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수는 시간에 정비례하지 않는다.

by 안승준

어릴 적에 야구 경기를 볼 땐 초반에 선취점을 내고 이기고 있으면 경기에 다 이긴 듯이 흥분했다. 3회 정도가 지났을 때 3:0으로 이기고 있으면 9회가 끝나면 곱하기 3을 해서 9:0으로 끝나리라는 기대 섞인 계산을 하곤 했다. 그렇지만 당연하게도 그렇게 끝나는 경기는 거의 없었다.


선취점을 낸 날은 그렇지 않은 날에 비해 조금 더 이길 확률이 높긴 했지만 그렇다고 남은 6번의 공격 기회에서 처음 세 번의 공격 때의 두 배만큼의 점수를 내는 것이 보증되지는 않았다. 몇 점 더 내는 경우도 있고 그보다 더 많은 점수를 얻어낼 때도 있었지만 한 점도 더 못 내고 오히려 더 많은 점수를 빼앗기고 역전패를 당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응원하는 팀이 진 날엔 져서 속상하고 기대만큼의 점수 차이를 못 낸 날은 또 점수가 부족해서 아쉬웠지만 비슷비슷한 실력을 갖춘 프로 야구팀 간의 경기에서 그런 기댓값을 결괏값으로 받아 든다는 것은 애초부터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3회까지의 결과가 경기 전체의 승패를 예측할 수 있는 축소판이라면 9회까지 경기를 할 필요도 없었다. 크게 이기고 있다가도 질 수 있고 반대로 크게 지다가 한순간에 이길 수도 있는 것이 야구라는 것은 꽤 여러 번의 시즌을 경험하고 난 뒤였지만 이기고 있는 경기에서는 다 이긴 것 같고 지고 있는 경기에서는 시작부터 맥이 빠지는 것은 훨씬 더 많은 경기를 본 지금도 종종 느끼는 감정임을 부인할 수 없다.


겨우내 오랜 담금질을 마치고 새로운 시즌을 개막한 프로야구 경기에서 우리 팀 이글스는 시원하게 선취점을 뽑아냈다. 한 점을 더 내고 또 한 점을 더 내고 경기의 절반 정도가 흘렀을 때 내 속에선 또다시 섣부른 들뜬 감정이 올라왔다. 그렇지만 한 순간에 5점을 빼앗기고 경기가 뒤집혔을 땐 반대로 땅이 꺼지는 것 같은 실망감이 몰려왔다.


'그러면 그렇지 이글스가 한 해 잘했다고 너무 기대가 컸지!'하는 순간 경기는 다시 동점이 되고 연장전에 돌입했다. 마지막 이닝에서 다시 두 점을 빼앗기는 절망을 다시 경험해야 하긴 했지만 짜릿한 끝내기는 개막전 승리라는 축포를 쏘게 해 주었다.


흔히들 야구는 인생의 축소판이라고 이야기하곤 한다. 다 끝난 것 같은 경기를 멋지게 뒤집고 이길 때 중계 캐스터는 "드라마가 따로 없네요. 각본 없는 드라마입니다."라고 목청껏 소리를 지르지만, 드라마라는 것도 우리 사는 모습을 모티브로 한다는 점에서 그건 우리 삶의 한 장면이고 우리가 추구하는 바람이다.


아직 그리 오래 살아보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살다 보니 어릴 적 삶이 조금 더 나이 먹은 청년의 삶을 예측하지 못하고 청년의 모습이 중년을 선명하게 비추지는 못한다. 공부 조금 잘하고 남들보다 성실하게 사는 어린이가 프로야구 경기에서 선취점 낸 어떤 팀처럼 조금 나은 기대를 할 수는 있겠으나 초반 3:0의 점수가 정비례하여 9:0이 되지 않듯 우리는 숱하게 뒤집히고 뒤집으면서 다음 이닝을 살아간다.


어릴 적 떡잎이 모든 인생의 축소판이라면 아등바등 열심히 살 필요는 없다. 내겐 세상 다 가진 듯 거만하게 살던 어린 시절도 있었지만 하늘이 무너진 듯 좌절하던 실명의 순간도 있었다. 나름의 행복 누리며 살아가는 지금이 있기까지 내 삶도 셀 수 없는 역전의 순간들이 있었다. 다 끝난 것 같았지만 그렇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는 것을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글스가 첫 경기에 어렵게 이길 수 있었던 것도 선수들이 끝날 때까지 마음의 끝을 선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야구의 스코어는 시간에 정비례하지 않는다. 우리의 삶은 야구 경기를 많이도 닮아있다. 큰 역전이 필요한 이들에게 새로운 시즌의 야구 경기 관람을 권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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