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한 지 D+174
첫 번째 잘못 끼워진 단추는 초등학교 입학식 날 시작되었다. 1월에 태어나 일곱 살에 학교를 가게 된 것이 내 인생 전반을 구구절절하게 만든 첫 시작이다. 그날 이후 누군가 나이를 물어오면 때론 학번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때론 출생 연도를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대체로 구구절절 말이 많아진다. 00살인데 학교를 일찍 가서 00살들과 친구입니다라든가 00살 겸 00살입니다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여럿이 모이면 공공연한 족보 브레이커가 되어 한 소리씩 듣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 같이 학교를 다닌 친구들의 나이에 맞춰 00살입니다 하고 이야기하면 뭐야 너 00살이었네 하며 꼭 나이를 속인 사람 취급을 받는다. 그렇다고 내 출생 연도에 맞춰 00살입니다 하면 뭐야 왜 나이를 줄여 라며 거짓말이라도 한 사람 취급을 받는다.
두 번째 단추는 스무 살 대학 진학을 선택할 때 이루어졌다. 초등학교를 한 살 먼저 들어간 것은 부모님의 선택이었다는 핑계를 댈 수 있지만, 대학 진학은 온전히 나의 선택이었으므로 핑계조차 댈 수 없다. 당시의 나는 패션 디자인을 전공하고 패션 잡지 에디터가 되는 것으로 나름의 진로를 생각해 두었는데 학교에 가자 오직 디자이너만을 위한 전문 훈련소 같은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학위 인정이 안 되는 학교였으나 워낙 커리큘럼이 타이트하고 졸업하는 것이 쉽지 않았기에 동기생들은 이름을 대면 알 법한 회사에 속속 입사하였다. 업계에서는 어디 나왔습니다 만으로 설명이 되던 학교 이름이 디자인계를 떠나온 나에게는 '학위 인정이 되지는 않지만'부터 시작해야 하는 학교가 되었다.
세 번째 단추는 바로 전에 다녔던 회사로 이어진다. 에디터라는 직함을 얻으며 입사했지만 보통은 '에디터'라는 직업을 들으면 잡지 편집자를 연상하곤 한다. 에디터를 한글로 풀어 '편집자'라고 말하면 보통은 책을 만드는 사람을 연상한다. 그러니 나는 또다시, 여성복과 코스메틱을 제작하는 브랜드에서 온라인 몰의 상품 상세 글을 작성하거나 기획 상품의 카피라이팅 문구를 쓰거나 프로모션 기획을 하는 등 다양한 문안 작업을 합니다라고 구구절절하게 나의 직업을 설명해야만 했다.
마지막 구구절절의 네 번째 단추는 바로 퇴사 이후이다. 이직 준비를 합니다, 창업 준비를 합니다, 프리랜서로 일합니다, 깔끔하게 내놓을 대답을 미처 준비하지 못한 채로 야인이 된 것이 패착이었다. 나는 또 구구절절 이빨을 털어야만 한다.
퇴사를 했는데요, 이직은 아직 생각이 없고요, 책도 좀 읽고 배우고 싶었던 것들을 배우며 다음 스텝을 준비해 보려 합니다. 네, 현재 수입은 없습니다. 네네, 남편은 아직 회사에 다니고요.
이제는 좀 지친다. 어쩌다 인생 전체가 이토록 구구절절해져 버렸을까. 깔끔하게 딱 떨어지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깔끔하게 딱 떨어지는 것과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 왠지 오늘은, 내 이름이 박힌 명함 한 장이 사무치게 그리워진다. 그런 종이 조각 하나로 나를 설명할 수 있던, 그나마 깔끔하게 나를 증명할 수 있던 날들이 그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