문제를 출제하고 답안을 채점하다 보면 그와 같은 결과를 제출하는 경우는 생각보다 많다.


보이지 않는 눈으로 살다 보면 현시점에서는 자신의 힘만으로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을 마주하곤 한다. 운전하는 것도 그렇고 아름다운 경치를 보는 것도 그렇지만 예쁜 케이크를 품위 있게 떠먹는 일처럼 간단한 일도 내겐 당장엔 해결할 수 없는 난제가 된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문제의 해결만을 붙잡고 인생을 허비할 수는 없다. 운전을 할 수 없는 대신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하고 경치를 직접 볼 수 없는 대신 주변의 설명이나 책의 도움을 받으면 된다. 그런 방법들이 나의 운전 하고 싶은 마음이나 보고 싶은 욕구를 깔끔하게 해결해 주는 것은 아니지만 볼 수 없는 내 눈을 탓하고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는 낫다.


설령 내가 할 수 없는 어떤 것이 대체 수단조차 없다면 그런 것은 그냥 할 수 없는 것으로 포기하는 것도 괜찮다. 어떤 도구와 연습이 동반되더라도 케이크를 품위 있게 떠먹을 수 없다면 그건 먹지 않는 쪽을 택해도 된다. 정말 다행히도 그 음식이 아니더라도 내가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것들은 셀 수 없이 많기 때문이다.


살다 보면 어떤 것들은 돈이 부족해서… 어떤 것들은 시간을 놓쳐서… 어떤 것들은 연이 닿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있지만 그런 것들을 단호하게 포기하는 것이 꾸역꾸역해 내려고 하는 노력보다 나을 때가 많다.


5번 문제는 오늘 당장 풀어내지 못할 수 있지만 수많은 나머지 문제 중 내가 잘 풀어낼 수 있는 문제는 존재할 가능성이 높다. 시험장에서 그에게 필요했던 건 할 수 없는 것에 집착하는 대신 할 수 없는 것을 포기하는 결단이었다. 눈이 아니면 안 되는 문제들은 세상엔 여전히 셀 수 없을 만큼 많지만 내가 그럭저럭 하루하루 잘 살아내고 있는 것은 적지 않은 것들을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담담히 인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험문제의 목표는 누구에게나 백 점일 필요는 없다. 내가 보여줄 수 있는 최선의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은 할 수 없는 것을 빠르게 덜어내는 것에서 출발한다. 모든 일을 잘하는 사람은 없지만 모든 일을 잘 하지 않아도 꽤 잘 살 수 있으므로 모든 일을 잘하려고 억지의 노력을 할 필요는 없다. 내가 시력이 없어도 크게 불편하지 않은 것은 남들보다 더 멀리 보거나 더 작은 것을 보지 못해도 괜찮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은 볼 수 없는 눈 때문에 정류장에 서 있던 버스를 놓쳤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난 그 버스를 되돌아오게 할 수도 없고 빠르게 달려서 그 버스를 따라잡을 수도 없다. 내가 해야 하는 것은 다음 버스는 잘 탈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다. 그곳에서 반가운 이를 만날 수도 있고 또 다른 좋은 일을 마주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고 출근만 늦어진다 하더라도 괜찮아야 한다. 떠난 버스를 놓쳐버린 눈을 원망하고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붙들고 있는 것보다는 낫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다고 여겨진다면 잘 해낼 수 있는 다른 문제가 있는지 얼른 살펴보자! 때때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빠른 포기와 인정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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