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는 게 어려울 리가요!

by 안승준

전 국민 달리기 열풍이 부는 요즘 주말은 이런저런 단체에서 주최하는 마라톤 행사가 끊이지 않는다. 멋진 아빠가 되고 싶은 마음 그리고 아들에게 되도록 많은 경험을 선물하고 싶은 아빠의 마음들이 모여 우리 가족도 유아차런을 비롯한 몇 번의 행사에 참여했다


시작하면 제대로 해 보자는 것이 우리 세 식구의 공통점이기도 해서 나름으로 열심히 준비했고 그 결과로 참가한 모든 대회에서 완주 메달을 획득했다. 영상으로 제작된 나의 달리는 모습을 본 사람들의 반응은 대체로 대단하다는 것이었는데 "시각장애인인데 저보다 더 잘 뛰시네요.“같은 댓글은 감사한 응원이기도 했지만, 나로서는 고개가 갸웃거려지는 일이기도 했다.


난 보이지 않는 사람이어서 장애인이라고 불리지만 걷고 달리는 기능에는 전혀 이상이 없다. 아내와 함께 유아차를 밀거나 가이드 러너와 연결된 끈을 잡고 뛰는 것에서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불편하거나 부족해야 하는 이유는 없다. 휠체어 타신 분들에게도 "와! 장애인이신데도 저보다 시력이 좋으시네요."라고 응원을 보내는지는 모르겠지만 한 부분이 불편하다고 해서 모든 신체기능이 동일하게 하향평준화 되지는 않는다.


광화문 한복판에서 아무런 도움 없이 혼자 달려보라고 하면 다소 어려움을 느낄 수야 있겠지만 방향을 알려주는 정도의 지원만 제공된다면 장애 판정 받은 나의 눈 아닌 내 다리는 크게 염려받을 처지가 아니다. 내가 제법 잘 달리는 것처럼 보였다면 그것은 평소 운동 좋아하는 나의 습관이 시력으로 발현되었던 것이고 그것은 내 시각장애와는 아무런 관련성이 없다.


사람들은 생각 외로 한두 가지의 특성으로 어떤 이의 모든 것을 평가하는 착각을 하곤 한다. 장애 가진 내가 수학 문제를 풀거나 달리기할 때 엄청난 감동을 표현한다든지 노래를 잘하거나 매력적인 외모를 가진 연예인들의 작은 실수에 큰 실망을 보내는 것은 겉으로 보이는 한 줌도 안 되는 특징으로 미리 설정한 기대치의 크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수학자나 운동선수가 실명한다고 해서 그 실력이 시력과 함께 사라질 리도 없고 외모나 노래 실력이 출중한 것이 그들의 도덕성을 보증할 리도 없다.


장애인은 대체로 나보다 못 할 것으로 생각하는 것도 내가 좋아하는 연예인은 완벽하리라는 것도 근거 없는 착각일 뿐이다. 전 국민이 달리기에 열광할 때 그 안에 시각장애인이 없다면 그것은 눈 불편한 이들이 달리기를 잘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시각장애인도 마라톤을 즐길 수 있는 작은 지원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릴 적 아버지 회사에 따라가면 대부분의 자리를 아저씨들이 채우고 있는 것이 자연스럽게 여겨졌다. 이따금 어머니 또래의 여성을 만나는 것은 신기하고 어색한 일이었다. 교과서에도 광고판에도 앞치마를 매고 요리를 하거나 아이를 안고 집안에서 일하는 여성의 모습만을 보여주었지만, 그것은 원래부터 인간에게 부여된 성적 역할 분담이 아니었다. 우리는 출근길이나 사무실에 왜 여성이 없는가를 고민해야 했지만 이따금 들려오는 대기업 최초 여성 간부 등장의 소식에 감탄의 박수를 보내기에 바빴다.


다행히도 최근 몇 년 사이 시각장애인 마라톤 클럽이 몇 군데 생겨나고 비장애인들의 동호회에서 함께 연습하고 달리는 시각장애인들의 소식도 드물지 않게 들린다. 그것은 뉴스 기사의 특종이 될 일도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일도 아닌 일상의 한 부분이어야만 한다.


아직도 일반 학교의 교실이나 대기업 사무실에서 점자를 사용하는 학생이나 휠체어를 탄 회사원을 보기는 힘들다. 장애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무사히 졸업하게 된 아무개에게 교장 선생님의 특별상이 주어지고 일반 기업에서 일하는 어떤 이의 사연이 다큐멘터리로 제작될 때 우리는 감동하고 박수를 보내기보다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해야 한다.


보이지 않는 내가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휠체어를 탄 이들이 전망 좋은 루프탑에서 식사하지 못할 이유도 없다. 수많은 인파가 모인 곳에 인류의 10%인 장애인이 보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문제의식을 가져야만 한다.


밥 짓고 아이 보는 것이 여성 본연의 역할이라고 세뇌당하던 오래전처럼 우리는 어떤 슬픈 영상의 한 장면이나 불쌍하게 그려진 그림 한 장의 기억으로 장애에 대해 크게 오해하고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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