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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O Jul 26. 2022

그대여, 노래를 불러요

Travis - Sing

Bird 님(이하 버드 님)을 처음 만난 건 '세이클럽'에서였다. 2000년대를 주름잡던 채팅 사이트 세이 클럽은 1:1 채팅 외에도 단체 채팅이 가능한 공간이었다. 저녁 때면 락(Rock)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 음악 감상방을 열어 DJ처럼 음악을 들려줬고 음악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함께 감상하곤 했다.


세이클럽이 아직도 있네! (출처: 세이클럽 캡처)


대학만 합격하면 화려하게 놀 줄 알았으나 실상 딱히 약속도, 할 일도 없던 나는 매일 밤 세이 클럽의 음악 방을 기웃대며 놀았다. 락 음악방에 들어가면 메탈리카(Metallica),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Rage Against the Machine) 등 다소 거칠고 시끄러운 음악이 흘러 나왔다.

나는 라디오헤드(Radiohead)처럼 몽환적이고 조용한 락을 좋아하는데 '내가 좋아하는 건 락이 아닌가?' 하고 주눅이 들 무렵 내 취향을 저격하는 음악이 가득했던 어느 '모던락(Modern Rock)' 음악 감상방을 찾았다. 그곳에서 버드 님을 알게 되었는데, 어쩌다 연이 닿아 개인적으로도 연락을 하며 지내는 사이가 됐다.


버드 님은 오직 라디오헤드밖에 모르던 나에게 트래비스(Travis)며, 스웨이드(Suede)를 비롯한 많은 밴드를 소개해 주었다. 버드 님이 보내 주는 노래는 하나같이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음악이 없었다. 특히 버드 님이 처음으로 보내 준 트래비스의 'Sing'은 아름답기까지 했다. 영국의 회색빛 기운이 느껴지면서도 한 줄기 빛이 새어 나오는 것처럼 마냥 암울하지만은 않은 느낌이었다.


몇 달간 연락을 지속하다가 실제로 만나본 버드 님은 외적으로 엄청 멋진 편은 아니었지만 온라인 상 이미지와 큰 괴리가 없는 사람이었다. 서울 소재 대학을 다니고 취미로 친구들과 하는 밴드에서 드러머를 하는 버드 님은 젠틀하지만 그렇다고 또 과하게 친절한 편도 아니었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건 나이 많은 남자들이 흔히 보이는 거들먹거림이나 마초스러움이 없다는 점이었다. 새로운 밴드를 소개할 때도 결코 본인이 잘 안다고 으스대거나 우쭐댐이 없었다. 우리는 실제 만남에서도 온라인에서처럼 존댓말을 유지하였다.  


버드 님을 한두 달에 한 번, 혹은 몇 달에 한 번씩 만나서 밥을 먹고 술을 마셨다. 버드 님은 선곡이 좋은 곳을 기가 막히게 알았다. 그렇고 그런 호프집만 다니던 나에게 버드 님이 소개해주는 대학로와 홍대 인근의 작지만 특색 있는 술집은 신세계였다. 내가 버드 님과의 만남을 유지한 것은 무엇보다도 버드 님과 하는 대화가 나에게 신선한 자극을 준다는 점 때문이었다. 냉철하지만 삐딱하진 않고, 설렁설렁 사는 것 같으면서도 생각은 온전한 버드 님을 만나고 오면 나도 가볍게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인생 쫌 재밌는 면도 있네.'


버드 님이 노무사 시험 준비를 하면서 연락이 뜸해졌다가 마지막 만남으로 아예 연락이 끊겼다. 못 본 새에 버드 님은 사이비 종교에 빠져 있었다. 성경을 굉장히 극단적으로 해석하는 종교였던 걸로 기억한다. 성경에서 나오는 피가 어떻고 죽음이 어떻고, 그가 계속 종교 얘기를 하길래 좀 무서웠지만 '다른 화제로 돌리자.'라며 마음을 다잡았다. 약 7년 간 이어온 인연한순간에 끊어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이야기로 전환할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의 종교 이야기를 하고 또 했다.

"요즘 음악은 안 들어요?"

나의 말에 그는 작정한 듯 말했다. 이제 그런 음악은 아예 안 듣는다고. 그는 취미고 관심사고 다 버린 채 오로지 종교에 몰두해 있는 상태였다.


연락이 뜸해지면 뜸해지는 대로 놔뒀어야 했을 지도 모른다. 충격적인 마지막 만남이 아니었더라도 멀어질 인연이면 자연스럽게 멀어졌겠지.


내 마음 속에 그 시절 버드 님은 없지만 그가 추천해준 음악은 남아 있다. 명곡은 시간이 흘러도 명곡이다. Travis의 Sing을 들으면 왠지 눈을 감은 채 빙글빙글 돌며 춤을 추고 싶어진다. 그대여, 노래를 불러요.  


Travis - Sing


같이 들어 주세요.

Travis - why does it always rain on me? (왜 항상 나한테만 비가 올까?)




<그 시절 음악과 이야기>는 제가 좋아하는 음악을 소개하면서, 그 음악에 얽힌 이야기를 하는 매거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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