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픔의 미학

by 안승준

아기를 키우다 보면 뜻하지 않게 끼니를 거르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매번 그런 것은 아니지만 밥을 먹이고 옆에서 놀아주고 기저귀를 갈아주고 낮잠을 재우고 하다 보면 하루 한 끼 정도는 애매해진 시간 덕분에 건너뛰는 쪽을 택하곤 한다. 억지로 챙겨 먹으려고 한다면 못 먹을 상황까지겠냐마는 어떤 면에서는 내가 밥 보다 아들과 살 비비며 노는 쪽을 택한다고 말하는 것이 더 맞을 수도 있겠다.


오늘도 아침은 거르고 이른 오후 첫 끼니를 먹는 것을 선택했는데 평소와 다르게 유난히 배가 고팠다. 특별히 더 많이 움직인 것도 아니고 전날 저녁을 거른 것도 아닌데 이따금 심하게 배가 고픈 그런 날이었다.


매일 먹는 밥인데 밥알 한 알 한 알에서 단맛이 느껴졌다. 탱글탱글 씹히는 느낌도 좋고 젓가락에 잡히는 모든 반찬에서 재료 하나하나의 고유한 맛과 향기가 전해져 온다. 음식 자체가 맛있기도 했겠지만, 전에 먹었을 때와는 사뭇 다른 감격이 몸 안으로 스며왔다.


극도로 배고픈 나의 몸은 되도록 많은 에너지가 필요했고, 그것은 나의 감각기관을 최대한 예민하게 만들었다. 쌀의 단맛도 나물의 향기로움도 돼지고기의 고소함도 더 이상 맛있는 것을 찾기 힘들 정도로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배부른 상태는 배고픈 상태에 비해 당연히 나은 상태라고들 말하겠지만 음식을 깊고 맛있게 먹을 수 있다는 면에서는 꼭 그렇지도 않다. 배가 부르다면 오늘처럼 극단의 향과 맛을 경험할 수도 없겠지만 당연하게도 배고픈 상태일 때보다 많이 먹을 수도 없다.


많이 가지는 것이 가지지 못한 것에 비해 늘 낫다고들 하겠지만 하나도 가지지 못한 이에게 주어진 작은 한 조각은 넘치도록 가진 이는 경험하지 못한 소중함으로 다가온다. 백 벌의 옷을 가진 이를 만족시킬 새로운 옷을 고르는 것은 힘든 일이지만 한 벌도 제대로 가지지 못한 이에게 주어지는 단 한 벌의 옷은 최대한의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때로는 부족함이 넘침보다 낫다.


요즘 일론 머스크의 새로운 기술 발표로 인해 시각장애인들이 다시 볼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는 희망 섞인 대화를 나누곤 한다. 나 또한 만일이라는 가정하에 볼 수 있게 된다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하게 된다.


난 지금 볼 수 없는 눈을 가지고 살지만, 그 상태로도 충분히 행복하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시력을 회복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다. 여러 번 이야기했지만 볼 수 있게 된다면 내가 가진 어떤 것을 바쳐서라도 그것을 얻어내려고 할 것이다. 극도로 배가 고픈 상태의 음식에 대한 욕구가 그러했듯 보이지 않는 나의 시력에 대한 갈급함은 말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간절하다.


본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가장 잘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보이지 않게 되었다가 다시 볼 수 있게 된 사람일 것이다. 아름다운 일출이나 우주 한 가운데의 은하수가 아니더라도 난 존재하는 것의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온 마음을 담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어디에나 달린 작은 등불의 희미함도 길거리 간판 위의 누런 먼지도 내가 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알려주기에 충분한 가치를 가질 것이다.


배고픈 것은 배부른 것에 비해 항상 나쁘지는 않다. 가지지 못한 것이 가진 것에 비해 나을 때도 있다. 보이지 않음이 본다는 것에 대한 가장 큰 가치를 알게 해준 것처럼 가지지 못하고 할 수 없는 것이 잘 알지 못했던 또 다른 가치를 알게 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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