퉁칩시다!

by 안승준

올바른 장애인식은 무엇이고 시각장애인을 만났을 땐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지 나름으로 열심히 연구하고 글 쓰고 말하고 다니지만, 새로운 장소에서 만나는 많은 이들에게서는 여전히 불편한 경험을 하곤 한다. 무작정 잡아끌고, 다 들리는 소리로 속닥거리고, 듣기 거북한 소리를 하는 것도 다반사이고 심지어는 정중히 초대된 회의 자리에서 적절한 자료가 제공되지 않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열심히도 달려왔다고 생각하는데 한 해를 돌아보다 보면 기운 빠지는 기억투성이이다. 알리고 또 알려도 다름에 대해 바르게 이해하는 세상을 만드는 것은 참으로 지난하고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반대로 생각하면 장애에 대해서 잘 모르는 분들로 인해 덕 본 것도 적지 않다. 보이지 않는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빙빙 돌아서 내지 않아도 될 추가 요금을 징수한 택시 기사님도 있었지만, 힘내라고 고집스럽게 요금을 깎아주신 기사님도 계셨다. 편의 지원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불편한 공간을 경험하기도 했지만, 놀이공원에서 우선 탑승을 시켜준 덕분에 조카들에게 영웅이 되기도 했다.


장애가 있어서로 시작되는 폄하 발언을 잔뜩 듣기도 했지만, 장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로 시작되는 과분한 칭찬을 누리기도 했다. 작은 도움을 청하기 위해 비싼 음식을 대접했지만, 각종 할인 혜택의 수혜자이기도 했다. 지나고 보면 기억 속엔 불편한 일들만 잔뜩 남아있지만, 가만히 생각하면 과하게 대접받은 일도 그만큼 많았다.


그런 의미에서 올 한 해 있었던 좋은 일과 나쁜 일을 모두 퉁치기로 한다. 얻은 것이 많았었는지 잃은 것이 많았었는지 세어보고 자세히 비교할 수는 없지만 좋지 않은 일을 오랫동안 기억해서 좋을 것도 없다. 새롭게 시작하는 한 해도 열심히 달리려면 훌훌 털어내고 새 마음을 가지는 것이 낫다.


올 한 해도 "장애는 작은 다름일 뿐입니다."로 시작하는 말들을 쓰고 말하면서 살겠지만, 또다시 상처받고 실망하고 기운 빠지는 일을 마주할 것이다. 그렇지만 분명 나의 움직임으로 인해 보이지 않게 변하는 면도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일단 퉁치고 또 움직인다.


'때린 사람은 기억 못 하고 맞은 사람만 기억한다.'는 말도 있듯이 장애와 관련해서는 내게 씁쓸한 기억들이 잔뜩이지만, 또 다른 면에서 난 다른 이들에게 상처 주고 실망하게 하고 손해를 끼치며 살았을 것이다. 사과할 일도 사과받을 일도 많으니 일단 퉁치자고 말해 본다.


아내에게도 잘못한 일이 많지만 나도 살짝 속상했던 일이 있으니 지나간 일은 모두 퉁치고 새로 잘해보자고 말해본다. 나를 아는 모든 이들에게 주고 받은 모든 것을 멋지게 퉁치고 새해엔 아무 일도 없었던 듯 또 잘 해보자고 말해 보는 명절이다.


장애인식이 바뀌는 것은 열심히 말하고 냉철하게 지적하는 것도 필요할 때가 있지만 모른 척 이해하고 넘어가는 것이 필요할 때도 있다. 서로 서툴러도 내일의 관계를 위해 오늘은 덮어두는 용기도 필요하다. 한 해를 보내는 지금 잘한 것도 아쉬운 것도 일단 한꺼번에 큰마음으로 마침표를 찍고 묻어두자!


케케묵은 일들 꿍하게 기억해 두었다가 다 늦은 어느 날 끄집어내는 것만큼 치사한 것도 없다. 올 한 해 모든 일들은 지나간 날들에 보내고 우리 모두 새롭게 잘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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