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학연수가 필요한 때

by 안승준

유학이나 이민을 가기 위해서는 일정 시간의 어학연수 과정이 필요하다. 그 나라의 말과 글을 모른다고 해서 입국이 제한된다거나 거주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소통할 수 있는 언어를 가진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이국땅에서 내가 느끼게 될 삶의 질을 하늘과 땅만큼이나 큰 차이로 결정지어 준다.


난 영어를 잘하지 못한다. 나름 짧지 않은 가방끈을 가지고 있으므로 일정 수준 이상의 영어단어를 알고 있긴 하지만 네이티브 스피커가 평소의 말투와 속도로 말하기 시작하면 쉬운 단어도 잘 알아듣지 못한다. 어느 코미디 영화에서 본 것처럼 "총을 쏠까요?"라는 말에 "OK. sure."라고 말할 정도는 아니지만 여행지에서 소통의 오해로 인한 작은 에피소드는 적지 않게 경험한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과 일행이 되기도 하고 주문하지 않은 음식이 잔뜩 식탁을 채우기도 한다. 채소나 소스는 하나도 들어있지 않은 팍팍한 햄버거를 먹기도 했고, 목적지와는 전혀 상관없는 지하철을 타기도 했다. 내게 말을 건넨 외국인도 나름의 영어 실력으로 대답한 나도 의도하지 않은 불편한 상황들이 생긴 것은 우리에게 서로의 언어를 배우고 연습하는 어학연수의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내와 처음 부부라는 이름으로 함께 살기 시작했을 때도 우리는 마치 외국인과의 대화처럼 작은 오해와 의도하지 않은 결과들을 마주해야만 했다. "이거 먹는 거 어때요?"라고 물었을 때 "괜찮아요."라고 대답하는 것이 한 사람에게는 먹겠다는 뜻이었지만 다른 한 사람에게는 먹지 않겠다는 뜻으로 들렸다. “우리 약속이 한 시간 남았어요."라는 말도 한 사람에겐 많이 남았으니 천천히 가자는 것이었지만, 또 다른 한 사람에겐 서두르자는 의미였다. 이번 주말엔 아무 약속이 없네."라는 말은 둘만의 특별한 데이트를 계획하자는 뜻으로 들을 수도 있었지만 오랜만에 아무것도 안 하고 쉬겠다고 이해해야 하기도 했다.


40년 넘는 세월 동안 같지만, 다른 언어를 써 온 우리에겐 서로의 언어를 이해하는 연수의 시간이 필요했다. 분명 누구보다 서로를 사랑하고 있었지만 그 마음이 올바르게 전달되기 위해서는 서로에게 서로의 언어를 이해하려는 배움과 연습의 시간이 필요했다. 3년 정도의 시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제법 서로의 언어를 잘 알고 이해할 수 있는 사이가 되었다. 아직도 종종 실수를 반복하지만 때때로 아내가 사용하는 말투나 글에서 살짝이 나의 모습이 보일 만큼 서로를 이해하고 닮아가는 중이다.


살다 보면 대화가 잘 통하지 않는다고 느껴지는 사람들을 만나곤 한다. 직장의 상사나 후배들과도 그렇고 민원 상담창구의 상담원과도 그럴 때가 있다. 어릴 적 선생님과도 그랬지만 고백하건데 지금의 제자들과도 종종 그럴 때가 있다. 정치 성향이 다른 지인과의 대화에서도 그렇고 장애를 알지 못하는 비장애인들과의 논쟁에서도 불통의 답답함을 느끼곤 한다.


내 생각과 말이 늘 옳은 것 같다고 생각하지만 나와 정반대의 생각을 가진 상대방도 그랬을 것이다. 대부분의 상황에서 난 나와 대화하고 있는 이의 언어에 대해 배우려고 하거나 따로 시간을 내어 연습해 본 적이 없다. 나와 가장 가깝게 지내는 이의 언어도 잘 모르는 내가 그들의 언어에 대해 제대로 알 리가 없었다. 우리의 대화는 국적 다른 이들이 각자의 언어로 대화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우리에겐 어학연수의 시간이 필요하다.


어학연수는 부푼 꿈을 가진 청년 유학생이나 원대한 포부를 가진 사업가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동네의 작은 가게에서 맛있는 음식 하나를 사 먹을 때에도 멀지 않은 목적지에 가기 위해 버스를 탈 때에도 그 나라의 말과 글을 아는 것은 우리의 일상에서 불필요한 오해를 줄이고 원활한 소통의 길을 열어주는 열쇠가 된다.


갈등을 좋아하는 이는 없다. 주변에 대화가 통하지 않는 이들이 가득하다면 잠깐만이라도 그들의 언어에 대해 공부하려는 어학연수의 시간을 가져보기를 권한다. 우리가 마주한 많은 다툼과 오해는 언어의 미숙으로 빚어지는 오해의 결과물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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