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라 모르겠다, 그냥 쓰자
모든 일에는 관성이 존재한다. 하다 보면 하게 되지만 하지 않다 보면 하지 않게 된다. 습관을 만드는 일은 큰 노력이 필요하지만, 습관을 허무는 일은 하루아침에라도 가능하다. 그렇게 나는 하지 않는 쪽의 관성에 더 쉽게 휩쓸렸고, 습관을 허무는 일이 습관이 되어버릴 지경에 이르렀다. 매일 자기반성을 하는 것도, 매일 울적한 하소연을 의미도 없이 늘어놓는 것도 이제 그만해야 할 것 같다. 퇴사한 지 만으로 6개월이 지났고, 특별히 이룬 것도 없이 그러니까 재취업을 하게 될 경우 이력서에 한 줄 추가할 성과도 없이 시간만 허비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뭘까,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 뭘까, 앉아서 고민만 하며 6개월을 보냈다니. 설상가상 이사가 겹치며 좋은 핑곗거리 하나가 추가되었다. 열심히 집을 보러 다니고, 버릴 것과 남길 것을 추리고, 또 버리는 일에 거진 한 달을 소비했다. 24시간 이사 준비를 하는 것도 아니면서 왠지 마음이 붕 떠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일주일에 두 번은 꼭 쓰겠다고 다짐했던 무직 라이프도 어느 순간 놓아 버리고 말았다. 하지 않다 보면 하지 않게 된다. 습관을 허무는 일은 하루아침에라도 가능하다.
6개월의 시간 동안 끊임없이 고민했지만 여전히 나는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내가 뭘 잘할 수 있는지, 선명한 그림을 그려내지 못했다. 어쩌면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직접 부딪쳐 시도해 보기 전까지는, 머릿속에 부유하던 생각을 현실의 세계로 데려오기 전까지는,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또 잘할 수 있는지 영영 알아낼 수 없는지도 모른다. 퇴사를 하고 아주 오랜만에 다시 브런치 글쓰기 버튼을 클릭했을 때, 나는 책을 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열심히 쓰고 또 열심히 올리면 출판의 영광을 얻을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재취업을 하지 않는 것이 꿈이라고는 하나 나는 한시도 재취업에 대한 생각을 놓은 적이 없다. 그러니 출판이라는 것은 얼마나 달콤한 열매인가. 이력서에 써넣을 얼마나 멋진 한 줄인가 말이다. 그러려면 남들이 읽고 싶은 글을 써야만 했다. 내 고민, 내 생각, 내 마음을 배출하는 통로 정도로 브런치에 무언가를 끄적거려왔지만, 지금부터는 달라야 했다. 타인에게 전할 수 있는 가치, 그러니까 비용을 지불하고서라도 읽고 싶게 만드는 콘텐츠를 내 안에서 찾아야만 했다. 그런데 그런 게 있기는 한가?
퇴사를 하고 보니 퇴사 후의 삶을 콘텐츠로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또한 아주 오랜 시간 퇴사를 꿈꿨었고, 그러나 여러 가지 이유로 실천하지 못했던, 모든 직장인들의 신기루와도 같은 퇴사. 꽤 괜찮은 아이템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퇴사를 하고 고민만 하고 있는 나의 이야기는, 쓰면 쓸수록 구구절절 구질구질해지는 나의 이야기는, 내가 보기에도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이쯤에서 방황을 멈추고 '그리하여 나의 퇴사 후 결말은 이렇습니다'를 말해야 할 것만 같았다. 이제는 내가 이뤄낸 것을, 어떠한 결과를 보여 주어야만 가치를 담을 수 있을 텐데, 나는 여전히 결말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 호기롭게 사직서를 던지고 회사를 나와 조금 흔들리고 방황하고 고난을 겪기도 했으나 고비를 딛고 성장하여 성공을 이루어낸 스토리를 들려주고 싶었다. 그렇게만 된다면 아주 교과서적인 플롯이 완성될 터였다. 그래서 시작했다. 흔들리고 방황하는 과정을 기록하다 마지막에 빵- 드라마틱한 성공담으로 마무리하게 될 미래를 상상하며.
사실 6개월은 고난과 역경을 헤치고 이루어낸 성공담을 들려주기엔 너무나 짧은 시간이다. 내가 스스로에게 회의감을 느끼는 이유는, 최선을 다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내가 제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열심히 달려 나가고 싶었는데 어디로 달려 나갈지를 정하지 못해서 멈춰 있다니. 생각해 보면 바보 같은 짓이다. 6개월 동안 깨달은 것이 있다면 나는 역시 디자인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내가 여전히 잘 쓰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가치로운 글을 쓰는 방법은 잘 모르겠다. 그러나 타인에게 가치로운 글이 무엇인가 고민하기 이전에 정말 최선을 다해 써 본 적이 없다는 사실 또한 알게 되었다. 그러니 일단 써야겠다. 매일 조금씩, 쉬지 않고 써야겠다. 남을 만족시킬 수는 없을지라도, 나는 만족시키며 살고 싶어졌다. 그러니 적어도 오늘은, 무직 라이프를 끝내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