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겠어. 벌어진 일을.
뭐 살다보면 당연히 내가 완벽한 것이 아니고 나의 무지에서 비롯된 무식함이 오롯이 드러날 때가 종종 있을 수 있다고 이미 생각한다. 그런데 유독 친하지 않은 사람에게 보여지는 무식함은 너무 창피하다. 카톡에 있는 그 문자를 삭제하고 싶다. 이게 뭔 대수냐 싶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이런 것에 유독 민감한 것 같다. 내가 많은 걸 안다고 착각하거나 내가 대단한 철학과 지성이라도 있는 척 하고 싶은걸까. 아니면 그냥 나의 무식함에 긁혀서 그 부끄러움에 폭발하는 걸까.
사실은 대단한 것이 아닌 대단히 상식적이라고 생각하는 것 들에서 무식함이 드러날 때가 문제다. 맥락 상 ‘경황이 없어서’가 맞는데 내가 일단 쓰고 보니 ‘정황이 없어서’라고 써보낸 것이다. 일단 보내고 보니 이게 맞아? 라는 찝찝함은 나중에 곧 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미 상대방이 보고 답해서 끝난 문자 메시지 였고… 그걸 돌이킬 수는 없었다. 그러니 그것은 나의 무지함이 맞았다. 이렇게 나는 또 배웠다. 제대로 된 차이를. 네이버에서 찾아가면서….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고 있을 수도 있고 상대방도 어련히 그냥 넘겼을 수도 있다. 맥락으로 파악하고 그걸 내가 무식하다고 까지 생각해서 어떤 파장을 일으킬지가 나는 두려운 거다. 이 사람은 내가 무식하다는 걸 알고 있어. 나의 약점을 알고 있어. 나는 무식해. 어쩌지?
마치 하나의 실수로 나의 무식함을 내가 나 스스로 인정해버리는 것과 같다.
이런 것이 진정한 낮은 자존감같다.
안다. 이런 거 하나를 툴툴 털어내지 못해 밤잠을 설쳤다는 것은 뭐 이미 부끄럽지도 않다. 지금 나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니까. 나는 일단 상대방이 어떻게 생각할 지가 더 부끄러운 거다. 그리고 그 사실이 마음이 아프다.
내가 나에게 안쓰럽다. 그런 나에게 내밀한 친구에게 말하듯 말해본다.
‘00아 너무 잘 보이려 애쓰지마. 물론 너가 그 순간에 무식함을 드러낸 것은 맞지만 대신 너가 그렇게 씀으로서 또 하나 배웠잖아. 이렇게 알았으면 됐지. 그리고 앞으론 절대 그 단어는 실수하지 않을거잖아. 예민한 문제는 너를 힘들게도 하지만 너를 발전시키기도 해. 나는 그걸 나쁘게만 보진 않아. 그리고 상대방이 너를 어떻게 생각하든 그건 중요하지 않아. 그 단어 하나로 너를 무시하거나 얕잡아 볼 사람이라면 어차피 멀리 하는 것이 좋았을거야. 그렇게 인생에서 스쳐갈 사람에게 남길 너의 인상에 대해 생각하지 마. 지금 너에게 있는 사람들에게 집중해. 차라리. 실수도 웃음도 마음껏 하면서.’
배우고 배우는 인생.
누가 인생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라 그랬다.
과정 속 수많은 오류와 실수는 당연한거지. 완벽한 인생은 없듯.
적어도 앞으로도
실수는 할지언정
배움이 멈추어지지 않는 인생을 살고 싶다.
#부끄러움에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