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으니까 ①
대추를 처음 만난 건 10월 말의 가을이었다. 나는 엄마, 여동생과 부산 여행을 하고 있었는데, 남편에게서 한 장의 사진을 받았다. 박스에 담겨 있는 아기 고양이 사진이었다. ‘이게 뭐지?’ 생각하던 중 도착한 다음 메시지. ‘길에서 고양이를 주웠어.’
집에 도착해서 처음 마주한 것은 수건 위에 얹어져 있는 작고 꼬물거리는 생명체였다. ‘어떻게 이렇게 작은 생명체가?’ 신기해서 탄성이 나왔다. 애니메이션 속 장화 신은 고양이를 떠오르게 하는 크고 촉촉한 눈, 비틀거리며 움직이는 하찮은 젤리 발. 하지만 그 귀여움도 나의 가드를 모두 허물지는 못했다. 나는 동물을 키워본 적도 없고, 만져본 것도 손에 꼽을 정도로 동물과 먼 인간이었다. 이 작은 고양이는 내게 귀여움보다는 낯섦이었다. 남편은 어쩌자고 이 고양이를 데려온 거지?
고양이와의 만남은 이랬다고 한다. 남편은 그날 저녁, 사람들과 운동을 하러 갔다. 건물로 들어가려는데 어디선가 삐약삐약 우는 소리가 났다. 고개를 돌려 쳐다보니 작아서 잘 보이지도 않는 아기 고양이가 길에서 울고 있었다. 고속도로 바로 옆이어서 꽤 위험해 보였다. 걱정이 됐지만 어미가 데리러 올 수 있으니 함부로 만질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일단 두고 들어갔다. 세 시간 후, 운동을 마치고 나온 남편은 여전히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 고양이를 발견했다. 다행히 누군가 고양이를 박스에 넣어 둔 상태였다. 차가 지나다니는 도로 옆이어서 누가 봐도 위험해 보였을 것이다. 이대로 두면 죽을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한 남편은 고양이가 든 박스를 집어 들었다.
삐약거리며 거실을 기어 다니는 손바닥만 한 고양이는 아직 눈도 채 뜨지 못한 갓난아기였다. 한 손으로 사뿐히 들리는 가벼움, 삐죽 솟아 있는 짧은 꼬리, 쉬지 않고 울어 대는 작지만 우렁찬 목소리(아기 고양이가 삐약삐약 운다는 걸 처음 알았다). 너무 귀여웠다. 하지만 고양이를 기르자는 남편의 말에 나는 절대 안 된다고 대답했다. 동물은 쉽게 키울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키우기로 하는 순간, 이 생명의 모든 것을 책임져야 했다. 강아지를 키우느라 여행도 못 가는 친구가 떠올랐다. ‘우리가 얼마나 여행을 좋아하는데.’ 자신이 없고 무서웠다. 우리가 고민을 털어놓자 마침 시아버지도 고양이를 키우는 것을 반대하셨다. 아이를 먼저 가져야 한다며.(응?) 이유를 차치하고, 나는 누군가가 반대해 줘서 잘됐다고 생각했다. 그치만 사람 마음은 변하는 거다. 어느 날 내 마음이 뒤집어져 버렸다. 다름 아닌 시아버지 때문이었다.
시아버지의 회사에서는 여러 마리의 고양이를 키우고 있었다. 같은 회사에서 일하던 남편은 주워 온 아기 고양이를 우리 집에서 못 키우면 회사에서 키워야겠다는 생각이었다. 내가 반대하자 아기 고양이의 집은 회사 사무실이 되었다. 회사가 비어서 돌봐줄 사람이 없을 때는 우리 집에 며칠 데려다 놓았다. 아기 고양이는 무채색이었던 내 하루를 총천연색으로 만들었다. 손바닥만 한 것이 내 어깨에 올라와서 자고, 내 무릎에 올라와서 자기 손을 쪽쪽 빨았다. 청소기를 밀면 무서워서 캣타워 기둥을 끌어안았다. '귀여워…!' 하며 입을 틀어막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나는 이 생명체에게 점점 마음을 빼앗기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고양이가 우리 집에 머무르던 시기에 시아버지가 방문하셨다. 시아버지는 고양이를 아주 좋아하셨는데, 문제는 애정 표현이 다소 과격하다는 것이었다. 시아버지를 본 고양이는 쫄쫄 도망갔다. 다가가 고양이를 들어 올리자, 고양이는 싫다며 '왱-' 울음소리를 냈다. 그때 시아버지가 고양이의 머리를 툭 치셨다. 그 장면을 지켜보던 나는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저러면 안 되는데? 아픈 거 아닌가?’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마침내 속으로 삼키던 말이 입으로 튀어나왔다. “아직 아기란 말이에요..!”
그렇게 길에서 태어난 이 아이는 우리 집 고양이가 되었다.
대추는 신나게 먹고 뛰고 사고 치며 우리 집 서열 1위로 자랐다. 거실에는 사람 가구보다 대추 침대와 스크래처, 장난감이 더 많다. 사람을 아주 좋아하는데, 어릴 때 회사에서 많은 인간들을 만나서 경계심이 없어진 것이 한몫한 것 같다. 너무 작아서 한 손에 올라오던 아기 고양이는 알고 보니 대형 고양이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었고, 이젠 두 팔로 들어도 무거운 6kg의 왕 큰 고양이가 되었다. 아직도 아기 때 버릇대로 내 품에 안겨서 자기 손을 쪽쪽 빠는 발 사탕을 매일 하고, 엉덩이를 쳐 주면 벌러덩 드러누워 내 발에 얼굴을 비비는 애교쟁이다.
반려동물을 내 삶에 들이기를 두려워하던 나는 이제 대추 없인 못 사는 인간이 되었다. 동물과 함께 사는 게 이렇게 행복한 일이었다니? 왜 아무도 말 안 해 준 거야? 나 빼고 이런 즐거움을 누리던 집사들에게 배신감까지 느낀다. 대추를 보고 있으면 마음속에서 사랑한다는 말이 저절로 올라오는 신기한 경험을 하고, 우울한 날에 대추를 꼭 안으면 웃음이 절로 나온다. 고양이의 존재는 정말이지 삶의 기쁨, 빛, 희망이다. 이 글을 쓰면서도 키보드에 드러누워 버리는 대추랑 실랑이를 했지만, 글이야 어떻게 되든지…! 언제나처럼 귀여워서 그 핑계로 한 번 안아 버리고 내가 더 즐거워지고 만다. 심지어 아이를 가지는 것에 감흥이 없던 내가 고양이를 키우고 나서 아이가 있는 삶이 궁금해졌다. 고양이가 이렇게 예쁜데 아이는 얼마나 더 큰 사랑을 느끼게 해 줄까. 생기면 다르다던 주변 사람들의 마음이 조금은 이해가 간다. 고양이를 영업하는 나의 마음과 한 끝은 닿아 있겠지.
인생에서 진짜 의미 있는 사건은 계획한 것이 아니라 예측하지 못하게 일어나 버린 것일 때가 많다. 인간의 머리로 계산할 수 없는 순간들 속에는, 가끔 선물처럼 다가오는 행복이 숨어 있는지도 모르겠다. 오늘도 내 무릎에 올라온 대추를 가만히 안고 눈을 맞춘다. 어느새 코를 박고 잠든 털복숭이의 정수리 냄새를 킁킁 맡는다. 명상처럼 마음이 편안해진다. 이거면 됐다.
<부록>을 빙자한 고양이 자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