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연주회에서 새롭게 보이는 무대

by 안승준

학년이 마무리되어 가는 때쯤 우리 학교에서는 매년 작은 연주회가 열린다. 음악에 관심이 있거나 소질이 있는 학생들이 많은 터라 방과 후 수업 중 음악 관련된 과목이 많은 편인데 1년 동안 갈고닦은 실력을 선생님들과 부모님들 앞에서 뽐내는 시간이다.


이제 겨우 동요 정도를 뚱땅거리면서 치는 녀석들도 있지만 내일 당장 음대에 들어가도 손색없는 상당한 실력자들도 있다. 처음 학교에 입사했을 때엔 상상을 초월하는 훌륭한 연주에 감탄사를 내뱉느라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었다.


'정말 음악적 재능이 뛰어나네!'

'저렇게 하려면 하루에 몇 시간씩 연습해야 하는 걸까?'


웬만한 콘서트 부럽지 않은 무대를 만들어 가는 제자들이 기특하기도 했지만 그 실력이 꽤나 부럽기도 했다. 재능과 노력과 실력 사이의 상관관계에 대해 생각했고 성공이라는 잣대에 나의 삶을 비추어 보기도 했다.


그때 그 아이들이 음대에 가고 진짜 프로페셔널 연주자가 된 요즘도 같은 시기 같은 장소에서는 또 다른 아이들이 무대를 채우고 있다. 나 역시 같은 객석에서 비슷한 자세로 새로운 아이들의 실력을 감상하고 있는데 나이가 조금 더 들어서인지 주목하게 되는 연주자의 부류는 조금 많이 변했다.


손가락이 도대체 몇 개인지 궁금할 정도의 화려한 피아노 연주도 가슴이 웅장해지는 첼로 연주도 당연히 좋지만 그보다 더 관심이 가는 쪽은 연주를 다 틀리고도 큰 소리로 웃고 내려오는 아이들이다.


"많이 틀릴 줄 알았어요. 열심히 했는데 그 부분은 해도 해도 안 되더라고요. 내년엔 더 잘할 수 있겠죠 뭐! ㅎㅎ"


솔직히 말하면 1년이 지나도 2년이 지나도 그렇게 말하는 녀석의 실력이 얼마나 나아질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나의 판단으로는 물음표 투성이다. 그렇지만 분명한 건 그는 또 '하하' 웃으면서 여유 있게 말할 것이다.


"최선을 다했으면 됐죠. ㅎㅎ 잘 안 되네요. ㅎㅎ"


귀를 의심할 정도의 화려한 연주를 뽐내면서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한 번의 실수로 불안해하는 다른 아이들과 대조된 여유 가득한 아이를 보면서 행복한 삶에 관해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되었다.


많이 가진 것도 많이 배운 것도 대단한 능력을 가진 것도 행복의 보증수표가 되지는 않는다. 뉴스를 보다 보면 우리가 동경하던 가진이들 똑똑한 이들, 잘난이들의 슬픈 소식을 종종 듣는다. 그런 사람들이 과연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내세울 것 하나 없지만 싸구려 과자에 소주 한 잔 기울이면서도 세상 다 가진 듯 껄껄 웃는 어르신의 삶보다 의 일상이 낫다고 말할 수 있을까?


우리가 가진 이런저런 목표는 따지고 보면 결국은 행복하기 위해서 세워져야만 한다. 행복하기 위해서 시작한 일이 결국 행복을 가로막는 역할만을 한다면 뭔가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내가 장애인이지만 나름의 행복을 자랑하며 살 수 있는 것은 좋은 시력을 가지는 것이 인간의 궁극적 목표가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장애를 불행이라 여기고 시력 가진 이들을 부러워하며 어떻게든 시력을 회복하는 일에만 인생을 쏟아붓는다면 나의 일생은 통째로 의미 없는 목표를 쫓는 허망함으로 끝날 수 있다.


만약 어느 날 갑자기 보게 된다 하더라도 그 사실이 남은 인생 전체의 행복을 보증하지 못한다는 것을 다른 시력 좋은 이들의 삶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내가 집중해야 하는 것은 장애 없는 삶을 쫓는 것보다는 시력에 장애가 있는 상태에서도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훌륭한 연주를 하는 연주자도 좋지만 그보다는 연주 실력은 부족하더라도 연주가 행복한 사람이 더 낫다. 우리의 궁극적 목표는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 항상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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