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가 시험문제를 출제할 때는 문항 출제의 근거가 되는 서류를 함께 만들어야 한다. 이원목적 분류표라고도 부르고 문항 정보표라고도 하는 그 서류엔 각 문항의 난이도와 출제 목적, 배점, 성취 기준 등을 자세히 서술한다.
그리고 서술형 문항에는 또 하나의 중요한 추가 항목을 적어야 하는데 그건 바로 유사 답안이다. 어느 문항의 정답이 '대한민국'이라고 할 때 '한국'이나 'KOREA'를 적은 학생의 답안도 정답으로 인정해 주기 위해서는 유사 답안 항목에 그 단어가 포함되어 있어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객관적으로 옳은 답을 적은 학생의 답안이 억울하게 오답으로 분류되지 않게 하려고 교사는 최대한 자세하게 유사 답안의 가능성을 예측해야 한다.
때때로 같은 의미를 가진 서로 다른 단어라고 하더라도 '한국'이나 'KOREA'는 정답이 아니라고 규정되기도 하는데 그것을 우리는 출제자의 의도라고 부른다. 수학에서도 '0.5'는 맞는 답이고 '1/2'는 틀렸다고 할 때가 있는데 그 또한 소수 형태의 표현이 출제자가 설정한 문항 출제의 목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의 경우엔 '1/2을 소수로 바꾸시오.'처럼 특별한 목적이 있는 문항이 아니라면 '0.5'이든 '1/2'이든지 심지어 '하나를 두 개로 나눈 것'이라고 답하더라도 맞았다고 해 주는 편인데 그런 마음을 가지게 된 이유는 학생이 시험을 보는 목적은 답을 맞추는 것보다 개념을 이해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라는 쪽에 생각의 무게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철학이 현실로 옮겨지기 위해서는 유사 답안 칸을 최대한 많은 글자로 채워야만 한다.
지극히 내 개인적인 의견이긴 하지만 다양한 답이 정답으로 인정되는 경험을 학생들에게 주는 것이 아이들의 생각의 폭을 넓히고 자신감을 길러주는 계기가 된다는 것이 나의 주장이다. 장애가 있는 제자 중엔 세상을 잘 사는 것은 무의식적으로 장애 없는 사람들처럼 사는 것이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아이들의 생각 속에 삶의 유사 정답의 범위는 너무 작거나 존재하지 않는다.
이번 주에 발매된 최신 아이돌의 춤을 따라 하고 SNS에 올라온 번화가의 맛집 인증사진을 올리는 것이 또래 아이들의 문화를 공유하는 한 가지 방법일 수 있으나 그것만이 유일하게 인정되는 고등학생들의 여가 시간의 정답일 수는 없다. 공부를 잘하고 좋은 대학에 가고 번듯한 직장을 얻는 것이 꽤 괜찮은 답안일 수 있으나 잘 산다는 것을 보증하는 유일한 정답일 수는 없다.
아빠들이 아기와 눈을 맞추면서 커다란 운동장에서 공을 차고 놀아주는 것은 매우 보기 좋은 모습일 수 있지만 보이지 않는 내가 소리 나는 공으로 좁은 방에서 아들과 공놀이하는 것이 오답은 아니다. 난 조금 다른 방법으로 놀아줄 수 있고 때로는 다른 이의 도움을 받아 아들의 공놀이를 도울 수 있지만 그 모든 것은 훌륭한 유사 정답으로 인정되어야 한다. 다른 수학 교사들이 빼곡하게 칠판을 채워가며 판서를 하는 것이 학생들의 이해를 돕는 좋은 방법일 수 있지만 말로 수식을 설명하고 손으로 그래프를 알려주는 내 방법은 오답이 되어서는 안 된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아주 작은 범위의 답만을 정답으로 추종하고 그 안에 들지 못한 이들의 답을 오답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 많은 사람은 지팡이 짚은 나의 걸음걸이나 초점이 분명하지 않은 내 눈빛으로 내 삶을 정답에서 멀어졌다고 단정 지었지만 난 내가 적어 가는 매일의 시간에서 부단히 유사 정답을 찾아내고 있다.
많은 이들이 여전히 내가 걷는 길을 정답으로 인정해 주지 않지만, 그것은 내 답이 틀렸다기보다는 출제자의 의도에 문제가 있었다고 보는 것이 옳다. 많은 사람이 목적하는 삶의 모양과 내가 사는 모습이 다소 거리가 있을 수는 있지만 내가 틀리지 않았다고 자부할 수 있는 것은 하루하루의 내 삶은 충분히 행복하기 때문이다.
삶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누군가가 정해놓은 정답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나만의 유사 정답을 자신 있게 만들어 가는 것이다. 생각보다 세상은 다양한 유사 정답을 허용하지 않지만, 그것이 꼭 우리가 틀린 것은 아닐 수 있다. '대한민국'이라고 불러야 할 때도 있지만 '한국'이라고 부를 수도 있고 'KOREA'라고 말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