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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현 Jun 10. 2022

술이 적당한 어느 날엔가

남편의 육아일기


기차의 기적소린 들어본 적 없을테고 


얼굴이 피다라는 말은 보통 폈다로 표현하니까 


머리에 서리가 내렸다라는 말도 구어로 잘 쓰지 않으니까 모를수도 있겠다. 


새론 것들이 즐비하다고 하여 우리(?)가 쓰는 관용적 표현들에 대해 아이들(중학생)이 모른다고 하는 사실이 그렇게 큰 문제가 될는지 싶다. 국어에 대한 공부 내지는 문단에 대한 이해력을 논하기 전에 이 모든 건 대화의 결여에 관한 문제가 아닐까 싶어 몇자 적어본다. 아이들이 그렇게 되기까지 부모는 뭘 했는가, 흔히 어른들은 뭘 그렇게까지 문학적인가. 문학까지 갈 필요없이 우리 대화에 농이라는 게 섞이는가, 관심은 딴 데 두면서(그렇기까지 어른들은 줄곧 변명을 늘어놓지만) 아이들에게 하는 말한마디, 행동 하나하나 조심하는 게 없다. 선생, 먼저 나고 먼저 알았으면 겸허히 알려주고 기다려주면 좋을 것을. 


나 또한 그 비슷한 나이의 아이들을 대면하고 이야기하면서 나 스스로 노력하고 다가서지 않는데 그이들의 관심을 자리나 그간의 행간으로 읽혀지길 바라는 마음이 없지는 않나, 반성해본다. 결론은, 나는 아직도 청청히 젊고 이들과의 만남이 매순간마다 소중하다. 한마디에 그들이 받아들이는 이해와 오해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 때론 나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종일 생각하고 생각한다. 나의 물음이 그들에게도 물음이 되길 바라며 던지고, 나에게도 전해지는 그 물음이 담백하게 나를 적신다. 웃어른이 아닌 손아랫사람에게 배우기를 청하는 마음으로 술을 따르고 가슴을 적신다. 


나 또한 학창시절에 나의 마음을 전하지 못한 무릇 선생, 에 관하여 애닲은 마음이다. 비닐쪼가리를 버리지 못해(이건 습관인데) 가방에 넣는 날 보고 “잘 살겠다” 말한 수학선생님한테 그건 오해라고 말하지 못해서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담임은 적어도 1년은 보는 사람인데, 다 보고 난 후에 말을 하던지, 아끼던지, 괜한 정으로 나는 그렇게 알뜰살뜰한 사람이 아닌데 그렇게 살아야 할 것 같은 사람으로 만들어버린 선생의 말로 때마다 마음고생을 했다. 


술이 적당한 어느 날엔가. 


이러쿵 저러쿵 말도 하고 싶고, 


말보단 그러저러한 마음의 상황을 


기적소리처럼 내보고도 싶고 


얼굴이 핀 건 꽃이라는 명사라기보다 


형용사 내지는 동사라고 말하고 싶어서고


머리에 서리가 내린 거울을 보고


못본 체 하기는 또, 싫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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